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과연 알프스라 할만했다 (1)

김창집 2006. 7. 20. 04:38

                                ---오름오름회 영남알프스 등산기


 

 

 * 표충사 경내에서 보이는 천황산 줄기

 

 

▲△▲ 영남알프스는 어떤 곳인가

 

 내가 맨 처음 영남 알프스라는 말을 들은 것은 몇 년 전 표충사에 갔을 때였다. 2월말이었는데 묘하게도 양동민속마을을 찾은 첫날은 비 날씨, 해인사를 찾았던 둘째 날은 눈이 곱게 내려서 설국(雪國)을 이루었고, 이곳을 찾은 셋째 날은 춥긴 했지만 개인 날씨였다. 경내로 들어서서 사방을 둘러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적당한 높이로 사방을 둘러싼 산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당시 군청에서 해설을 위해 나온 분에게 물었더니, '영남알프스'라 했다. 영남알프스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에 높이 1,000m 이상 되는 7개의 산군(山群)을 일컫는 것으로 가지산(1,240m), 운문산(1,188m), 천황산(재약산 : 1,189m), 신불산(1,208m), 영취산(취서산 : 1,059m), 고헌산(1,032m), 간헐산(1,083m)과 그 주변 계곡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 영남 알프스 개념도 : 출처 - 한국의 산

 

 

 전체 종주에는 2박 3일 정도 걸리며, 등억온천, 사자평, 밀양 남명리의 얼음골, 대곡리암각화, 밀양 농암대, 통도사, 석남사, 운문사, 표충사 등의 명소와 사찰 등이 주변에 있어 상승 효과를 내고 있다. 신불산과 취서산 사이의 신불평원 60여만 평과 간월산 밑 간월재의 10만여 평, 고헌산 정상 부근의 20만여 평이 억새 군락지이다. 가지산과 운문산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석남사 뒤로 올라 배내골 울산대학교 연수원에서 서쪽으로 갈 수 있다.

 

 천황산과 재약산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사 매표소 뒤로 올라갈 수 있고, 신불산과 취서산, 간월산은 경부고속도로 통도사인터체인지에서 삼성전관 뒤쪽 등산로를 따라 산행할 수 있는데, 종주까지 3∼4시간이 걸린다. 그 중 취서산에서 신불산을 거쳐 간월산 능선을 타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취서산을 오르려면 신평에서 통도사, 극락암, 백운암, 산림초소를 거쳐 능선을 탄다.

 

 

 

 * 표충사 옆에 있는 부도밭

 

 

▲△▲ 시간 때문에 한 바퀴 돌지 못한 천황산 

 

 2006년 7월 15일 토요일 12시 25분. 우리 오름오름회 회원 14명을 태운 제주국제공항 출발 - 부산 김해공항 착 아시아나 OZ8102 여객기는 유유하게 구름을 뚫고 날아오른다. 이번 산행 기간이 장마가 한반도를 오르내리는 시기여서 '많은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에 다른 팀은 취소까지 하는 것을 본 터라 여러 사람이 걱정했는데 계획이 되었고 한창 진행이 된 거라 연기하는 것도 그렇고 어쩔 수 없이 강행하게 되었다.

 

 13시 20분 경,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엄청나게 오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는데, 장대비가 마구 쏟아져 좁은 차에서 시종 웃기는데도 걱정이 되어 좌불안석이었다. 이번에 같이 가게 된 현지 출신 남 사장이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니 "햇볕이 쨍쨍"이란다. 밀양으로 올라갈수록 하늘이 환해지더니 비가 그쳐 있고 길도 젖지 않았다.

 

 

 

* 금강폭포 못 미쳐에 있는 커다란 바위 

 

 

 차가 밀려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각인 15시 30분에 밀양 표충사에 도착했는데, 전화에서 전하는 말처럼 날씨가 좋아서 서둘러 숙소를 정하고 짐을 풀어 가벼운 차림으로 물과 간식거리를 챙기고 늦었지만 4시경에 천황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가끔 건너는 다리 아래로 맑은 물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것이 보이자 1시간 전의 그 어둡던 마음이 사라지고 모두들 싱글벙글한다.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자 바로 계곡을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시원한 물소리는 오름 오를 때와는 다른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어느덧 금강폭포에 이르러 일단 쉬면서 경치를 감상하고 올라갔는데, 예상과는 달리 길이 번듯하지 못하고 자세한 이정표도 세워놓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올라갔을 때 숲이 사라지고 이상하게 커다란 돌덩이가 몰려 있는 곳이 있어, 쉬며 사방을 바라보니 봉우리마다 안개가 머물러 있다.

 

 

 

 * 금강폭포의 한 부분

 

 

 해발 800m 정도에서부터 안개가 자욱해 정상을 확인하기가 어려웠지만,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겠지 정상이겠지 반복하며 올라갔는데, 사진에 보았던 천황산이라는 표지석은 안나오고 안개만 점점 짙어진다. 능선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오르자 조그만 무덤이 있었다. 혹, 조난을 당해 이곳에서 죽어서 묻힌 것이라고 나름대로 짐작하며 스쳐지나갔다. 오래된 나무인 분재 같이 보기 좋은 소나무에서는 물이 뚝뚝 듣고 있었다.

 

 능선 바위에서 마지막 회원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간식을 먹었다. 지친 사람이 있고 사진 찍느라 폭포에 미쳐 아직 올라오지 못한 회원 때문에 재약산이라고도 부르는 사자봉을 거쳐내려 가기는 글렀고 지친 사람을 거기 기다리게 하고 나머지 11명은 정상을 확인하러 올라갔다. 하지만 정상이 쉬 나타나질 않아 어느 회원이 '올라오다 길이 보였는데, 정상은 그 길로 간 다른 능선에 있고 우리는 엉뚱한 다른 능선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 금강폭포를 지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이정표 

 

 

 능선에 오른 뒤로 사방을 살피며 왔지만 '의심이 병이 된다'고 만에 하나 그랬으면 낭패라고 생각이 되어 자리에 앉아 의논했다. 시간을 본 즉 지친 사람도 있고 그냥 내려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여 손전등도 안 가져온 점을 감안해서 무조건 내려가기로 해서 뒤돌아 섰는데, 앞장서 가던 제일 젊은 박기배 회원이 100m 전방에 있는 정상을 확인하고 돌아왔다고 하며 안개 속에서 찍은 표지석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을 찍느라 뒤쳐졌던 회원도 올라와 요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개에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지친 회원을 감안하면 조금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모두 아쉬움을 뒤로하고 올라온 길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아쉬워하는 회원더러 높은 산은 팀 전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몸체는 베이스캠프에 있고 정상 공격조 한두 사람이 대표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위안해서 웃어 넘기고 말없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안개가 짙고 나무가 우거져 어둑했으나 앞서 얘기했던 돌무더기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고, 저녁 8시경에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 박기배가 찍어온 천황산 정상 표지석

 

 

▲ 원효대사가 창건한 표충사(表忠寺) 
 
 지난번에 갔을 때 저녁을 먹었던 '약산가든'에서 도토리묵에 동동주로 갈증을 풀며 그래도 비가 안 와 다행이라고 웃었다. 산채비빔밥으로 저녁을 끝내고 돌아와 땀에 젖은 옷을 대충 빨아 호텔 세탁기에 돌리고 몸을 씻고 나서 이불을 펴는데, 마 냄새가 진동하였다. 산 속이어서 이런 곳에 자지 너무 심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6시에 표충사에 가기로 약속하고 술 마실 사람을 대동하고 나와 메기매운탕과 이곳 특산인 염소고기를 구워놓고 얼큰하게 마시고 나서 몇몇 주당(酒黨)은 단란주점까지 전전하다 4시가 다되어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2006년 7월 16일 일요일 아침 6시. 약속대로 표충사를 찾았다. 표충사는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載藥山)에 있는 사찰로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혼을 기리기 위하여 국가에서 명명한 절이다. 654년(태종무열왕 1)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하였으며, 829년(흥덕왕 4) 인도의 승려 황면선사(黃面禪師)가 현재의 자리에 중창하여 영정사(靈井寺)라 이름을 고치고 3층 석탑을 세워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것으로 전한다.

 

 

 

 * 천황산 능선에 피어있는 산나리

 

 

 신라 진성여왕 때에는 보우국사(普佑國師)가 한국 제일의 선수행(禪修行) 사찰로 만들었으며, 1286년(충렬왕 12)에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一然) 국사가 1,000여 명의 승려를 모아 불법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839년(헌종 3) 사명대사의 법손(法孫)인 월파선사(月坡禪師)가 사명대사의 고향인 무안면(武安面)에 그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져 있던 표충사(表忠祠)를 이 절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라 고치게 되었다.

 

 1715년(숙종 41)에도 중건한 사실이 있으나 1926년에 응진전(應眞殿)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문화재 및 건물로는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완)을 비롯하여 보물 제467호의 삼층석탑이 있으며, 석등(石燈), 표충서원(表忠書院), 대광전(大光殿) 등의 지방문화재와 25동의 건물,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새벽 청정한 사찰을 돌아보고 둘러싸인 산을 감탄하며 돌아오는데, 아침 공양을 하고 가라고 해서 맛있는 산채비빔밥을 얻어먹고 돌아 나왔다. (계속)

 

 

 * 표충사 팔상전 앞에서 보이는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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