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다가다 부담 없이 들르는 곳
안덕면이나 대정읍 또는 한경면에 있는 오름에 다녀오다 부담 없이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서광다원의 오설록 녹차 박물관이다. 봄이면 융단 같은 차밭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봄여름가을겨울 없이 늘푸른 것이
차나무여서 어느 때 가드래도 아늑한 정경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준다.
더욱이 무료관람 할 수 있는 박물관이나 전망대도 좋고 은은한 다향(茶香)을 즐기며 쉰다든지 속이 허전할 때 사먹는 녹차 아이스크림 맛 또한 일품이다. 이 박물관은 2001년 9월에 문을 열었는데,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 1235-3 서광다원 입구에 자리한 녹차 전문박물관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이 가능한데, 연건평 1,540㎡의 둥근 건물에 예부터 내려오는 찻잔 140여 점이 진열해 있어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 최초의 차 전문박물관으로, 정식 이름은 '설록차 뮤지엄
오'설록(o'sulloc)'이며, 오' 설록(o'sulloc)은 'origin of sulloc', 'only sulloc', 'of
sulloc cha', 'oh! sulloc'이라는 의미이다. 2001년 9월 설록차를 생산하는 태평양(주)이 설립하였다. 태평양(주)이
제주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서귀포의 도순다원, 한남다원, 서광다원 중 안덕면의 서광서원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대지 면적 약 8,100㎡, 연건평 1,540㎡이며 제주도에서
나는 먹돌로 녹찻잔 형상의 건물외관을 마감하였다. 상설전시관, 선물코너, 전망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만들어진
대표적인 찻잔 14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차의 역사와 녹차를 만드는 과정에 관한 영상물을 상영한다. '한국차의 향기' 같은 특별전시회도
개최한다.
전망대에서는 한라산과 광활한 다원(茶園) 풍경이 내려다보이며, 박물관 건물 주위 정원에는 연못과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녹차밭 사이로 난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는 연인들의 산책길로도 유명하다. 밖에는 작은 분화구를 가진 오름 모형, 골프장 잔디 같은 매끄러운 잔디밭, 병처럼 쌓아놓은 돌무더기 등 기념 촬영 장소로도 좋다.
♧ 차 그릇으로 만나는 조선 백자의 숨결 / 김은수
희나 흰 것만이 아니고, 푸르나 푸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쪽빛은
어느새 흰빛을 품고 있고, 흰빛은 무심결에 쪽빛을 어루만지고 있다. 여기에 눈을 쏘는 흰빛이나, 흰빛을 배경으로 현란하게 도드라지는 쪽빛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 목화송이 같이 따스하고 백옥 같이 해맑은 살결에 수수한 포도 넝쿨이 슬며시 앉았다. 모양에서나
빛깔에서나, 경계도 이음새도 없이 원래 거기 있었던 것인 양 한 덩어리로 흐르는 맛이 순하고 담담하다.
얕은꾀가 없이 착실하다. 그래서 '그것, 참….' 하고 자꾸 돌아보게 된다. 어느 외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그저 조금 적적하고 잠이 쉽게 청해지지 않는 밤에 곁에 두고 말동무 삼고 싶은 차 그릇. 그래서 차를 마시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범속하면서도 지극히 호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나 보다.
청화백자는 정선된 흰흙(白土)으로 기물을 만들고, 그 위에 산화코발트가 주성분인 안료 '회청(回靑)'으로 문양을 그린 뒤 유약을 입혀 1200도 이상 되는 고온에서 환원번조(還元燔造)한 백자를 가리킨다. 원래 중국 명나라에서 유행하던 청화백자에서 자극을 받아 발단이 되긴 했으나, 조선이 사랑한 쪽빛은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다르고 멀리 유럽으로 건너가 덴마크 왕실에서 애용된 로얄 코펜하겐의 푸른빛과도 다르다. 혜곡 최순우는 흰빛과 쪽빛을 가리켜 "한국인의 꿈이며 또 지체(肢體)"라고 말한다.
그만큼 조선인의 쪽빛 소망은 간절했다. 일찍이 명나라에서 건너온 신비한 쪽빛 문양의 백자를 보고 감탄한 세조는 청화백자를 구워 바치는 사람이 있으면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온 나라에 포고령을 내렸고, 그런 끝에 최초로 광주 도마치 가마에서 우리 손으로 만든 청화백자 한 점을 얻을 수 있었다. 무명빛 바탕에 그려진 조촐하고 간결한 쪽빛 그림은 탁하고 어지러워진 눈동자를 씻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안복(眼福)'이라는 단어가 생겼을까?
청화백자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청자, 백자, 분청사기와 더불어
맥이 끊어지는 듯했다. 유물로 남겨진 몇 점만이 손에 닿지 않는 별처럼 아득하게 빛났다. 서양에서 들어온 편리하고 보기 좋은 양은 그릇이나
플라스틱에 홀려 투박하고 잘 깨지는 사기 그릇을 천대한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였다. 도공들은 먹고살기 위해 가마터를 떠났고, 오랫동안 불을
때지 못한 가마 위에는 푸른 풀이 돋았다.
그러던 차에 백산(白山) 김정옥의 도자기가 선을 보였다. 반응은
일본에서부터 왔다. 1984년 국제무역박람회에 출품한 찻사발 10여 점이 우연히 일본인 사업가의 눈에 띈 것이다. "좋다, 훌륭하다."를
연발하던 일본인은 지금까지 20년 째 백산의 자기를 일본에 알리고 있다. 도쿄에서 매년 한차례씩 전시회를 열었고, 그의 집을 방문하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그의 작품은 달라이 라마에게도 선사되었으며, 몇 해 전에는 전 일본 수상 호소가와가 다녀가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눈 밝은
이들에게도 그의 작품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비롯해 문화재 전문가들은 "맥이 끊어진 줄 알았던 조선 백자가 아직
남아있다."며 눈시울을 글썽였다.
그는 91년에 명장 칭호를 받았고, 96년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沙器匠)으로 지정되었다. 전통도예 부문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 백산은 아내와 자식들을 이끌고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 일일이 잔을 올리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에도 꿋꿋하게 흙을 버리지 않고 7대를 이어 온 도공 가문의 음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예 가문의 후손이며, 그의 5대조 김운희는 조선왕조 관요에 발탁된 록로의 명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백산은 아직도 23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그의 선조들이 했듯이
직접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태토를 채취해 자신만의 비율로 배합한다. 또 그것을 전통식 발 물레로 빚어 장작 가마인 망댕이‘흙을 뭉친
덩어리’라는 뜻 가마에 굽는다. 그때 사용하는 장작도 자기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는 적송(赤松)만을
고집한다.
적송은 재가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화력이 좋아서 고온을 필요로 하는 백자의 유약 맛을 그대로 살려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재래식 절차를 고집하는 까닭을 “도자기는 흙과 불의 조화 속에서 탄생하는 예술품인데, 전기 물레와 전기 가마를 사용하면 그런 오묘한 조화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1000도가 넘는 불길에 10시간 이상 들어갔다가 흠결 없이 바깥 세상에 나오는 것은 300여 개 중에 50점 정도에 불과하다. 그 중 "쓸만하다"싶은 것을 양손에 쥐고 나면 두 달을 이어온 그릇 농사는 끝난다. 성공률이 90퍼센트에 가깝다는 전기 가마에 대면 허탈한 수치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다. 백자는 감촉이 부드러우며 적당한 빙렬얼음이 갈라진 금 모양의 무늬이 있어야 하는데 전기 가마로는 그런 자연스러운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 백자를 감상하는 법은 먼저 빛깔이다. 전통 백자의 파편을 깨어보면 당시 사용했던 백토의 성분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쌀을 빻아 놓은 듯이 환한 발색도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단순하고 앙상한 흰빛이 아니라 넉넉하고 다정한 흰빛이다. 희다기보다는 환하다는 말이 그 느낌에 더 가깝다. 다음으로는 모양이다. 훌륭한 백자에는 수수하면서도 당당한 맛, 잘생기고 의젓한 볼륨감이 실려 있다. 또, 헤벌어지지도 옹졸하지도 않은 선비의 지조와 도량이 서렸다. 백산의 자기가 가진 특징도 바로 이런 것이다. 어찌나 조선 백자의 맛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지, 그의 자기는 "가마에서 나오는 순간 수백 년의 나이를 먹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투박하고 청결하며 고고한 아름다움. 백산 자기의 천연덕스러운 고태가 주는 매력은 많은 명장들의 작품 가운데서도 유별나다. 만든 이의 체취를 담지 않는
'무명성(無名性)'이라는, 영남요의 겸손한 전통도 여기에 한몫 했을
것이다.
흙, 물, 불, 바람이라는 네 가지 원소를 가지고 신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흙이 물과 섞이고, 뜨거운 불길에 구워지고, 바람에 식어 단단하게 형태를 잡은 것이 도자기다. 그래서 도자기를 즐기는 행위는, 어쩌면 이 아름답고 덧없는 세속의 삶을 즐기는 총체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차를 따라 본다. 눈으로는 형태와 빛깔을 보고, 귀로는 찻물에 응답하는 다기의 진동음을 듣는다. 코로는 차와 다기 특유의 냄새를 맡고, 입술로는 그릇의 감촉과 따스한 차의 온기를 받아들인다. 좋은 차 한 잔을 마시는 행위, 그것이 인생의 전부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아주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끽다거(喫茶去)!
♧ 설록차를 마시는 때 / 유안진
생활을 눈 따악
감고
구름 되어 흐르고만 싶을 때
설록차 한 잔 물에
구름 띄워 마셔본다
맛없음의 참맛이야말로
부처님 미소로 데려가주는 듯
더는 못 참겠다
깜박 넋이 나가려는 때
한 모금 설록차를
두 모금에 나눠 마신다
그 사이 부딪치는 찻잔소리
타일러주는 드맑은 음성
잔 안에 가두어지는가
그리움아 섧은 꿈아
차가운 흰눈의 빛깔
백설의 향기와 함께
폐허를 어루만지듯
늘 내 마음에 찰랑거려라.
♬ Michael John - Fall Changes to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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