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기념당에 피어 있던 꽃,
현삼과 '하근')
◎ 2003년 10월 3일(금요일) 맑음
▲ 1년만에 국외로의 탈출
나의 해외 답사는 아무래도 동양권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처음에 월남전에 참가해서 월남에서 1년 동안 살았던 것은 그만 두고라도, 첫 나들이로 중국 위해, 상해, 북경, 장춘, 연길, 백두산, 홍콩에 다녀왔고, 두 번째는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세 번째는 일본의 오사카, 나라, 교오토, 네번째가 중국의 산둥반도, 다섯 번째가 일본의 큐슈, 그러니까 이번의 대만여행은 여섯 번째 나들이가 되는 셈이다. 나의 지론은 제주도는 1일 여행으로 읍면 단위, 우리 나라는 3박4일로 도(道)나 문화권 단위, 일본이나 중국은 권역별로 5∼6 차례는 다녀야 수박 겉 핥기 정도가 된다고 보는 놈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웃부터 살피면서 파문(波紋)처럼 세계로 넓혀 나가야 한다고 변명하지만 사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마음대로 나돌지 못하는 것은 돈 때문이다.
이번 여름방학은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답답하고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은 상태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9월을 보내고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10월초로 기획된 오늘을 기다려 왔다. 여행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역마살이 끼었는지 '가면 간 데 마음'이라고 예정된 일정에는 집안 일이나 직장 일 등 모든 것을 잊고 철저하게 즐기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렸다. 작년 일본 여행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상하게 탐라문화제 '오름오름 축제'와 겹쳐서, 남아 있는 회원들에게 미안했지만 이곳에서는 대신할 사람이 있고, 또한 이번 답사여행 중의 나의 역할이 크기에 과감히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야류 국립해양공원의 유두-乳頭- 바위)
기다리던 오후 7시. 제주공항 국제선 대합실에서 같이 갈 분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기대에 부풀어 그것을 숨기려 해도 입가의 미소로 나타난다. 이번 참가자는 70명으로 거의가 아는 얼굴이다. 인솔은 작년 일본에 같이 다녀온 세아여행사 사장으로 어쩔 수 없이 투어 형태로 계약되어 있다. 사실은 연휴를 철저하게 이용하려고 목요일 저녁에 출발하여 개천절과 일요일 사이에 토요일만 연가를 얻으면 되게 기획을 하였는데, 비행기편이 여의치 않아 하루 연기되어 월요일까지 소요되는 바람에 10명은 기권을 한 상태였다. 저녁에 나간다고는 하지만 노 비자로 가고, 제주에서 직접 오가기 때문에 뒷날 아침 일찍부터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비용과 시간이 그런 대로 좋은 조건이다.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끝내고 나서도 오후 8시 50분 출발이어서 대기시간은 1시간 이상 남는다. 이런 시간을 못 참는 회원이 있어 벌써 시바스리걸 한 병을 사다가 한쪽 구석에서 홀짝거리며 나를 부른다. 가서 기꺼이 동참하여 시간을 보냈다. 이번 여행은 국내 여행과는 달리 여행사 사장이 모든 업무를 맡고 현지 가이드가 해설하기로 되어 있어 나도 완전한 답사반원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즐기면 되는 것이니, 아무 부담도 없는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게다가 모두 어른들이어서 학생들을 인솔할 때와는 다른 자유가 나를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우리가 다녀온 타이완 중북부 지방의 지도)
▲ 하나의 작은 중국 대만(臺灣, 타이완)
대만의 한 항공사인 원동항공사 소속의 비행기에 오르면서 신문을 고르는데, 우리 신문은 문화일보 하나뿐이다. 그래 한자 문화에 적응하자는 뜻에서 대만 신문인 '중시만보'를 골라 보았더니, 특집으로 90세의 남자와 88세의 여자가 만나서 결혼식을 했다는 기사가 올랐다. '황혼 초연 노연인 제1차 결혼'이라는 기사와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 게재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장개석과 같이 들어온 군인 중에서는 언제 본토로 수복될 날을 기다려 어정쩡하게 지나다 보니 혼자 늙은 분이 많다는 얘기였다. 중국 본토에 간 때는 간판이나 신문이 간자(簡字)여서 불편하더니, 이곳은 정자로 쓰기 때문에 모든 면에 얼추 뜻은 통한다.
예습을 해두어야 하겠기에 비싼 와중에도 서점을 뒤져 타이완에 관한 책을 사고,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찾았지만 아직 관광면에 후진 곳이어서 그런지, 너무 빈약했다. 농업과 공업 같은 산업으로도 국민소득이 충분했고, 또 본토인 중국에 밀려 관광면은 소홀했다가 이제야 잠을 깨어 서둘고 있었다. 인터넷에도 꼭 같은 내용으로 서너 줄 설명이 고작인 곳이 많다. 차를 주문하라기에 중국 본토에서처럼 아무케나 맥주를 시켰더니, 투명 플라스틱 컵에 얼음을 넣은 것과 캔 맥주를 준다. 기내식은 밥과 조그만 빵, 카스테라, 과일등 제법 먹을 만하다.
(호텔 앞 어느 집 옥상의 나무와 꽃)
타이페이 중정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10시 40분이었다. 일정표에 21시 50분이라고 된 것은 우리 나라와 1시간의 시차를 적용한 시간이어서 제주에서 대만까지는 2시간 걸린 셈이다. 짐을 찾고 2호차에 올라 숙소로 향했다. 공항이 외곽지에 있어서 도심에 있는 기린호텔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 2호 가이드는 어머니가 충청도, 아버지는 화교인 요수진(姚秀眞) 씨였는데, 화교학교를 나와 대만에 유학 왔다가 현지인인 신랑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가진 분으로 넉살좋은 아줌마였다. 이곳은 맞벌이가 대부분이므로 부부동반하지 않을 때는 미스로 부르는 게 예의라고 '미스 요'로 불러 달라고 주문한다. 내일부터 일정표에 대만 현지 시간으로 나오기 때문에 우선 시계를 1시간 앞당기도록 하고 대만에 대한 소개를 시작했다.
타이베이 시를 수도로 하는 중화민국(中華民國) 국토의 넓이는 3만 6190㎢로 한반도의 1/6 크기이며, 우리 제주도보다는 19배나 크다고 했다. 7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의 언어는 북경어가 표준어이고, 인구는 2,234만 명, 인구밀도는 617.3명/㎢으로 방글라데시에 이어 세계 2위라 한다. 전 인구의약 98%는 모두 한족(漢族)이지만 청나라 때 건너온 한족을 본성인(本省人),중국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본토에서 탈출해 온 한족을 외성인(外省人)이라고 하여 구별한다. 소수에 불과한 외성인이 지배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대다수 본성인이 반감을 갖고 있다. 소수민족으로는 전체 인구의 1%인 약 30만 명 정도의 원주민 고산족이 있다. 호텔이나 큰 매장에서 대만돈(NT)을 바꿀 수 있는데, 환율은 달라와는 33:1이고, 우리 돈과는 1:36이다.
(기린호텔 간판 '기린대반점')
▲ 미아(迷兒)가 됐던 1시간 50분(1)
기린호텔에 도착하여 방 배정이 끝나고 방에 들어간 것은 현지 시간 11시50분.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간판에는 '기린대반점(麒麟大飯店)'이라고 되어 있다. 가이드의 말로는 주변에 늦게 영업하는 술집이 없기 때문에 24시간 편의점을 이용해서 술이나 사다 마시라고 했다. 그래도 외국에 나왔는데 해방감을 만끽하자며 몇 사람이 우리 방으로 몰려들었다. TV 채널이 공짜라고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한국 연속극 멜로드라마가 3곳에서 방영하고 있다. 얼마 전에 끝난 형부와 처제의 사랑을 다룬 조재현 오연수 공효진 김래원 주연의 '눈사람'이 더빙되어 방영되고 있다. 늦게 도착하여 배가 출출할까봐 나눠 준 컵라면을 끓이고, 가지고 온 휴대용 한일소주를 꺼내 한 잔 하고 있노라니 캔에 들어 있는 일본산 생맥주를 사온다. 이리저리 연락해 김치와 김, 멸치 등속으로 첫날밤의 파티가 끝나 현지 시간으로 3시30분 잠자리에 들었다.
◎ 2003년 10월 4일(토요일) 흐림
아침에 눈을 더 보니 6시50분이다. 조깅을 하자고 한 약속도 물거품이 돼버렸다. 세수를 하고 2층에 있는 뷔페 식당에 가서 대충 식사를 끝낸 후 필요한 물품만 챙기고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사방으로 통하게 된 육교에 올라 가운데에서 길거리 사진도 찍고, 내려와 작은 공원에서 운동하는 현지인들도 보면서 거리를 누볐다. 그리 깨끗하지는 앉지만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그런 대로 어울린다. 아열대지방이어서 화단이나 베란다, 옥상 또는 건물 외벽에 여러 가지 식물이 엉켜 자란다. 내가 염려한 대로 월요일 박물관 견학이 안 되는 바람에 일정이 완전히 뒤바뀌어 오늘의 일과는 화롄(花蓮)으로 바뀌어 관광버스 편으로 역으로 나갔다.
(우리가 묵었던 기린호텔 현관 앞의 기린상)
갈 때는 08:50분에 출발하는 특급열차 자강호(自强號)로 가는데 3시간 가량 걸린다고 한다. 이 열차는 타이페이 시내에서는 지하철로 운영되고 시내를 벗어나서는 일반선과 연결된다. 좌석과 입석이 있어서 지정된 8호칸에 앉아 바뀌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시내를 벗어날 때는 몰랐는데, 동해안 쪽으로 나오니 오른쪽은 섬의 북부에서 남부로 길게 이어지는 중앙산맥의 높은 산들의 연속이고 왼쪽은 바다인데 그 사이가 너무 좁다. 1시간 이상 단조로운 시간이 흐르자 가만히 못 있는 근성이 발동, 일행 찾기에 나섰다. 한 칸 사이에는 적어도 3개의 자동문이 있어 2호까지 가는데는 24개의 문을 넘어야 했다. 입석표를 산 사람들은 입석칸에는 있으려 아니하고 빈자리를 찾아 좌석칸에 가서 기대선다든가 아예 열차 연결 부분 계단에 주저앉은 사람도 있다.
무료를 달래기 위해 한잔하자니까 술잔이 없어서 다시 8호까지 가서 비행기에서 빌린 유리잔을 가져다 서너 잔을 마시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멈춰선 차창 너머로 너무나 멋진 대만고무나무가 보이는 것이었다. 고무나무에는 아라비아고무나무와 대만고무나무가 있는데, 주로 고무를 생산하는 것은 아라비아고무나무이고 이것은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전에는 이파리가 커다란 이 고무나무를 큰 화분에 심어 개업 같은 때 곧잘 선물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다가 오랜만에 보니 너무 반가워 무심코 카메라를 꺼내 찍으러 내려갔다. 그런데, 아뿔사! 고무나무에 다가서기도 전에 열차 자동문이 스르르 닫히면서 그냥 출발해버리는 것이었다. 너무나 순간적이었다."발을 동동 구른다"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가 보다. 그래 역무원과 나란히 서서 "어!어!어!어!"를 연발하면서 멀어지는 차를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계속)
(순간적으로 나를 홀린 대만고무나무)
♬ 매염방 - '夕陽之歌(영웅본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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