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남는 건 사진뿐 - 산둥반도에서

김창집 2001. 8. 5. 18:21

 

 

△'여행 사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본다

 여행지에서 너무 사진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찍는 게 아니라 본인이 꼭 그 가운데 들어가야 한다. 왕자처럼, 공주처럼. 진짜 들어가야 할 유적이나 경치는 뒷전. 그들에게 가려 정작 나와야 할 건 안 찍힌다. 물론 그것도 개성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럴 거면 언제 날 봐서 사진관이나 집에서 실컷 찍어 두지, 모처럼 시간 없는 답사자들 사진 못 찍게 한참 동안 막아서면서.

 

 그들이 변명 아닌 변명. '남는 건 사진뿐….' 그렇다면 큰 일이다. 모처럼 날 보고 시간 내고 돈 들여서 답사 갔는데, 사진만 남는다면 어떡하죠. 그래도 사진을 보이며, "나 여기 갔다 왔다!" 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과시하려고 찍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 가서 뭐를 보고 왔는지. 정작 중요한 것은 못 보고 만 것이다. 사진은 못 찍더라도 이곳저곳 부지런히 다니며 자세히 들여다보고, 안내인의 설명을 열심히 들어 메모하거나 가끔은 질문도 하는….

 

 물론 기념이 될만한 곳에서 단체 사진이나, 우정을 과시하는 사진은 가끔 찍어야 한다. 그래야, 추억이 될 테니까. 카메라를 갖고 여행에 나서면 열심히 찍고 와야 한다. 그렇지만 그 사진을 보면 자신이 갔다온 곳의 발자취와 진면목(眞面目)이 담겨 있다면 성공이 아닐까. 과시(誇示)보다는 자신이 갔던 곳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事實)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여행이라는 걸 좋아하면서부터 찍는 사진은 늘 그랬다. 될 수 있으면 사람이 없어야 한다. 한 때 답사를 다녀오고 나서 답사기를 잡지나 기관지, 또는 신문에 많이 썼는데, 그 때 곁들여지는 사진에 사람이 들어가면 본질을 흐리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갖고 다니던 카메라가 고장이 난 후에는 아예 홈 비디오 카메라를 구입해서 들고 다닌다. 중요 과정을 찍어 두면 글쓸 때, 현장감도 살리기 쉽고 안내자의 설명도 담기 좋다.

 

 하지만 그것을 들고 찍고 있으면 바쁘다. 더구나, 작은 자동 카메라까지 찍으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 버린다. 정말 아무 것도 안 찍고 글 쓰는 부담도 없이 혼자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러고 나서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남는 게 있으면 글로 쓰는…. 이번 답사에는 2시간 짜리 녹화 테이프 2개와 36판 짜리 카메라 필름 2통을 찍었는데, 룸메이트 정창현 선생이 장난 삼아 찍은 비디오 2컷 외에는 내 얼굴이 나타나지 않았다.

 

 

△ 석도만의 바다와 따밍호의 버드나무

 이번 여행에서 황해(서해) 바다를 실컷 바라보면서 건너 갔다온 것도 모처럼 감명이 깊다. 제주도에서 자란 나는 남보다 비교적 바다와 인연이 깊다. 인연이 깊다는 것보다 바다를 좋아하고 가까이 한다고나 할까? 어릴 때는 바다 속이나 해변, 물위에서 살았다. 태평양에 홀로 떠 우뚝 솟은 한라산을 보유한 제주도는 바람의 길목이어서 바다가 거칠다.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을 유지할 때가 드물고, 하늬바람이나 태풍을 만나면 바다는 겉잡을 수 없이 용솟음친다. 집채만한 바위도 한 입에 삼켜버리는 광기(狂氣)를 보이는 것이다.

 

 그에 비해 동해 바다는 깊고 음침하다. 청마(靑馬) 선생도 '울릉도'라는 시에서 "동쪽 먼 심해선 밖/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라고 노래했듯이 우리가 지도를 보면 짙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우선 깊다는 선입감을 갖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 때문에 방황하던 시절, 2년 동안 방랑 삼천리 하다가 결국 머문 곳이 동해 오징어잡이 배였다. 여름 한철을 속초·양양·주문진·묵호·삼척·울진항을 차례로 드나들며 2∼3시간 거리의 바다로 나가 밤에 수천 촉의 불을 대낮처럼 밝히고 오징어를 낚는다.

 

 여름 바다는 비교적 잔잔한 편이지만 먼바다는 그래도 물결이 일렁인다. 웃지 못할 일은 폭풍주의보가 내리는 날이면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기를 써서 바다로 나가는 일이다. 이유는 오징어도 잡힐 확률도 높고 값도 평일에 비해 많이 나가기 때문. 스피커에서는 돌아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망루에서는 기관총으로 위협 사격을 가한다. 그래도, 쏘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배는 줄을 지어 나가는 것이다. 물 이랑에 빠졌을 때는 바로 앞의 배가 물결 때문에 안 보인다.

 

 뱃멀미를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그보다 더 못 견디는 것은 없다. 파도의 높이 10m가 넘어가면 평소 멀미를 않던 사람도 토하기 시작한다. 배가 물 마루에서 물 이랑에 이를 때면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 때문에 숨이 멈춰지고 불규칙한 호흡이 원인이 되어 멀미가 오는 것이다. 한밤 중 오징어는 물리지 않고 수면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먹물처럼 까만 바다의 유혹을 받는다. 상대적으로 불빛이 너무 밝기 때문에 너무 깊고 맑아 반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바다가 빛을 다 흡수해버려 검게 보이는 것이다. 한번은 배에 있는 줄을 모두 모아 추를 매달고 그 깊이를 재었으나 도무지 잴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바다도 비교적 얕고 해류의 흐름도 원활하지 못한 황해바다는 3면 중에서 가장 평온한 바다의 조건을 갖췄다. 1만5천년 전 후기 빙하기 시대에는 중국 대륙과 이어져 있었다고 할 정도니까. 이번 답사에서 인천에서 웨이하이까지 그리고 칭다오에서 인천까지 30여 시간 배를 탔으니, 바다를 적게 경험했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배가 크기도 했지만 그래도 멀미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처음 성산두가 보일 때부터 맑고 잔잔한 바다에 양식(養殖)을 위한 부표들이 떠 있더니만, 발해만이나 중국 대륙 동부지역의 바다는 모두 그랬다. 그래서 장보고 시대 훨씬 이전부터 뱃길로 이용했나 보다.

 

 윗 사진은 장보고 대사가 법화원을 짓고 신라방을 설치한 석도만의 바다이다. 그 맑고 부드러운 색의 바다가 너무 좋아서 칼럼 첫 번째의 사진으로 올려놓는다. 장보고 기념탑 언덕에서 그냥 바다를 보고 찍은 것이다. 그 아래 사진은 따밍후에서 찍은 버드나무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선비들이 버드나무를 좋아했다. 그래서 물가에는 버드나무를 즐겨 심는다. 따밍후에 대해서는 답사기 <4>를 찾아 읽기를 권한다. 단 하나 호수를 자세히 바라보면 녹색을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호수의 반은 저렇게 녹조현상이 나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