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통일을 향한 여정 (1)

김창집 2006. 2. 20. 17:33

- 금강산 통일연수기

 

 

*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벽에 그려 놓은 금강산 귀면봉 

 

▲ 좁힐 수 없는 거리

 

 2006년 2월 5일 오후 4시25분. 북측 출입사무소 앞에 줄지어 서서 몇 분 안 되는 시간을 기다리며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에 가볍게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수차 외국 여행 입국 수속 절차를 거쳐봤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서툰 영어로 그곳을 통과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아니고 괴롭고 힘든 세계로 들어서는 것도 아닌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연수에 참여하기 위해 교육을 받을 때, 해서는 안 될 사항을 너무 강요받았기 때문에 통일의 의지를 불태운다기보다는 너무 부담스러웠고, 뭔가 불안 요소를 안고 임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 산전수전 다 겪고 볼 것 못 볼 것 다 넘긴 지금 이 나이에 무슨 긴장이냐고 하겠지만, 성질이 조금 급한 편이어서 불의(?)나 부당한 일을 보면 나도 모르게 뭐라고 툭 내뱉고 마는 고약스런 버릇이 문제였던 것이다.

 

 

* 우리가 묵었던 통나무집 앞의 고성항(장전항) 

 

 금강산 체험 연수는 작년 12월말부터 금년 3월까지 비수기를 이용해 2박3일 일정으로 1회 5백 명씩 34회에 걸쳐 교사 1만5천 명, 학생 2천 명 등 1만7천 명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북한 실정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하고,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현장학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협력기금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인데, 학생들은 분단의 현실을 몸으로 체험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교육 담당자들은 통일 교육의 중요성과 교육 방향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 삼게 하고자 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타고 온 차에서 한 번, 우리를 태우러 온 차에서 다시 한 번, 두 번이나 소지하지 못하는 것을 빼어 맡겨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도 문제되는 일 없이 북측 출입사무소를 통과해 앞으로 금강산에서 일정을 같이할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 제주도 체험 연수단은 중등학교 교원으로서 통일 관련 단원을 가르치는 도덕, 사회, 국어 교사와 인솔하는 교장과 장학진 등 9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 우리가 아침을 먹었던 페밀리비치 호텔 

 

 참여한 선생님들 중 대부분은 이쪽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비무장지대를 몇 번이나 바라보며 오늘이 있기를 꿈꿔 왔을 것이다. 그래서 군사시설로 이루어진 비무장지대는 나름대로의 느낌으로 넘어올 수 있었는데,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우리 동포인 북녘 주민들이 사는 땅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기차가 다니지 못했던 철길이 우리와 나란히 북으로 달린다. 우리가 가는 길은 금강산 관광을 위해 만든 도로로 이곳 주민들은 다닐 수 없다 한다.

 

 남강다리를 넘어서면서 민가와 멀리 걸어다니는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2∼300m에 군인 1명씩 우리를 향해 서 있다. 조장의 설명으로는 "몇 시에 이 길을 통해 차 몇 대가 몇 명을 태우고 지나간다고 미리 통보하면, 30분 전에 근무조가 배치되어 보초를 서다가 지나가면 철수한다."고 했다. 보초 근무자들이 임무는 주로 차량 이동 중에 창밖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감시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곳에 있을 때는 이동 중에 절대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조장은 다시금 강조한다.

 

 

* 관광센터에서 보이는 금강산 닭알봉 자락 

 

 휴대금지 품목에 10배 이상의 쌍안경 및 망원경, 160㎜ 이상의 망원렌즈가 달린 사진기, 24배줌 이상의 렌즈가 달린 비디오 카메라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이해가 갔다. 이러한 물품 외에도 남측의 각종 인쇄물(신문, 잡지, 책 등)과 휴대폰 및 배터리도 소지해서는 안 된다. 이 금지 품목으로 미루어 북측에서는 통일을 원한다고는 하면서도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문을 꼭꼭 닫아걸고 오직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을 보유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북측의 현실이요, 남측과의 거리인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지금 금강산 관광을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 중 북측에서 운영하는 옥류관, 금강산 호텔식당, 금강원, 목란관 등 네 곳을 제외한 나머지 업소에 북한 주민을 종업원으로 쓰려 했지만 거절했다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건설을 제외한 각 업체는 하청을 주었고, 인건비 때문에 꼭 필요한 곳 말고는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중국 동포들을 쓰고 있다. 남측에서 운영하는 업체에 가보면 꼭 북한 아가씨처럼 생긴 처녀들이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중국 동포 아가씨들이고, 기사 중에도 중국 동포들이 많다.  

 

 

* 리모델링 중에 있는 김정숙 휴게소 


▲ 금강산도 식후경

 

 30여분만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온정리에 마련된 관광센터였다. 이곳은 넓은 주차장 시설이 되어 있고, 가운데 주로 교예 공연을 하는 문화회관, 그리고 기념품점과 식당인 온정각 동관과 서관이 자리해 있으며, 주변에는 이산가족 장소로 이용했던 김정숙 휴양소와 북한식당 옥류관, 온천빌리지와 금강산호텔, 금강산 온천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관광센터를 벗어날 때는 언제든지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온정리(溫井里)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이곳 금강산 온천의 수질(水質)이 좋다고 먼저 온천으로 안내되었다. 온천욕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할 수 있는데, 어른 12$ 아동 10$를 받고 있었다. 현대아산에서 시설한 거라 구조는 남쪽과 다름이 없고 비교적 넉넉한 욕실과 노천탕까지 갖췄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 금강산이 너무 음기(淫氣)가 강해 주기적으로 남탕과 여탕을 바꿔 운영한다는 점이다.

 

 

* 첫 식사를 했던 온장각 서관(안에 면세점도 있다.)

 

 온천을 마치고 개운한 몸으로 저녁 식사를 위해 온정각 식당으로 들어갔다. 남측에서 운영하는 이 식당은 야채만 현지에서 재배되는 것이고, 간단한 뷔페에 동원된 재료와 음식은 우리가 자주 대하던 것들이다. 그리고, 입구에 남북측 술들을 모아놓고 얼마든지 사다 먹도록 권유한다. 이곳만이 아니고 모든 일정에 포함된 식사시간에는 접대원(이곳에서는 그렇게 부른다.)들이 술을 사 마시도록 권했다.

 

 금강패밀리 비치호텔은 전날 경기 남부지구 선생님 600명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 통나무집은 오래되지 않아 자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화장실이 통풍과 폐수처리가 잘 안 되어 퀴퀴하였다. 큰방은 통로를 제외하고 4사람이 누워 잘 수 있는 넓이였고, 2인용 침대실과 2층 다락방으로 설계되었다.

 

 

* 금강산 온천에서 보이는 금강산 매바위 

 

 모르는 곳에 답사를 가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두 영양가 높은 체험이 된다고, 북쪽의 회도 먹어보고 직접 주민들과 접촉도 해보고 싶어 일행을 채근하여 2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성항 횟집으로 향했다. 이곳에 오기 전 일기예보로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린다고 하여 바짝 긴장했으나 바닷바람이 좀 쌀쌀하긴 해도 기분 좋을 정도였다. 고성항은 장전항이라고도 하는데, 육지로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 만(灣)이었다.  

 

 물결은 거의 없었고, 그래서인지 바닷가 물위로 돌출한 조그만 바위 위에 쌓인 눈이 녹지도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여름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횟집 앞 바다 쪽은 방파제를 만들어 놓아 거닐기도 하고 탁자를 내놓아 음식을 먹도록 해놓았다. 고기가 들어왔을 때만 영업한다는 횟집으로 들어가면서 안에 놓여 있는 수족관을 보니, 볼락과 우럭, 농어로 보이는 시커먼 고기들만 몇 마리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 금강산온천 마당 구석에 세워놓은 금강산 만물상을 닮은 바위 

 

 들어가는 왼쪽에는 카운터 모양 탁자를 놓고 한 아가씨가 앉아 있는데, 탁자 위에는 작은 전복 몇 마리가 그릇 위에 포개져 있었다. 그것을 쳐다보고 있자니 전복을 사먹으라고 한다. 왜 이렇게 전복이 작으냐고 물었더니 참 전복이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우리 제주에는 참전복도 이렇게 크다고 손으로 가늠하며 말했더니, 그런 것은 여기도 많은데 말 전복이라고 하면서, 역정을 내듯이 "아저씨! 아저씨는 북남 전복 비교하러 왔시유?" 하길래 더 얘기하다가는 시비가 될 것 같고, 마땅히 할 말도 없어 그냥 들어갔다. 

 

 안은 벌써 먼저 온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경기 남부 선생님들은 둘째날이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고, 우리는 처음이어서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었다. 먼저 온 일행 중에 잘 아는 선생님 대여섯 분은 벌써 회를 시켜 먹고 있었다. 옆에 앉아 무엇을 시켰는지 맛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차림표를 보았더니 스페샬 특선은 1인 기준 30$, 45$ 두 가지였고 자연산 광어 활어회는 1인당 15$로 4인 기준으로 파는데, 소 60$, 중80$, 대 100$이었다. 그리고, 해삼, 소라, 전복은 한 접시에 20$이고, 전복 1kg은 90$이라고 나와 있다.

 

 

* 구룡폭포로 가는 도중 옥류담에서 본 산봉우리들 

 

 넷이서 작은 것을 시켰더니, 그것은 두 사람밖에 못 먹는다면서 큰 것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선 먹어보고 부족하면 더 시킨다고 하고는 작은 것을 시켰다. 이곳에서는 원래 유로화로 계산하게 되었지만 대부분 달러나 해외용 신용카드, 금강산 관광카드를 쓰고 있었다. 옆에 있는 선생님께 같이 온 동료들은 왜 두고 왔느냐 했더니 배달해서 먹고 있다 한다. 이곳은 북측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예쁘고 젊은 북측 아가씨들이 붉은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데 가끔은 자원해서 술을 따라주기도 했다. 

 

 제주에서는 시킨 회보다도 미리 나오는 것들이 많고 푸짐한데 이곳은 그렇지 못하다. 오면서 보았던 붉고 커다란 멍게(우렁쉥이) 하나를 4동강으로 썰어 넣은 것, 커다란 홍합 2개를 삶아 반씩 썰어 4조각, 알 밴 도루묵 말려 구운 것 2마리, 그 외는 김치나 해초반찬 등이고, 회도 둥근 쟁반에 가지런히 놓지 않고 흩어 듬성듬성 놓았다. 우리는 전날 저녁 고성에서 먹은 잡어회를 생각하며 아쉽지만 30$짜리 북한산 들쭉술로 축배를 들었다. 구호는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 금강산 온천 현관에 전시중인 만물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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