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한라산 영실, 그리고 도두봉

김창집 2004. 5. 18. 18:29

j

* 구름이 일어나고 있는 영실 등산로 입구

 

▲ 오름 나그네 고 김종철 선생님

 

 제주도에서는 어딜 가나 한라산과 바다가 보인다. 물론 오름에 가려 한라산이 안 보이는 마을이 몇 군데 있지만, 섬 자체가 한라산의 일부이고 보면 제주도는 사실 바다에 둥둥 떠있는 한라산인 셈이다. 그 어머님 같은 한라의 품안에 안겨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꿈꾸고 있는 오름들--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고 주민들의 안식처가 돼 왔으며 소와 말을 길러내던 이 오름들이 이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오름에 처음으로 눈길을 돌려 관심을 갖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연구 관찰하신 분이 바로 고(故) 김종철(金鍾喆)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1927년 제주에서 태어나 줄곧 제주에서 살면서 제주신보 기자를 시작으로 제주신문, 제남신문, KBS 제주방송국, MBC 제주문화방송에서 편성부장, 편집국장 등을 두루 거치셨다. '제주산악회'를 창립해 한라산 사랑을 실천하셨고, 산악안전대장으로서 많은 인명을 구하며, 한라산과 더불어 사신 분이다.


 

j

* 나무 사이로 보이는 영실기암의 일부

 

 특히, 오름에 관심을 기울여 제민일보 창간 때부터 4년 동안 제주도내 모든 오름을 답파하면서 체계적으로 정리, 연재했던 기획 기사를 묶어 펴낸 '오름나그네'란 3권의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름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었다. 1995년에 책을 출간한 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오름 사랑의 정신을 본받아 못다 이룬 사업을 이어받으려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바로 우리 오름오름회의 전신인 오름나그네회다.

 

 지금은 우후죽순처럼 많은 오름 동아리들이 탄생되어 오름 오르기를 즐기고, 오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작업을 시작할 단계에 이르렀지만 그의 저서는 모든 오름 연구의 기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지각없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오름이 몸살을 앓고 있다. 오름나그네 선생님의 참된 오름 사랑 정신을 물려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마다 5월 둘째 주를 정해 선작지왓을 찾아 선생님을 추모하고 있음은 언제까지나 그 오름 사랑 정신을 잊지 않으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j

* 영실계곡의 작은 폭포

 

▲ 독을 품은 인동덩굴 꽃

 

 영실(靈室)서 비와 안개를 피해 노루손이오름에 들리려다 그쪽도 마찬가지여서 아주 바닷가에 위치한 도두봉으로 내려왔다. 제주국제공항 속칭 정뜨르 비행장 서북쪽에 위치한 나지막한 오름. 돈나무 꽃은 이미 누렇게 빛이 바래어가고, 몇 개 파다 심어놓은 산딸나무는 바닷바람 때문인지 누렇게 떠서 몇 송이 핀 꽃마져 정상이 아니다. 저걸 공원으로 옮겨 제대로 성공한 예는 본적이 없다.

 

 그러나 정상에 왁자지껄하게 피어난 인동덩굴 꽃은 제 세상을 만난 듯하다. 추운 겨울 소금끼 섞인 하늬바람을 이겨내고 저렇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저 꽃. 우리 나라 중부 지방 북쪽으로는 잎이 다 진 채로 겨울을 넘기지만 남쪽으로는 잎을 더러 달고 겨울을 넘기기에 인동(忍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른 상록수처럼 두꺼운 잎을 갖지 못해 추우면 잎을 쪼그리고 겨울을 나는 것이 너무 애처로웠나 보다.


 

j

* 새로 갓 피어난 하얀 인동덩굴꽃

 

 어렸을 적에는 향기가 너무 좋아 하얀 꽃을 따서 작은 꽃받침을 따고 꿀물을 빨아먹는 일을 즐겼고, 조금 자라서는 그 꽃을 따서 약재(藥材)로 팔았다. 처음 십 환 짜리 동전이 나오던 시절엔 솔직히 1근에 삼십 환은 너무 심했다. 물론 말려서 팔면 1근에 150환이지만 한 번 나서서 몇 시간 작업 끝에 3사람 정도의 것을 모아 1근을 채우고 30환을 받아 10환씩 손에 쥐는 즐거움이야말로 너무나 짜릿했다. 정말 약재 수집상들은 금빛이 반짝거리는 새 동전으로 아이들을 꾀었던 것이다.

 

 인동덩굴 꽃은 처음 필 때 은처럼 순백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르스름한 빛이 된다. 그렇게 하얗고 노란 꽃이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금은화(金銀花)라고도 한다. 한방에서는 꽃을 따 그늘에서 말린 것을 해열, 해독, 이뇨, 종창, 창독, 종기에 쓴다. 그런데, 우리는 향기가 좋은 인동꽃을 따 말려서 차로 끓여 먹던가 아니면 술을 담그는 경우가 있다. 몰라서 그렇지 좋지 않다고 한다. 겨울을 힘들게 넘겨서인지 독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j

* 누르스름하게 빛이 바랜 인동덩굴꽃

 

▲ 오랜만에 바다와의 해후(邂逅)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감히 환상적이었다. 멀리 지나가는 배, 고기를 낚는 사람, 썰물이 되면서 수면 위로 나타나는 돌들, 밀려오는 하얀 파도…. 갑자기 어린 시절이 생각나 엉뚱한 제안을 했다. 오랜만에 바다에 가보자고…. 차에 구멍 낚싯대 6개가 있다고 하며 부 원장이 맞장구를 친다. 도두에 가서 미끼 2천 원 어치만 사면 준비 완료란다. 먹을 것과 술은 음복하다 남은 것이 있으니까.   

    

 내려 바닷가로 몰려간다. 여기서 배준석의 시 '5월 바다'는 약간 사치다. '하늘을 쓸어도 5월의 색깔은 변하지 않는다. 푸르뎅뎅한 의미도 구름도 찢어지거나 내려앉지 않는다. 어느 귀퉁이로 한바탕 소나기라도 나뒹굴지 않을까않을까 하는 무심한 공간에 바람을 한 켜 깎아 넣는다. 예리한 칼 끝. 파도는 늘 성급했다. 발버둥치며 나뒹구는 女人. 하얀 속옷자락. 끝에서 끝으로 가느다란 해안선을 끊고 깃 터는 고깃배. 어부 한사람이 성큼 성큼 5월을 부려놓고 몸부림치는 女人의 속살로 사라졌다.'

 

j

* 돌 위에 앉아 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마우지

 

 차에서 내려 장비와 먹을 것을 챙기고 바닷가로 들어가는데, 바위에 앉은 채 미동도 않는 가마우지 한 마리. 중국에서는 저걸 훈련시켜 목을 묶고 고기잡이를 시킨다던데. 그래 김윤배가 쓴 '가마우지를 위한 노래'에 다 드러난다. '누가 너를 괴롭히느냐/ 너의 욕망이 너를/ 너의 목숨이 너를/ 괴롭히느냐 너의 주인이, 그 탐욕의/ 말들이 너를 괴롭히느냐/ 이강에서의 한 때를 말하며/ 나는 가마우지에게 묻는다

 

 가마우지는 긴 목 움츠리고/ 이강을 본다 불의의 일격이 숨어 있는/ 조용한 물길 속을 유영하는/ 힘찬 가슴지느러미를, / 한 순간 절망을/ 향해 크게 선회할/ 꼬리지느러미의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물끄러미 보며 강물 속에서/ 물어 올린 것은 헛된 식욕임을 깨닫는다/ 가마우지는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하루의 노역을 꺽꺽이다 부리를 벌린다/ 이강의 어부는 가마우지 목에서 물고기를 꺼낸다'


 

j

* 바위 틈에 붙어 있는 홍합과 거북손

 

▲ 바다 바람만으로도 시원한 휴식

 

 저 녀석은 혹시 고기를 잡을 수 없어 저러는 게 아닐까? 우리가 음복을 하며 낚시를 하는 동안에도 멀리 바위에 앉아 날아갈 줄 모르더니 1시간 넘게 느긋이 휴식을 취하고는, 우리의 염려를 불식시키며 슬며시 비상한다. 바닷가의 구조가 구멍낚시하기에는 부적합 곳이고, 게다가 써는 물이어서 고기는 쉽게 입질을 않다가 결국 박기배의 낚싯대에 속칭 보들래기라는 베도라치 한 마리가 몸을 비비꼬며 모습을 나타내었다.

 

 오랜만에 입질을 받은 부 원장의 낚싯대에도 속칭 감팍이 올라왔지만 너무 작아서 놓아주라는 요구를 받고는 더 커서 오라며 바다로 돌려보낸다. 졸락이라는 놀래미나 어랭이라는 놀래기 등 그럭저럭 10여 마리를 잡고 늦은 점심을 위해 낚시를 마쳤지만 바다만 봐도 싱그러운 날이었다. 사실이지 바다 오염이 덜 되고 오름 오르는 데 신경을 쓰지 않던 시절에는 틈만 나면 바다로 갔었다.

 

j

* 물 속에서 꽃처럼 촉수를 벌리고 있는 말미잘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나그네 선생님의 추모제를 강행한 날이다. 정신력이면 모든 여건을 극복할 수 있다더니, 사실인 것 같다. 사흘 동안 축구 응원을 하고 나서 동료들과 어울려 연일 음주를 했고, 더구나 어제는 스승의 날이라 초청 받은 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퇴역 선배들과 옛일을 안주 삼아 마시고 또 40대 후반이 돼버린 제자 녀석들이 돌리는 잔까지 거푸 받아 마신 후에 돌아와 2시가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4시 반이 되어서 어머니가 깨우길래 일어나 뒤를 돌봐 드리고 나니 5시다. 더 잘 수는 없는 시간이어서 천천히 세수를 하고 이것저것 챙겨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도 비가 추적거리고 있다. 걱정을 하며 모이는 장소에 갔는데, 고 고문과 일석 씨가 나와 있다. 6시까지 그럭저럭 모인 사람이 8명, 가는 도중에 3명이 늦게 출발한다고 알려 왔다. 이왕 나섰으니 해보자고 모두들 정신력으로 극복해 무사히 제를 올리고 내려올 수 있었다. 덕분에 금강산 비룡폭포를 닮은 두 줄기 영실 폭포를 보는 즐거움도 누렸다. 참가했던 모든 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 [2004. 5. 16.]


 

j

* 우리들이 두어 시간 머물렀던 바닷가

 

♬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오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산과 송악산에서  (0) 2004.05.28
봄 오름과 '신록 예찬'  (0) 2004.05.25
노꼬메여 영원하라  (0) 2004.04.28
사려니 -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04. 4. 5.]  (0) 2004.04.07
한라산의 눈[2004. 2. 8.]  (0) 200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