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집의 제주 전통문화 이야기 ⑤
이 글은 제주민예총이 발간하는 '계간 제주문화예술' 2003년 가을과 겨울 합병호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지역 문화를 얘기하는 것이어서 방언이 많이 들어갔는데 블로그에 '아래아( · )'를 넣을 수 없어서 대신 '오'로 바꿨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진은 어제 다랑쉬오름 산행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 뚝깔 꽃
▲ 밥상머리 교육이 요구되는 시대
어느 시대든 '요새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들이 인터넷이나 휴대폰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구축하고부터는 그 버릇없음이 극에 달했다. 이는 '적게 낳자'는 인구 정책으로
한둘만 낳아 자식을 왕자나 공주로 떠받들어 '잘 한다! 잘 한다!' 하며 자식들 위주로 키운 결과의 산물이다. 심지어는 '어린 초등학생들이
어떻게 청소를 하느냐'고 자모가 학교에 나와 청소를 대신하는 형편이니, 그렇게 나약하게 키워 어떻게 하려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오늘날 이렇게 변한 것은 대화의 창구가 없는 데서도 그 원인이 있다. 이제 핵가족화가 이루어지고 도시건 농어촌이건 맞벌이를 해야 살 지경이 되다 보니 하루 한 끼만이라도 같이 식사하며 이야기할 기회를 못 갖는 가정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밥상머리 교육이라 하여 여러 세대가 식사를 하는 가운데 저절로 인간의 도리나 몸가짐에 대한 기본 예절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다. 이런 식의 몸에 배게 하는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지 제도권에 들어오면 이미 굳어져 교정이 힘들다. 지금이야말로 밥상머리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 구름체꽃
▲ 일터가 교육장이던 시절
옛날 서민들은 정식 교육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생활에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는 서당이라도 다니게 했겠지만, 바쁘고 못 사는 집안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일감을 주었고, 좀더 자라나서는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일하게 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일터가 교육장이 된다.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가업을 잇는 일부터 시작해서 모든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같이 일하다 보면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이가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한 여러 가지 지혜를
몸으로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글을 모르는 아이들이었기에 중요한 것은 구비문학(口碑文學)이라는 형태를 빌어 외워서 대대로 전하도록 했다. 유형 무형의 전통 같은 것은 사안에 따라서 재미있는 설화(說話)로 만들기도 하고, 일의 능률도 올리면서 즐겁게 일을 하는 민요(民謠)로 부르기도 했다. 중요한 것들은 아예 속담(俗談)으로 만들어 생활의 지침이 되도록 하는가 하면, 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은 금기(禁忌)로 가르쳤다.
* 쑥부쟁이꽃
▲ 그 시대의 우주관으로 이해해야 할 금기
지금에 와서 당시의 금기(禁忌)를 단순히 미신적인 것으로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전해오는 금기어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온갖 지혜를 다 짜내어 창작한 시대의 산물이다. '금기(禁忌)'는 보통
'터부(taboo)'로 번역되는데, 폴리네시아어 '터부(tabu)'에서 나온 말로 '금기(禁忌)된'의 뜻이다. 폴리네시아의 여러 언어계 속에서
이 말은 주로 '금지하다' 또는 '금지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행동과 의례의 규칙, 추장의 명령, 손윗사람의 소지품에 손을 대지 말라는
아이들에 대한 타이름의 말, 남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말도 이 용어로 표현한다.
터부 또는 의례적 기피는 결국 기피(忌避)나 금기(禁忌)와 같은
것으로서 사회적(세속적) 기피와 주술종교적 기피로 나눌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 지키지 않으면 안될 터부와 그것을 깨면 반드시 신령의 제재가
가해지거나 자동적으로 위해를 받게 된다는 신성한 터부가 있다. 그러나 제주섬에서 전해지는 금기(禁忌)는 거의 전자에 속한 것으로 어떤 경우에
지켜야 하는 생활 철학으로 이해하면 좋다. '위험하니까 불장난해서는 안 된다'를 '불 방둥이호민 바믜 오좀 싼다(불장난하면 밤에 오줌 싼다)'와
같이 표현했다고 해서 이를 현대 과학으로 따지러 들면 곤란하다.
많은 것들이 있지만 몇 가지만 예를 들어 선인들의 지혜를 엿보고자 한다.
* 며느리밥풀꽃
▲ 혼사와 임신 출산에 따른 금기
(1) 삼년상 넹기기 전인 혼사 안 혼다(삼년상 넘기기 전에는 혼사 안
한다)
(2) 세각씨 들어올 땐 시어멍광 눈 마주치지 말라(새색씨 들어올 때 시어머니와 눈 마주치지
말라)
(3) 잔치 맞춘 집 석 돌 열를 정성혼다(잔치 맞춘 집 석 달 열흘 정성한다)
(3) 혼사광
쉐질메까진 거꿀로 지우지 마라(혼사와 길마는 거꾸로 지우지 마라)
혼사는 당사자간의 평생을 좌우하는 계기가
된다. 이런 대사를 그르치지 않으려면 많은 정성과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1)인 경우 '상중(喪中)에 혼사를 치러서는 좋지 않다'는
뜻이겠고, (2)인 경우는 '그렇지 않아도 고부간의 갈등이 염려되는데, 들어올 때부터 눈이 마주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하는 염려일 것이다.
(3)은 '적어도 혼사 100일 전부터는 집안에 궂은 일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르게 하자'는 경우로, (4)는 '혼사는 될 수 있으면 순서대로
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5) 에기 벤 예펜 말석 넘지 말라(아기 밴 여자 말고삐 넘지
말라)
(6) 에기 벤 여자 철릿장 보지 말라(아기 밴 여자 천리장 보지 말라)
(7) 에기 난 때 베똥줄
쪼르게 끄치지 말라(아기 났을 때 탯줄을 짧게 끊지 말라)
(8) 몸 갈른지 일뤠 안엔 몸 구진 사롬 안 들어댕긴다(몸 푼지
이레 안에는 몸 비린 사람 안 드나든다)
임신과 출산도 가운(家運)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5)에서는 '임신한 몸으로 말고삐를 넘어 다니면 위험하다'는 뜻으로 말은 쉽게 놀라 날뛰는 수가 있기 때문에 만일을 생각하고 염려한 대목이다. (6)은 '임신한 몸으로 천리장(무덤을 옮길 때의 시신)을 보지 말라'는 것인데, '아무데나 가서도 안 되고, 좋지 못한 것을 봐서도 안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같다. (7)인 경우는 '탯줄을 짧게 자른 경우 묶기가 어려워 자칫 낭패볼 수가 있으니, 충분히 간격을 두고 자르라'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고, (8)도 '분만 후 몸 궂은 사람이 출입해서는 산모나 아기에게 감염의 우려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 양하 꽃
▲ 바다와 관련된 일의 금기
(9) 바릇구덕 메영 나갈 때 빈 허벅진 여자 질칼르문 제수
읏나(어롱 매고 나갈 때 빈 허벅 진 여자가 길을 가로지르면 재수 없다)
(10) 베 부서진 낭은 집의 안 가졍 든다(배 부서진
나무는 집에 안 가지고 온다)
(11) 에비아돌광 성젠 혼 배에 안 탄다(부자와 형제는 한 배에 안 탄다)
위는 어로 작업에 관한 금기로 과거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는 삶의 철학처럼
여겨지는 사항들이다. (9)는 단순히 '여자가 앞서서 길을 가로지르는' 일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언짢은 일이 있으면 일하면서도
기분이 내키지 않으니까 바다로 일하러 나가는 사람을 대할 때는 행동을 조심히 해 달라는 주문이다. (10) 같은 경우는 배를 생명과 같이
여기라는 데서 나온 말로 해석되며, (11)은 사고가 많았던 당시의 상황에서 대를 끊기지 않으려던 안간힘으로
보인다.
(12) 웨 곰수기 노는 듼 가지 말라(돌고래 혼자서 노는 곳엔
가지 말라)
(13) 줴기 사을은 물에 안든다(조금 사흘은 물에 안 든다)
(14) 동짓돌광 섯돌엔 전북 안
조문다(동짓달과 섣달엔 전복 안 잡는다)
이것 역시 바다에서 몸을 담그고 작업하는 잠수들에게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 내용과 남획(濫獲)을 막아 언제나 해산물을 풍부하게 유지하려는 지혜가 담겨 있다. (12)는 과거 돌고래 떼는 잠수들이 작업하는 곳에 자주 출현하나 사람을 헤친 적이 없지만 '혼자서 노는데는 상어가 있다든지 위험한 일이 있을지 모르니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일 것이다. (13)은 '어장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보름 기간 중 물이 잘 안 써서 작업이 힘든 조금 기간 사흘 정도는 채취를 하지 말자'는 내용이고, (14) 역시 '산란기인 11월과 12월에는 전복을 잡지 말자'는 절제되고도 단호한 금지령이다.
* 절굿대 꽃
♬ Che Sara - Jose Felic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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