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라봉 정상에 핀 수선화(水仙花)
지난 토요일, 내가 거의 매일이다시피 운동 삼아 산책 삼아 오르는 사라봉
정상에서 활짝 핀 수선화를 만났다. 옆으로 고개를 숙이기만 해도 알싸한
향기가 확 풍긴다. 이렇게 짙은 향기를 풍기건만 한겨울이어서 그런지
나비 한 마리, 벌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놈은 씨앗을
생산하지 못하고 구근(球根)인 비늘줄기로 번식한다.
하긴 소나 돼지도 먹지 못할 정도의 독성을 품고 있는 데도 그 원인이 있다.
하지만 이곳 제주에서 같은 시기인 12월부터 3월까지 피는 동백은 꽃이 크고
꿀을 많이 품고 있어, 동박새라는 새가 꽃가루를 날라주어 열매를 맺게 한다.
11cm의 조그만 동박새가 꽃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긴 부리로 꿀을 빨며
날개를 팔랑거릴 때면 꼭 한 마리 나비처럼 보인다.
수선화는 원래 유럽과 지중해 연안에 야생하던 것이 화초로 심게 되면서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 남해안과 제주도에 퍼진 것이라는데,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야산이나 공터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것을 흔하게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토에서 꽃으로 재배되는 수선화와 제주도에
야생하는 수선화는 꽃 모양부터가 다르다. 중국이나 본토에서 심는 하얀 꽃의
수선화는 5∼6장의 하얀 꽃잎과 가운데 노란빛의 동그란 부화관이 있다.
그 모양이 잔대에 잔을 받친 것 같다 하여 흔히 금잔은대(金盞銀臺)라고 일컬어
왔다. 그러나 제주에서 자라는 수선화는 흰 꽃잎이 두 겹으로 9장이고,
가운데에 암술과 수술로 보이는 노랗고 짧은 꽃잎 여러 개를 두르고
사이사이에 하얀 꽃잎이 솟아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한 줄기에 네 송이가 활짝 피어난 수선화 향기를
맡고 있지만, 퇴화해버렸는지 아무래도 꽃가루는 안 보인다. 제주에 같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문주란 자생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수선화도 외래종이
아닌 자생 식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생식물은 이외로도 한란과 춘란 등
얼마든지 더 있다. 학교 다닐 때 꽃을 내라고 하면 할 수 없이 가시덤불
속에 자라는 수선화를 파다가 길섶에 심던 생각이 난다. 겨우내 피던 꽃이
지고 나면 5∼6월에 잎이 말라버렸다가 늦가을에 다시 순이 나기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아무 때나 옮겨 심어도 되는데,
그 해 꽃을 보려면 여름에 작은 양파 모양의 짙은 흙빛으로 둘러싸인
구근을 옮겨 심으면 된다.
수선화는 햇볕을 좋아하기 때문에 양지에 있는 것들은 잎줄기가 짧고
일찍이 많은 꽃을 피우고, 그늘에서 햇볕을 제대로 쬐지 못하면 봄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도 꽃 한 송이 피지 않는다. 때문에 자생하는 것들은
주로 북쪽 바람을 막아주는 돌담이 둘러친 양지에서 많은 꽃을 피운다.
내가 다니는 사라봉 북쪽 산책로에는 이를 감안하지 않고 소나무 그늘에
심어놓아 줄기만 무성하다. 지난 세밑에 남조로 한 민가에서 소담스럽게
꽃대가 솟아오른 수선화 한 포기를 얻어다 화분에 심어 방안으로 퍼지는
은은한 향기를 즐겼는데, 꽃이 진 뒤 좁은 화단에 내 놓았더니 지금은
햇볕을 골고루 받지 못하여 잎줄기만 길쭉하고 무성하게 자랐다.

♧♣♧ 수선화를 노래한 시편들
수선화는 온갖 추위를 이기고 겨울에 핀다는 점 외에도 그 꽃이 난(蘭)처럼
맵시 있고 아름다워 많은 시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거기에 짙은 향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르시스 전설에서 온 꽃말 '자기사랑', '자존심',
'자기도취', '고결'이라는 이미지는 시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수선화' 시의 고전의 돼버린 영국의 시인 월리엄 워즈워스의
"하염없이 있거나 시름에 잠겨 / 나 홀로 자리에 누워 있을 때 /
내 마음속에 그 모습 떠오르니, /이는 바로 고독의 축복이리라 /
그럴 때면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 수선화와 더불어 춤을 춘다"가
아니라도, 가곡이 되어 우리 심금을 울리는 김동명의 '수선화'가 있다.
그대는 차디찬 의지(意志)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나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부칠 곳 없는 정열을
가슴 깊이 감추이고 찬바람에 빙그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不滅)의 소곡(小曲),
또한 나의 적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서정시인 류시화 씨는 제주도가 신혼 여행지라는 생각에 아름다운 신부의
이미지가 얼른 떠오른 모양이다.
"여기 수선화가 있다, 남몰래 /
숨겨 놓은 신부가 // 나는 제주 바닷가에 핀 / 흰 수선화 곁을 지나간다 //
오래 전에 누군가 숨겨 놓고는 잊어버린 / 신부 곁을"이라고 짤막하게
마감한다. 한 송이 갓 피어오른 수선화를 대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시조시인 홍성운은 엉큼하게도 다음과 같이 읊는다.
한겨울에 저렇듯 푸를 수 있다니
그것도 숭숭한 섬의 담장을 베고
어기찬 하늬바람을
견딜 수 있다니
늦은 햇살에 지레 속잎을 펴며
넌지시 하늘을 떠받칠 때부터 나는,
보았네
절명의 순간에
꼿꼿할 네 모습을
이윽고
화려한 것들이 몸을 오그릴 때
너는 깨어
기(氣)를 모으고
허옇게 사정했구나
오오! 겨울 오르가슴!
그러나 저러나 수선화의 많은 시편을 여기서 다 열거할 수나 있겠는가?
제주작가회의에서 몇 번의 문학강좌를 갖고 여러 문학지망생들의 요청에
의해 초청되었던 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의 시인 정호승도 강의가
끝난 뒤 뒤풀이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자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눈비비고
꽃을 보았는지 '수선화에게'를 이렇게 썼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많은 전설을 안고 있는 수선화
나르키소스(Narcissu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테스피아이의 미소년으로,
보이오티아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레이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세이스'에 따르면, 레이리오페는 나르키소스를 낳자
테베의 예언자에게 아들이 오래 살 것인지를 물었는데, 테이레시아스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것"이라고 대답한다. 나르키소스가 점점 자라
그의 아름다운 용모에 반한 숱한 처녀와 님프들이 구애하였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메이니아스 같은 이는 사랑을 거절당하자 나르키소스가
준 칼로 자결하기까지 하였다.
숲과 샘의 님프인 에코도 그를 사랑하게 되는데, 헤라로부터 귀로들은 마지막
음절만 되풀이하고 말은 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아 마음을 전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에코는 나르키소스로부터 무시당하자 실의에 빠져 여위어 가다가 형체는
사라지고 메아리만 남게 되었다.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코?)이, 나르키소스 역시 똑같은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빌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이를 들어주었다. 헬리콘산에서 사냥을 하던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샘만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탈진하여
죽는다. (샘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도 있다.)
고대 유적에 대한 묘사로 잘 알려진 '그리스 안내'의 저자 파우사니아스는
나르키소스는 먼저 죽은 쌍둥이 여동생을 그리워하여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통해 여동생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으로 해석한다. 그가 죽은 자리에는 시신 대신
한 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나르키소스(수선화)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자기애(自己愛)를 뜻하는 나르시시즘도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중국의 삼국 시대에 진씨라는 미인이 있었다. 위나라 조식이라는 사람이
진미인을 무척 사모하고 있었는데, 그의 형인 문제(文帝)가 동생보다 먼저
진미인을 궁궐 속으로 불러드렸다. 조식은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어
마음 아파하고 있던 차에 궁궐에 들어갔던 진미인은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제서야 모든 사정을 깨달은 문제가 동생 조식에게 아쉬운 대로
진미인의 베개라도 베어보라고 하며 그녀의 베개 하나를 주었다.
조식은 진미인의 베개를 베고 잤는데, 어느 날 그리던 진미인의 꿈을 꾸게 되어
너무도 반가워 잠자리에서 깨어나 시 한편을 지었는데
그것이 유명한 '낙신부(洛神賦)'이다.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와 수선화
불교문화연구원장으로 계신 소암 스님은 '수선화를 찾아서'라는 글에서
해마다 양력 2월초면 수선화를 만나러 제주도에 간다고 했다.
그림으로 유명한 일장스님의 토굴에 피어있는 수선화를 몇 해 동안 보는 사이에
허난설헌이 왜 수선화를 읊었고, 제주도로 유배간 추사 김정희가 왜 평생
수선화를 사랑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문 귀족이요,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추사가 아무도 찾지 않는 천애고독의 대정현에서 모진 겨울 바람을 맞고
있을 때도, 수선화는 몰래 피어났던 것이다. 초의선사가 보내준 작설차 한 잔으로
시름을 달래며 외로이 서 있는 송백을 보면서 '세한도(歲寒圖)'를 그리던 밤에도.
추사의 편지글을 보면, 그의 옆에서 말없이 피어난 수선화가 얼마나 그의 마음을
위로했는지 잘 나타난다. "이 죄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의 문 동쪽과 서쪽이
수선화로 가득하지만 돌아보건대 굴속에 처박힌 초췌한 이 몸이야 어떻게 이것을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거니와, 눈을 뜨면 눈에 가득
들어오니, 어찌 하면 저 아름다운 수선화 융단들을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수선화를 홀로 대하니 아름다운 선비가 생각났는데, 곧바로 값진 편지를 받으니
신의 어울림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그의 시 '수선화'에는 꽃을 해탈한
신선으로 묘사되기에 이른다.
一點冬心朶朶圓 한 점 겨울꽃이 송이송이 동그랗게 피었나니
品於幽澹冷雋邊 그윽 담담하고 싸늘 준수하게 빼어난 자태.
梅高猶未離庭 매화는 고상하지만 섬돌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淸水眞看解脫仙 맑은 물에 참 모습, 바로 해탈한 신선일세.
지치고 외로운 9년의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곁에는 아무도 눈 여겨
보아주지 않으나 저만의 독특한 자태와 진한 향기로 품격 높게 피어난 수선화가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예술의 경지처럼 고고한 이 수선화를 벗하며 즐겨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예술을 몰라주는 것처럼
제주 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수선화의 가치를 몰라보는 것이 안타까웠다.
'수선화가 가는 곳마다 즐비해서 골짜기로 헤아릴 만하다. 밭이랑 사이에 더욱
무성하게 자랐는데, 그곳 사람들은 무슨 물건인지 몰라 보리밭 맬 때에 호미로
모두 뽑아버리고 만다.'
碧海靑天一解顔 푸른 바다 파란 하늘에 반가이 너를 보니
仙緣到底未終 신선 인연 가는 곳마다 반색을 하는구나.
鋤頭棄擲尋常物 호미 끝으로 이리저리 캐 버린 것을
供養窓明 淨間 깨끗한 책상 앞에 고이 옮겨 심었네.
또, '年前禁水仙花 연전에 수선화를 캐 버리라 했네'라는 제(題)로 다음과 같이 썼다.
鼈 曾未到神仙 무식쟁이는 신선 사는 데 가지 못하는 법
玉立亭亭識舊顔 옥같은 모양, 나만이 너를 알겠구나.
一切天 元不染 천연의 향기는 원래 티끌에 물들지 않는 법
世間亦復歷千艱 세간에 너 또한 오랜 어려움을 지내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