(나가사키 평화공원의 '소녀상')
▲ 세계적 명승지인 운젠(雲仙) 국립공원으로
나가사키는 일찍 개항을 했기 때문에 원자폭탄 투하가 아니라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미국의 해군 사관과 기녀 출신인 나비 부인의
불행한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1904년 밀라노에서 초연되었다.
나비 부인이 부르는 아리아와 수병들의 허밍코러스가 유명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김자경 오페라단이 1970년에 처음 공연했다.
배낭 여행이라도 왔으면 천천히 이를 음미하면서 하우스 텐보스를
천천히 둘러볼 것을…. 3박4일의 숨가쁜 여행이라 아쉽지만 그냥 간다.
평화공원의 공동주차장 옆에는 진주로 만든 모든 것을 파는 가게가
있다. 가까운 어촌에 이름난 진주 양식장이 있어서 거기서 나는 인공,
천연 진주를 가공해 파는 곳이다. 일본에서 물건을 살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슈퍼 같은 데서 물건을 사면 정가에다 5%의 세금이
붙기 때문에 잔돈이 없이 그냥 정가에 맞는 금액을 내밀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500엔 짜리 핀으로부터 수천만 엔을 호가하는
목걸이 명품까지 진열돼 있다. 눈으로 너무 비싼 것을 보기만 하기가
미안해서 집사람 것 하나 살까 하다가 말았다. 8년 전 월남에 갔을 때,
싸고 예쁜 목걸이가 있어 하나 샀는데 한 번 걸어보고는 그만이었기에.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집사람은 아무 것도 사오지 말라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부담이 반으로 준다면서.
진주 쇼핑이 끝나고 화산 활동을 볼 수 있고 온천으로 유명한 운젠
국립공원으로 출발했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운젠다케를 비롯한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들이
저마다의 독특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일대는 지금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산 활동 지구여서 오래 전부터 온천 여행지로 각광 받아,
남서쪽 기슭에는 크고 작은 온천을 개발한 온천장이 밀집되어 있다.
그리고, 이 일대는 우리 한라산처럼 다양한 종류의 고산식물들이 많이
자라는 것으로도 알려진 곳이다. 10분 정도 달렸을까? 1호차가 멈춰
서더니, 할아버지 한 분이 안 탔다고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간다.
일제 때 학교를 나와 초등 교사를 지내다 몇 년 전에 정년 퇴임하신
분이어서 일본말을 잘하기 때문에 일단 마음은 놓인다.
우리 2호차는 운젠국립공원의 운젠지고쿠(雲仙地獄)으로 가면서
계속 연락을 취했다. 그곳에는 연중 유황가스와 증기를 뿜어대는
유황가스 구멍이 30여 개 있는데, 이를 통칭 운젠지고쿠라고 한다.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가스가 가득 찬 지옥이 연상되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자욱한 연기 속 한 구석에 에도시대에 목숨을
잃은 가톨릭교도의 순교비가 서 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따라가다가 한쪽에 앉아 이곳 명물인 온센타마고라고 온천 증기로
찐 달걀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있어 모두들 사먹는다. 할아버지는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 차를 따라잡으러 뒤쫓아 왔는데, 길이 달라
내친 김에 호텔까지 도착했다는 전갈이다. 덕분에 1호차에 탄 분들은
온젠지고쿠를 못 보고, 할아버지는 용돈 1만 엔 날렸다.
외국 여행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헤어진 곳에 가만히 있어야
찾기 쉽고 서로 피해가 안 간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운센지고쿠)
▲ 운젠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보낸 하룻밤
푸른 바다 물결이 출렁거리는
작은 고을 오바마(小兵) 온천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듯 솟구치는 산악도로
버스가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울창한 스기나무(삼나무) 숲 속을 달려가면
해발 7백 미터, 운젠다케(雲仙岳) 남쪽 기슭
'운센아마쿠사 국립공원(雲仙天草國立公園)'에 도착한다
온천이 아니라 지옥이란 소문답게
온 마을 여기저기 산불이 번지듯
허연 증기 하늘 높이 솟구치며
구린내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서슬 시퍼렇게 군림하던 막부(幕府)의 칼날이
금교령(1641년), 체포령 혹독하게 번득이며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하고 죽이던 곳
--그분을 따르는 것만이 나의 구원입니다
분명한 목소리로 목숨을 대답하며
열 사흘 모진 고통 이겨낸 이사벨라
맨발로 뜨거운 바위 돌에 끌려나와
머리에도 뜨거운 돌을 이고 기도하던 이 곳
오늘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운젠
순교자 묘비 근처 돌 하나 주워들고
희누렇게 녹아 붙은 유황돌 속에
하얀 뼈로 새겨진 간절한 목소리
지금도 어디선가 들리듯 합니다
--- 조신호 '사람들 7 -- 운젠(雲仙)' 전문
우리가 묵은 곳은 운센의 작은 해안마을 오바마(小浜)의 오바마
관광호텔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도착해 초조하게 앉아
있다가 현관으로 달려나오는 할아버지를 감싸안으며 위로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프론트 옆쪽으로 일본 본인방 대회를 유치하여
바둑두었던 사진과 이곳에 묵었던 유명 인사 사진들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시간이 좀 늦었기 때문에 몸을 씻을 틈은 없고 손발만
씻고 좀 느끼한 듯 싶은 저녁을 먹었다. 문 닫기 전에 시내 구경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몇 명이 짝을 지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호텔 앞 잘 정리된 포구 맑은 바닷물 속에는 커다란 전등불을 켜놓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텅빈 해변 공연장 무대에 뛰어 오르니,
모두들 장난스레 노래를 청한다. 객기가 발동하여 '방랑시인 김삿갓'을
부르고 해변을 끼고 늘어선 시가지를 따라가다가 제법 큰 슈퍼마킷이
있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우리 나라로 치면 마트 수준인 이곳에는 라면, 고춧가루, 김치 같은
우리 상품도 여럿 보인다. 별로 살 것이 없어 구경만 하는데 일행
중에는 올 때 사고 싶어 하던 것들을 사기도 한다. 약품과 화장품
코너도 있다. 이곳에는 특히 생맥주를 포장해서 파는 것들이 많다.
보통 캔 크기에서부터 포장용기를 재활용하기 좋게 만든 2ℓ짜리까지
있다. 8시에 문을 닫는다고 채근해서 생맥주와 안주를 사들고 나왔다.
일본은 비루(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나라답게 맥주와 마른안주가
다양하다. 거리의 점포가 거의 문을 닫아버려 더 구경할 것이 없다고
돌아오다가 호텔이 바라다 보이는 방파제에 앉아 오늘의 답사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까이 낚시꾼이 낚시를 드리우고, 앞에 파랗게
불빛이 우러나는 바다를 보면서 고즈넉이 한 잔 하는 기분이란….
온천의 마을답게 유황 냄새가 은근히 코를 간지럽혀 아무래도 못 참고
서둘러 들어와 12시까지 온천욕을 즐겼다. 운젠의 온천물은 유황이
포함되어 있어, 류마티스, 신경통, 피부병, 부인병에 좋다고 하여 현대
의학 치료와 병용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예로부터 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꿀 수 있다고 알려져 미용에 좋다고 한다. 낮에 본 온천지옥에서
보글보글 끓으며 솟아나는 온천물을 떠올리며 노천탕을 들락거렸다.
이곳 운젠에는 여관, 호텔의 욕탕과 노천탕 외에도 공동욕탕도 많이
개발되어 손님을 부르고 있다. 운젠은 아소, 가고시마와 함께 벌써
1934년에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즉시 앞에 보이는 산을 오르자 하고서도 아쉬워서 아침 식사시간까지
온천탕을 들락거렸다.
(화산재가 처마까지 덮어버린 가옥)
▲ 시마바라(島原)에서 보는 화산의 위력
아침 식사를 뷔페로 마친 우리는 구마모토로 가기 위해 시마바라로
갔다. 가는 도중에 후겐다게(普賢岳, 1359m), 묘겐다게(妙見岳, 1333m)
같은 높은 산이 곧 불기둥이 솟아오를 듯한 기세로 서 있다. 아닌 게
아니라 1991년 11월 17일에 198년만에 터진 화산으로 높아진 평성신산
(平成新山)이 뿌연 모습으로 서 있다. 평성(平成)은 천황의 연호로 이
시기에 새로 생겨난 산이란 뜻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못 갔지만
운젠니타 고개(仁多峠)에 가면 로프웨이로 화산활동을 볼 수 있는
후겐다케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소산에 올라 로프웨이를
타고 화산 활동을 보는 계획이 있어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운젠산의 품속에 안겨 있는 시마바라시는 반도의 남쪽에 위치하여
옛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조용한 도시이다. 1618년 대명 마츠쿠라
시게마사가 시마바라성을 쌓기 시작하여 7년 남짓한 세월에 걸쳐
완성된 성은 지금 유서 깊은 성으로 알려져 있다. 1637년 이곳에서는
농민들이 과중한 세금과 기독교금지 등에 대항하여, 16세의 소년
아마쿠사 시로오(天草四郞)를 대장으로 '시마바라의 난'을 일으켰다.
바쿠후는 4개월에 걸쳐 이 난을 진압하고, 이후 예수나 마리아의
그림을 밟게 하는 방법으로 기독교 신자를 가려내어 처벌하는 등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계속됐던 곳이다.
시마바라에서 우리가 찾은 곳은 화산 토석이 흘러 피해를 입은 가옥을
보존해 놓은 조그만 공원이었다. 눈앞에 희뿌연 운무가 서린 평성신산이
보이고 주차장 아래 당시 피해 입은 가옥 몇 채가 보존되어 있다.
입구에는 이 때 피해로 사망한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상이
특이한 형태로 모셔져 있고 옆에는 이곳에 견학 온 학생들의 교육 장소와
기념품 가게,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휴화산인 후겐다께(普賢岳)는 1991년
11월 17일 폭발을 재개하여 13차례 활동, 토석류와 화쇄류로 인하여
인명 피해 55명, 건물 파괴 2,511동이라는 손실을 입혔다. 현장에는 화산
폭발 전의 시가지 모습과 피해를 당한 모습을 담은 사진과 처마까지
토사가 쌓인 집 한 채를 지붕을 만들어 덮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화쇄류(火碎流)는 고온의 바위 덩어리와 화산재가 고온의 가스와 혼합,
수백 도가 넘는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달하는 속도로 지표를 흐르는
현상으로, 흐르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기 때문에, 대피하기 어려워
화산 분화 현상 중에서 가장 위험하며,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온다.
토석류(土石流)는 화산 활동에 의하여 분출한 화산재가 골짜기에 대량
퇴적되었다가, 집중호우 또는 강우 등에 의하여 퇴적물이 물과 바위와
토사 등이 혼합된 채 한꺼번에 흐르는 것으로, 시속 50km 정도에 달하는
경우도 있으며, 큰 바위와 나무 등을 쓰러뜨리면서 흘러내리므로 가옥이나
건물을 매몰시키기도 한다.
이 세상 어느 나라나 한 가지 걱정이 없는 곳은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이 화산과 지진으로 평생 불안감을 갖고 살아야 하며, 건축이나 토목공사
때에도 제약을 받는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실제로 다리
같은 곳은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이음새 부분 구멍에 여유를 두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당시에도 화산의 조짐을 인지하고 미리 대피령이 내려졌으나
대피 기간이 너무 길다 보니, 생업을 위해 그냥 돌아와 살다가 인명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가게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기념품이 진열 됐으나
눈길을 끄는 것은 곳곳에 놓인 5개의 호박이다. 어떤 것은 136,5kg이나
된다. 밀감도 아주 싸서 100엔에 10개 정도다. 이곳은 농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여 우리 나라에 감자나 양파 같은 우량 종자를 수출하기도 한다.
(다음에는 '구마모토성'과 '아소산'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그림 같은 포구, 바다와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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