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집의 제주 전통문화 이야기 ⑩
이 글은 제주민예총이 발간하는 '계간 제주문화예술' 2005년 여름호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지역 문화를 얘기하는 것이어서 방언이 많이 들어갔는데 블로그에 '아래아( · )'를 넣을 수 없어서 대신 '오'로 바꿨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진은 어제 벌초길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 제주민과 가장 친숙했던 곡식 '조(粟)'
우리나라에서 흔히 오곡(五穀)으로 불려지는 쌀, 보리, 조, 콩,
기장 중에 제주 땅에 알맞고 또 제주민과 가장 친숙한 곡식을 들라면 누구든지 '조'를 들기에 주저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조밥으로부터, 좁쌀로
만든 갖가지 떡, 그리고 막걸리와 청주(淸酒) 만드는 데에 이르기까지 서민의 생활 속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조와 조농사에 대해
알아본다.
조(粟, Italian millet)는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의
한해살이풀로 좁쌀을 얻기 위해 밭에서 재배한다. 원산지는 동부 아시아이며 그 원형(原型)은 강아지풀(S. viridis)이다. 조는 고대부터
재배되었으며, 중국에서는 BC. 2700년에 이미 5곡(五穀)의 하나였다. 한국에서도 옛날부터 구황작물(救荒作物)로서 중요시되어 왔으며, 가뭄을
타기 쉬운 산간지대에서 밭벼 대신 많이 재배해 왔다.
조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전국적으로 재배해 온 작물로서
한때는 보리 다음으로 많이 재배했던 밭작물이었으나, 요즈음 식생활이 바뀌면서 극히 적은 면적에서 재배되고 있다. 조는 씨앗의 성질에 따라 차조와
메조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지방에서는 일본종, 북부지방에서 중국 전래 품종이 다소 재배되나 전국 재배 품종은 한국 재래품종이 주를
이룬다.
조의 재배환경은 온난하고 건조한 기후를 좋아하며 다소 가뭄이나 저온에도 잘 견딘다. 발아의 적온은 30∼31℃이다. 병해충으로는 조군데병이 있는데 잎이 점차 담갈색으로 변해서 찢어지고 가색의 가루를 날리다가 백발이 되는 병이다. 조는 쌀이나 보리와 함께 주식의 혼반용으로 이용되며 지금은 엿, 떡, 소주 및 견사용의 풀, 새의 사료 등으로 이용된다.
▲ 어려어려 밭 밟는 노래
좁씨를 파종하는 일은 여느 작물을 파종하는 작업보다 힘들다. 밭
밟는 일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화산회토여서 흙이 마르기 쉬운 초여름 아주 작은 씨앗을 싹틔우려면 잘 밟아줘야 한다. 더욱이 잘 감춰 꼭꼭
밟아주지 않으면 개미를 비롯한 많은 곤충들의 해를 입든지 싹이 튼 뒤 비바람에 쉽게 뽑히기 때문이다. 밭벼도 토질에 따라서 가끔 밟는 수가
있다.
조농사를 많이 했던 이유는 중산간 화산회토나 해변을 가리지 않고
잘 되었던 까닭이기도하려니와 한 때 밭의 주작물이던 보리농사를 끝내고 다시 보리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2모작으로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6월
초순 보리를 베고 비가 오면 밭을 거시려(보리 그루터기를 갈아엎는 일을 말함) 두었다가 적당한 기간을 두고 다시 갈아
파종한다.
파종 시기는 6월말에서 7월 초순까지로 먼저 밭을 갈아엎고 씨를 뿌린 다음 섬피(쥐똥나무 같은 나무를 부채꼴로 엮어 끌며 씨앗을 묻고 밭이랑을 고르는데 쓰는 농기구)로 끌어 밭을 고르고 씨앗을 감춘다. 그리고는 목장에 가 있던 소나 말떼들을 끌고 와서 밭 위를 걷게 하면서 사람이 같이 탄탄하게 밟는데, 이 때 작업의 흥을 돋우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이러러러러러 돌돌돌돌돌돌 어허랴앙 하아랴앙/ 이 산중의 놀던 송애기덜아 저산 중에 놀던 모쉬덜아/ 오널날은 아무리 호여도 호고야 말 일이로구나/ 어허랴앙 하아랴앙 어 돌돌돌돌돌돌(어러 식게!)/ 높은 동산이랑 맬라가멍 높은 듸 노진 듸 으시 돌랑돌랑 볼르라 오 아/ 어랴앙 하아랴앙 어려 돌돌돌돌돌돌(어 식게!)…'
△ 마가지와 조 김매기
조를 파종하여 발아하는 기간인 보름 동안 비가 안 오면
'마가지'라 하여 묘종이 실하고 잡초가 없어 모두 선호했다. 그러나, 그 전에 비가 내리면 땅이 굳어져 묘종이 부실하고 잡초가 많아진다. 그것은
비가 안 오면 막 싹이 트려던 잡초의 씨앗이 보름 동안에 모두 말라버리고, 비가 오면 그것이 다 살아나는 한편 땅이 너무 굳어버려 조 묘종은
부실한 것이다.
조 묘종이 돋아난 것을 보면 어떤 곳은 발아가 잘 되지 안거나
벌레의 피해를 입어 텅 비게 되는데, 이를 '벗었다'고 하며, 조의 묘종이 커지고 비가 오면 잦은 곳에서 솎아다 심어야 한다. 조의 묘종이 손에
잡힐 만큼 커지면 우선 솎기 작업이 이루어지고, 그 후 새로 솟아나는 잡초가 있게 되면 두벌 김매기가
이루어진다.
조의 종자로는 '개발시리'라는 차조와 '강돌아리'라는 메조가 주로
재배되었는데, 나중에는 청돌아리, 쉐머리시리, 볼고시리, 모시리, 흔덕시리 등 몇 가지 품종이 더 들어와 재배되었다. '개발시리'는 이삭이 짙은
초록색으로 축 늘어지며, 보리밥이나 쌀밥에 조금 넣어 먹거나 떡과 술을 빚는데 쓰인다. 반면에 강돌아리는 이삭이 노란 게 방방이처럼 생겼으며,
주식용으로 맨 좁쌀이나 고구마를 넣어 밥을 해
먹었다.
이삭이 피고 나면 '고랏' 또는 '고라지'라고 부르는 강아지풀을 뽑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씨앗이 떨어져 다음해에는 걷잡을 수 없는 강아지풀 밭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두벌 김매기 때는 보통 사람은 구분이 잘 되지 않으나 진짜 농군은 쉽게 구별한다. 조는 한 줄기로 자라고 강아지풀은 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기 때문이다.
▲ 조 베기와
장만하기
추석이 끝나 꼴을 베고 나면 10월말로 접어든다. 요즘은 일찍
갈고 일찍 거두는 형편이지만 보통 양력 10월말이 되면 조가 다 익어 거두어들인다. 맑은 날씨를 택하여 뿌리 쪽 그루터기만 남기고 베어 크게
묶어 등짐 혹은 소나 말에 길마를 얹어 싣고 집으로 날라 온다. 양이 많고 길이 좋을 경우 마차를 이용하는 수도 있다. 조를 베다가 가끔
갈재기(개똥참외)나 푸께기(꽈리) 등을 발견하여 따먹던 기억이 새롭다.
묶인 채로 울타리나 마당 또는 눌굽(낟가리 자리)에 세우거나 걸쳐 이삭을 어느 정도 말리고 고고리(이삭)를 따게 된다. 보리는 목이 약해 틀을 이용하여 훑지만 조는 이삭이 크고 세서 이삭만 자른다. 이를 '조코고리 톳는다'고 하며, 낫을 세워 종아리로 누르고 조이삭 몇 개를 가지런히 한 다음 싹둑 잘라내는 것이다.
잘라낸 조 이삭은 잘 말린 다음에 연자방아간에서 찧어 이삭과 낱알갱이로 분류해낸다. 많지 않은 것은 덩드렁마께(나무로 만든 짧은 방망이)로 두드려 빼거나 남방애(절구)에서 찧기도 한다. 이때 얼맹이(대나무로 짠 구멍이 큰 체)로 쳐서 남은 고갱이 부분을 '강매기'라 하며 보통 소먹이로 주고, 불림질하여 여물지 않은 부분을 '졸레(죽정이)'라 하여 닭모이나 돼지 사료로 사용한다.
♬ Un Poete (시인) - Alain Barri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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