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통일을 향한 여정 (2)

김창집 2006. 2. 22. 08:10

    - 금강산 통일연수기

 

 

* 등반 첫날 목표 지점인 구룡폭포. 오른 쪽에 彌勒佛(미륵불)이란 글씨가--. 

 

▲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6일 아침 7시까지 통나무집 관리동 앞으로 모이든지 아니면 6시반부터 금강산 페밀리 비치호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라는 전날의 통고를 상기하며 아침에 일어나 등산 채비를 하고 식사하러 갔다. 아침은 아주 간단한 한식 뷔페로 식성에 맞는 것을 골라 쟁반에 담고 가서 먹고 후식으로 숭늉을 떠먹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선생님은 1$ 또는 1천 원을 내면 아가씨가 종이컵에 타주는 것을 마셔야 했다. 

 

 오늘은 오전에 금강산을 오르는 날이어서 점심은 하산한 다음, 그 입구에 있는 목란관에서 하게 되어 있다. 그곳은 북측에서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미 지급된 식권을 바꿔야 한다. 물론 돈을 내고 먹어도 상관없지만 그렇게 해야 그 숫자대로 점심을 예약하기 때문이다. 8시 20분. 다시 관광센터에 들러 등산에 필요한 음료수 등속을 사고 출발했다. 우리 차에는 4명이 아이젠을 못 갖고 갔었는데, 미리 조장이 빌려 준다. 센터에서 밖으로 나갈 때는 차에 타고가는 조장은 물론이고 남아 있는 직원들이 모두 나와 차 앞에 쭉 늘어서서 무사고를 기원하며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의식(儀式)을 치른다.  

 

 

* 차에서 내려 등반을 시작하는 지점. 앞이 북측 식당 목란관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관광객들에게 등반 코스를 열어놓은 구룡폭포와 만물상 중 필수 코스인 구룡폭포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의 금강송(金剛松)들은 솔잎혹파리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많이 고사(枯死)되어 있다. 가끔씩 보이는 바위산 능선에 굴러 떨어질 듯 동그란 바위가 멈춰 있는 것이 너무 신비스러워 무심코 사진을 찍으려다 옆자리 선생님의 제지로 그만두었다. 가는 곳마다 군인들이 지키고 서있다.

 

 차안에서 우리들을 안내하고 교육하는 현대아산 소속의 아가씨를 조장(組長)이라고 부르는데, 그녀는 북한을 북측, 남한을 남측이라고 부르도록 권한다. 그리고 금강산 산행 중에는 침을 뱉지 말 것과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지 말 것, 그리고 정해진 곳이 아니면 용변을 봐서는 안 된다며, 오르기 전에 될 수 있으면 물을 마시지 말고 미리 용변을 봐두어야 편하다고 했다. 산에는 마지막 지점에 간이 화장실이 있으며, 소변은 1$, 대변은 2$씩 내야 한단다.

 

 

* 금강송(金剛松) 아래로 힘차게 출발하는 등반객들

 

 목란관이 보이는 지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하기에 앞서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한다. 벌써 아이젠을 착용하는 선생님도 있고 갈 때까지 가다가 필요할 때 착용하겠다는 선생님도 더러 있다. 목란관 앞, 내를 가로질러 새로 놓은 다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금강산 등반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봄에 금강산(金剛山), 여름엔 봉래산(蓬萊山), 가을 풍악산(楓嶽山), 겨울 개골산(皆骨山)이라 배웠는데, 이곳에서는 개골산보다는 설봉산(雪峰山)이 더 익숙하다. 관광센터 마당에 네 개의 몸체를 가진 미니 관광열차가 서 있었는데, 맨 뒤에 것은 개골산이 아닌 설봉산으로 되어 있다. 

 

 목란관을 조금 지난 곳에 이른바 '교시탑'이 서 있다. 조장에게서 거기다 함부로 손가락질해서도 안 되고 걸터앉는다거나 발을 올려놓았다가 큰일난다는 말을 들은지라 옆에 있는 아저씨에게 이걸 찍어도 되느냐고 정중히 물은 다음 승낙을 받고 카메라에 담았다. 바위를 깎아 인공기 아래 네모 형태를 만들고 그곳에 새겼으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천구백칠십삼년 팔월십구일 조국 통일의 력사적 위업 수행을 위한 강령적 교시를 주신 곳" 이라고 되어 있다.

 

 

* 첫 구비를 돌자 나타난 志遠(지원)이라 새긴 바위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길을 따라 조장과 함께 앞장서 걸으면서 여러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끔 보이는 금강송과 오엽송 외에는 모두 잎이 져버려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참나무, 굴참나무, 때죽나무, 서어나무, 단풍나무 등속이고, 가끔은 키가 작은 진달래나 싸리, 다래나무 넝쿨도 보인다. 가끔씩 드문드문 조릿대가 있어 그 때문에 공기가 맑다고 하길래 한라산에는 너무 많아서 탈이라고 했더니 그러냐며 웃는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에는 요소요소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다. 주변 봉우리들이 너무 멋있어 해가 나오면 사진이 더욱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조금씩 밝아지더니 간간이 햇살이 비친다. 등줄기에 땀이 일기 시작할 무렵 해서 모퉁이를 돌아 올랐는데, 그곳에 접대원 아가씨와 정보원인 듯한 아저씨가 서 있다가 설명을 듣고 가라고 한다. 바로 바위 위에 '志遠(지원)'이라 크게 새겨 있고, 그 자리에 '…동지께서 등반 중에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 여사의 충성심…' 운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접대원 아가씨가 그 내용과 능선 바위에 얽힌 전설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 높고 낮은 봉우리와 거기에 나 있는 분재 같은 나무. 거의 이런 바위들이 연속이었다.

 

▲ 천심절벽을 반 공중에 세워두고

 

 다리 모양도 여러 가지고, 건너는 재미 역시 버리지 못할 정취다. 날카로운 바위 봉우리 곳곳에는 소나무가 마치 분재(盆栽)처럼 솟아났다. 양지다리, 금수다리를 지나니 금강문이 앞을 막아선다. 마침 이곳에도 설명해주는 아가씨가 있어 금강문에 대한 내력과 전설을 들을 수 있었다. 바위에는 여러 가지 글이 새겨졌다가 풍화작용에 의해 희미하게 지워지고 새로 '금강문'이라 한글로 새겨 글자에 붉은 덧칠을 하였다. 바위 사이로 난 문 같은 구멍을 통해 오른다.

 

 쉬기에 적합한 중요한 곳곳에 2인 1조의 북측 아가씨들이 조그만 탁자 위에 곶감과 엿을 비롯한 군것질감과 커피, 음료수 등을 준비해 놓고 올라오는 족족 수고했다고 따끈한 커피 한 잔 드시고 가라고 권한다. 급히 오는 바람에 서랍에 두고 온 달라를 생각하다가 할 수 없이 2천 원을 주고 옆 사람에게 2달러를 바꿔 커피 한 잔을 사 마셨더니, 산이라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옆에서 곶감을 사서 하나 주길래 먹어봤더니 작고 씨가 많다. 

 

 

* 금강문. 옛 사람들은 글을 새겨 남겼는데, 나는 좀처럼 안 찍는 얼굴을--

 

 금강문을 지나면서부터는 갈수록 절경이 나타나고,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글씨로 새긴 어록(語錄)이 눈에 띈다. 보려고 해서 보는 게 아니고 눈길이 닿는 곳에 글자를 새기고 붉은 덧칠까지 해놓아 바로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가 통일이 되었을 때 이를 어쩌겠냐고 걱정해서 역사의 산물이니 그냥 두면 될 것이라고 말해놓고도 그것이 맞는 말인가 싶어 웃었다. 옥류담 무대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는데, 마주 바라다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그대로 산수화 같다. 두껍게 언 옥류담은 햇빛을 받아 그 자체가 옥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발길을 돌려 조금 더 나아가니 눈앞에 나타나는 비룡폭포, 높이 떨어지는 물이 바람에 용의 초리처럼 날린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을 터. 얼어 있는 물줄기 중간에 부처님이 앉아 있다는 선생님이 있어 자세히 살피니 아닌 게 아니라 마애불(磨崖佛)처럼 뚜렷하다. 부처님은 이곳까지 온 정성을 생각해서 이 하잘 것 없는 중생(衆生)에게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 같았으나 도저히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안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그것도 아니 보인다 하여 눈을 비비는 어린 중생 측에 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 부처가 나타났던 구룡폭포. ** 사진을 다 실을 수 없어 연재를 끝내고 사진만 실을 예정 

 

 이어지는 곳이 연주담. '구슬처럼 아름다운 초록색의 두 개 담소가 비단 실로 꿰어놓은 듯 연이어 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써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구룡연까지는 864m가 남았고, 지금까지 걸은 거리는 2,950m라고 표기해 있다. 그러면 지금 4분의 3은 훨씬 더 왔구나 하는 생각에 발길은 그지없이 가볍다. 더욱이 어젯밤에 내린 눈이 폭신폭신해 기분 좋게 밟으면서 속도를 빨리 하여 종착지인 관폭정까지 단숨에 오를 수 있었다.

 

 관폭정(觀瀑亭)은 글자 그대로 폭포를 보는 정자다.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아주머니인 듯 싶은 접대원이 이곳의 경치와 폭포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구룡폭포는 꽁꽁 언 채 반공중에 걸려 있고, 그 옆의 '彌勒佛(미륵불)'이라 크게 새긴 글자에도 허옇게 눈이 쌓였다. 세존(世尊) 강생(降生) 2946년 해강(海剛) 김규진(金圭鎭)이 썼다고 새겼다. 이제는 저 폭포 위로 올라가 상팔담과 주변 경치를 바라보는 일만 남았다

 

 

* 구룡대에서 바라본 관폭정(觀瀑亭). 사람의 크기로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내려오다 꾸부정하게 서서 화장실을 지키고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니 너무 불쌍해 보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조금 더 내려와 다리를 건너 구룡대(九龍臺)로 오른다. 이곳은 초입부터 가파른 바위와 계단이다. 사람이 많이 다닐 때를 대비해서 쇠사다리를 두 개씩 세워 놓았다. 허위허위 그 절벽을 다 올랐을 때 눈앞에 나타난 글, "참으로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란 구절을 바라보며 높으신 분이 참 험한 곳까지 잘도 다닌다고 중얼거리며 정상에 오르니, 눈앞에 구룡폭포의 수원지인 상팔담과 멀고 가까운 수많은 봉우리들이 펼쳐진다.

 

 더 이상 갈 수 없으매 최고봉인 비로봉 1,638m를 오른 기분을 내어 조심스럽게 기념 촬영을 하였다. 좁고 험한 데다 떨어지면 천길 낭떠러지여서 앉아 땀을 씻으며 멀리 가까이 있는 봉우리를 헤아린다. 물론 내일 만물상(萬物相)을 오를 계획은 있으나 그것도 인연이 닿아야 하는 것이어서, 일단은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만 하다. '관동별곡'에 나오는 정철의 발길을 따라 온 산을 헤집고 다닐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간다.(계속)


 

 

* 구룡대에서 바라본 상팔담. 구룡폭포를 이루는 물이 고여 흐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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