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고인돌의 왕국 - 가파도

김창집 2003. 6. 26. 10:45

탐라문화보존회 가파도 답사기[2003. 6. 15.]

 

 

(가파도와 마라도의 위치)

 

▲ 가파도 좋고 마라도 좋고

 

 우리 나라의 최동단 독도가 울릉도에 딸려 있듯이, 최남단 마라도는 가파도에 딸려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못살포(모슬포) 사람들이 '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꿔주며' 하는 우스갯소리는 "가파도(갚아도) 좋고 마라도(말아도) 좋다."다. 이렇듯 가파도와 마라도는 서로 마주 보며 한 쌍이 되어 제주섬 남쪽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둥둥 떠있다. 그래서 이번 '제주섬에 살면서 가파도 답사 한 번 가야 하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말에 힘입어 가파도 여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30년 전 대학생 시절에 1박2일 일정으로 학술조사차 가파도와 마라도를 다녀온 적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회가 닿지 않아 못 가봤다 한다. 우선 모슬포와 가파도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 '삼영호'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더니, 91명 정원의 배가 하루 두 번 왕복하는데, 아침 8시 반과 오후 2시모슬포 항에서 출발하고, 아침 9시와 오후 3시에 가파도에서 출발한다고 했고, 편도 요금은 3,200원이었다. 나는 아침 8시 반 배로 들어가서 오후 3시에 오면 되겠다 싶어, 아침 7시 제주시청에서 출발하는 계획을 세우고는 안내문을 발송

했다.

 

 그러나, 잘해야 한 50명 정도 신청하겠지 하던 예측이 깨지고 금요일 저녁까지 118명이 접수해서 문제가 생겼다. 정원이 91명이다 보면, 정기선으로는 우리만 타도 자리가 부족하다. 같은 섬인데도 우도 연락선은 배 2척이 계속 운항해서 나들이에 걱정이 없고, 비양도는 계약만 하면 연속해서 건네주는데, 이곳은 일요일엔 마라도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다시 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파도 해안에 많이 피어 있는 갯메꽃)

 

▲ 가파도 - 가깝고도 먼 섬

 

 그래서 머리를 짜낸 것이 아침 8시 반 정기 운항 전에 한 번 다녀오고, 오후 마지막 운항이 끝난 뒤 다시 운항을 부탁해 보는 것이다. 그러자면 7시반에 출항해야 하는데, 모두들 한 시간 전에 나와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의논해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대안으로 ① 비용은 더 들지만 유람선 타고 마라도 다녀오는 것 ② 작년에 다녀왔지만 우도 답사로 돌리는 것 ③ 가고 싶다는 곳이 있으면 중지를 모아 가는 것 등의 복안을 마련해 놓고, 1시간 앞당겨질 것을 알리기 위해 연락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은행 계좌로 입금하거나, 사업이사 사무실로 전화 접수, 내 메일과 휴대폰으로 접수받은 게 섞이다 보니, 거의 1천명에 육박하는 명단을 뒤져 전화번호를 찾는데 애먹었다. 회원의 친구나 가족인 비회원의 접수해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이 30명이나 되었다. 토요일 아침 출항이 가능하다는 통보와 아침 일찍 나오면 식사할 시간이 없기에 도시락 6개만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답사 자료를 인쇄하고, 재무이사와 명단을 반씩 나누어 7시까지 나오는 것이 아니라 6시까지 나와야한다고 통보했다.

 

 연락이 안 닿은 회원을 위해 아무도 몰래 차 1대는 7시에 올 사람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알게 되면 모두 늦게 나오려 할 것이기 때문에. 아침 6시 20분까지 나온 회원은 70명, 차 1대 그리고 접수와 인솔을 친구에게 부탁하고 2대가 출발했다. 어차피 한꺼번에 배를 타지 못하고 정기선을 이용해야 하니까. 모슬포 항에 막 도착했을 때 친구로부터 자신을 포함해 41명이 출발한다는 전화가 왔다. 배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출발할 때야 비로소 홀가분해질 수 있었다. 25분만에 건널 수 있는 이곳 가파도에 오기 위해 얼마나 힘을 쏟았던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재미있는 바위)

 

▲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

 

 방파제에 이르렀을 때 마침 한 낚시꾼이 놀래기를 낚아 올렸다. 다가서 보니 뱅에돔이나 감성돔 같은 것은 못 잡고 자리돔만 몇 마리씩 낚았다. 정기선 사무장은 1시간 후에 하동포구로 온다는 말을 남기고 뱃머리를 돌려 모슬포 항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먼저 온 70명의 회원을 인솔하여 마을의 중심부인 하동항으로 가면서 1시간을 보내야 한다. 방파제를 천천히 걸어나와 해안도로를 걸으며 가파도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가파도는 남제주군 대정읍에 속하는 섬으로 전체가 가파리 한 마을이다. 면적은 0.9㎢인데, 142가구에 346명이 살고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4.2㎞, 제일 높은 곳이 20.5m니까 굴곡이 없이 그냥 납작한 섬이다.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5.5㎞ 해상에 위치하여 연락선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이 표류되어 우리 나라에서 14년 지내다가 귀국한 뒤에 쓴 '하멜표류기(漂流記)'에는 '케파트(Quepart)'로 소개됐다. 날씨가 따뜻하고 해산물이 풍부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나, 고려말에 해적이 창궐해 주민이 모두 대피한 뒤로는 소를 방목하는데 그치고 사람이 살지 않다가 조선시대 중기 해적의 출몰이 잠잠해지는 1750년(영조 26)경에 소 50마리를 방목하면서 이를 지키려고 모슬포에 거주하던 김씨, 라씨, 강씨, 양씨, 이씨 등 40여 가구가 건너와 살기 시작했다. 제주도 부속도서 중 식용수가가장 풍부한 곳이다.

 

(곳곳에 쌓아놓은 담의 모습. 방풍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참외가 유명했고, 술을 팔지 않았던 동네

 

 평지이기 때문에 숲이 없고 섬의 대부분은 밭으로 조성되어 과거에는 겨울에 보리 농사를 지었고, 그 그루터기에 참외 씨를 뿌리면 병충해도 없고 그렇게 잘 자라 '가파도 참외' 하면 유명했다. 여자들은 10살이 되면 물질을 배워 70살이 넘도록 해녀 생활을 했었는데, 해산물이 너무나 풍부했기 때문에 그 수입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어 남자들이 주야장창 취해있는 날이 많았기로 술 판매를 금해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은 술을 사서 들어와야만 했다. 전의 경험도 있고 소라라도 잡으면 한 잔 해보려고 회원이 가져온 막걸리 1상자 외에 사비(?)를 털어 플라스틱 병에 든 4홉 소주 3병을 배낭에 넣고 왔는데 지금은 술을 팔고 있었다.

 

 해녀와 어부들이 활동으로 생산하는 전복, 소라, 옥돔, 자리돔, 자리젓 등의 특산물이 주 소득원이다.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송악산과 그 너머 산방산, 그리고 넘실거리는 파도도 바라보고 괴이하게 생긴 바위와 돌담과 해변에 피어난 꽃들을 보며 걷는다. 나팔꽃을 닮은 갯메꽃이 피어 하늘거리고 애기달맞이꽃도 쬐그맣게 얼굴을 내밀었다. 갯완두는 이미 익어 있었고, 구릿대와 갯기름나물이 큰 몸집으로 칙칙한 꽃무더기를 달고 있다. 방풍림으로 좋은 줄기 식물 순비기나무와 나물로도 먹고 약초로도 쓰는 번행초가 싱싱하다. 열매를 매달고 꽃을피우려는 손바닥 선인장 옆으로 원추리도 하나둘 꽃을 피우고, 연한 순을 나물로 먹고 잎과 열매를 강장, 강정, 해독에 쓰는 박주가리도 보인다.

 

(밭 가운데 있는 고인돌의 하나)

 

▲ 선돌과 조개무덤, 고인돌이 있는 고대 왕국

 

 오전 9시. 나중에 출발한 일행이 합류하자 나는 한 곳으로 모이도록 한 뒤 오늘의 일정을 소개하면서 가파도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하고 나서, 섬 가운데 있는 가파초등학교로 이동했다. 고운 잔디가 깔린 시골 학교는 아늑한 고향을 생각하게 했고, 우리를 어린 시절로 이끌었다. 지금은 민박집과 식당도 있지만 30년 전 조사차 왔을 때는 이곳에서 잠을 잤다. 마침 우리 대학국문과 출신 선배가 이 학교의 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여름방학이라 연락을 받고 나가면서 커다란 전복을 두 개나 맡겨 두었는데, 그것을 썰면서 게웃(내장) 두 개를 차지해 숨기고 온 소주를 실컷 마셨던 생각이 난다.

 

 기념촬영이 끝나고 나서 섬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고인돌로 안내했다. 기후가 온화할뿐더러 주변에 해산물이 풍부하고 마실 물이 있었기에 일찍부터 사람이 몰려 85ha밖에 안 되는 섬에 패총과 선돌과 고인돌 70여기가 몰려 있다. 그러나, 곽지 1식 토기 파편이 나오고 홈돌, 공이 등이 출토되는 패총은 해안도로를 내면서 거의 훼손된 상태다. 많은 고인돌이 집을 짓고, 길을 내고, 밭을 가느라 덮개돌과 기둥이 원래의 자리에서 이탈되고 깨져버렸다. 2천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인돌은 길이 7m, 무게 30톤 이상의 대형으로 당시 성인 100명 이상이 동원되어 해변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점심 식사를 한 곳에 서 있는 바위)

 

▲ 물때를 맞추고 가서 게 잡기와 고둥 줍기를

 

 고인돌이 자리를 잃고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 마라도가 보이는 곳에 가서 선돌을 보았다. 선돌은 경계 표시적 또는 주술적인 의미를 내포하는데, 이것은 높이 183㎝, 폭 120㎝, 두께 45∼55㎝로 아래 몸통 부분이 넓적하고 끝 부분이 다소 뾰족한 타원형의 할석을 곧추 세워 놓은 것이다. 석재는 가파도에서 확인되는 안산암 계통으로 1/5정도가 지표 아래에 묻혀 있다. 거기서부터 다시 해변으로 내려가 바다와 돌을 구경하면서 나머지 섬의 반쪽을 돌았다. 바다에서 밀려온 쓰레기가 어지러웠으나 화성의 표면을 닮은 기괴한 무늬의 암석을 보거나 예쁜 돌멩이를 주우며 걷다가 갯메꽃이 무리져 있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한 바퀴를 거의 돌아 상동 마을에 이르렀는데, 해안이 비교적 깨끗한 상태여서 이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6시까지 모이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한 사람이 많았기에 10시 반이지만 모두들 시장한 것 같다. 미리 나누어준 도시락을 펼치고 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나누어주었다. 마침 금채기여서 해녀가 바다 속에 들어가서 잡아온 해산물을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 다음 미리 마련해간 비닐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게를 잡거나 고둥을 줍다가 물이 나는 대로 소라를 잡으라 하고 배가 올 때까지 자유시간을 주었다.

 

(해변 곳곳에서 보이는 괴이하게 생긴 암반)

 

▲ 이 섬에 아름다운 고인돌 공원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게를 잡고 고둥을 잡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특히, 어느 부부는 게를 제법 많이 잡고 나서 먹보말이라는 큰 고둥을 잡고 있었다. 그 외로 수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해변을 돌며 돌 구경을 하고 나머지는 바닷가를 산책하고 섬마을을 둘러본다. 돌아다니며 고둥 줍기를 도와주다가 물이 난 후에 소라를 잡으러 들어갔는데, 아직 물이 덜 나가서 해삼 새끼들만 보인다. 배가 올 시간이 거의 되어서야 친구와 함께 바위틈 해초 속에서 작은 소라 20여 마리를 건져 올려, 남아 있는 애주가들과 마지막 소주잔을 기울였다. 고둥을 재미 삼아 주웠는데 먹을 줄 모른다고 나에게 주고 간 것을 모으니 제법 묵직하다.

 

 마을 사람이 인솔자를 찾는 사람이 있어 만나본즉, 고인돌을 보전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곳 고인돌 밀집 지역을 체계적으로 발굴하여 적당한 장소에 공원을 만들어 흩어져 있는 것들만 모여 재구성하고, 전시하는 한편 휴식 공간과 교육장을 만들어 운영한다면 이곳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과 함께 좋은 관광지가 될 것이다. 사실이지 우도는 보고 즐길 게 많은 섬이어서 너무 몰리는 경향이 있고, 마라도는 최남단이라는 의미를 지닌 곳이어서 바다 관광과 함께 1시간 정도 들르는 곳으로 각광 받고있지만, 이곳은 아직 볼거리가 미흡하여 낚시꾼들밖에는 찾지 않고 있다. 서쪽 해변도 잘 정리해 놓으면 독특한 무늬의 돌을 보며, 게와 고둥을 잡는 체험학습장으로 손색이 없으리라.

 

(가파도에서 본 바다와 건너 보이는 송악산과 산방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