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통일을 향한 여정 (4)

김창집 2006. 2. 26. 01:18

-- 금강산 통일연수기

 

 

* 사진은 해금강(다음 사진은 모두 해금강입니다.)

 

▲ 단서는 완연한데 사선은 어디 갔니

 

 2월 7일 마지막 날. 아침에 어제처럼 금강산 페밀리 비치호텔 식당에 가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점심 때 그 유명한 옥류관 냉면을 맛보기 위해 2$를 더 내고 식권을 바꿨다.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 해금강과 만물상 중 하나만 가야 하는 선택 관광이다. 사실이지 이건 너무 가혹하다. 만물상을 안 보고 어찌 금강산을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해금강 역시 보고 싶은 코스다.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숙소에서는 어제 저녁에 의견의 일치를 보아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저녁 때부터 안개와 구름이 산을 휩싸고 눈도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물상은 몸으로 느끼는 코스가 아니라 서서 바라보는 코스가 아닌가? 한라산 어리목 같은 곳에 운동 삼아 가는 것이라면 구름이 끼고 눈이 어느 정도 온 것은 상관없지만 만물상(萬物相)은 바라보는 경치다. 아무래도 금강산의 면모를 제대로 느끼려면 앞으로 코스가 더 개발되었을 때, 봄이나 여름에 와서 만물상을 보자."는 나의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도 많이 쌓였고 안개와 구름은 골짜기까지 자욱하다. 아침까지 흔들리던 주위의 선생님들도 내 얘기를 듣더니만 수긍하는 눈치였고 결국 2명만이 만물상을 고집하였는데, 눈 때문에 찻길도 제한될 수 있고 등반도 제한될 수 있다는 조장의 협박 아닌 협박에 손을 들고 말았다. 이왕 결정한 거 기분 좋게 가자고 오늘은 여유 있게 조장에게 알고 싶은 것을 물어보며 해금강으로 차를 몰았다. 

 

 차가 관광도로를 벗어나 조그만 민가 옆을 지나게 되었을 때 우체국 분국 앞에 써 붙인 "미제 원쑤를 몰아내고…"도 볼 수 있었고, 지도자 동지가 중국에서 얻어온 대나무를 연구하며 키우는 곳과 시골 학교도 보면서 해금강으로 갔다. 중간에 눈은 좀 그쳐 있었지만 멀리 안개가 끼어 있어 사진을 찍어도 그리 명쾌하지는 않는 게 흠이다. 그래도 우리는 북측 군사시설을 제외한 멋있는 경치를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바위와 절벽이 나무와 어우러진 해변과 여러 가지 형상을 하고 바다 위에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이 어울려 이를테면 아름다운 교향악 연주를 보고 듣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한바탕 정신 없이 찍고는 뭔가 허전해져 돌아오는데 우리를 따라온 금강산 황금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아산에 하청을 받아 운영하는 것으로 사실은 우리 일행의 맨 앞에 온 차였다. 중국 교포 여인들이 판매를 하는데, 라면·맥주·찰옥수수·핫바 등 물건은 남북측 혼합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 고성의 막걸리가 있어 천원을 주고 한 병 사서 나눠 마셨다. 맛은 우리 제주의 삶지 않은 쉰다리 같은데 깊고 순수한 맛이 있어 다시 한 병을 비웠다. 삼일포로 가는 길에 '삼아제 과수원'을 보았다. 사과·배·복숭아나무를 심었는데, 바로 이곳 삼일포의 '삼', 현대아산의 '아', 충북 제천의 '제'의 합작으로 제천시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남북 협력 사업도 결국은 통일의 밑거름이 되는 것일 터.

 

 

 삼일포의 소나무는 역시 아름다웠다. 노송(老松)은 없었으나 모래밭과 언덕 바위 사이사이에 늘어선 소나무의 행렬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끝없이 펼쳐진 호수는 모두 얼어 있었고, 전망대와 정자를 따라 경치를 구경하며 주변을 도는 맛도 일품이었다. 하지만 여기도 커다랗고 멋진 바위에는 장군이나 지도원 동무의 어록이 크게 새겨져 있어 개운치 못한 느낌을 던져준다. 

 

 그곳의 어느 안내원은 옛날 임금이 이곳에 와서 하루를 묵고 가려다 경치가 너무 좋아 3일 동안 머물었다고 해서 삼일포라는 이름이 생겼다 했고, 우리 조장이 설명할 때는 왕보다는 네 신선(神仙)이 와서 사흘 동안 자고 가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길래,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 시정해 주었다. '사실은 신선이 아니라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들인 국선(國仙) 네 분 즉, 영랑, 술랑, 남랑, 안상'이 와서 사흘 머물고 간 거라고. 

 

 

 우리가 마지막 경치를 바라봐야 하는 지점, 커다란 바위 위에서 북측 안내원 아가씨로부터 대단원을 장식하는 해설을 들었을 때는 모두가 아쉬워 박수로 노래를 청했고, 재청곡으로 '다시 만납시다'까지 들은 뒤에야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 있었다. '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 헤어져서 얼마냐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 목 매여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 우리가 남이가

 

 2박3일의 일정 중 마지막 점심은 북측 평양 옥류관의 금강산 분점에서 냉면으로 마쳐졌다. 들어가는 곳 현관과 이층으로 오르는 벽면에는 금강산보다 더 곱게 그린 금강산 그림이 있었고, 우리가 앉아 있는 방엔 붉은 홍매화가 가운데 걸어 있었다. 현대건설에서 지었을 게 분명한 이 건물은 고급스럽기도 하려니와 아리따운 북측 아가씨가 긴장해 얼굴을 붉힌 모습이 꼭 신부 대기실에 앉아 홍조를 띠었던 처조카를 연상시켰다. 

 

 

* 평양 냉면

 

 냉면은 놋그릇 같은 금빛이 황홀한 그릇에 넣어 맛을 더 좋게 했다. 옆에 3$을 더 낸 15$짜리 쟁반 냉면은 굽이 높은 같은 빛의 그릇에 곱빼기처럼 많은 사리를 얹었다. 어제 낮에 목란관에서 먹은 10$짜리 냉면은 제주시동문시장의 냉면처럼 수수하더니, 이곳의 냉면은 어찌나 내 입맛에 맞던지 명성은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느끼게 했다. 그 입맛을 오래 간직하려고 천천히 걸어나와 이웃해있는 김정숙 휴양소를 바라본다. 

 

 한 때 남북 이산가족 만남의 장소로 활용했던 빌딩인 이곳은 호텔로 리모델링 중이고, 구룡마을에 이산가족 면회소를 짓고 있다. 천천히 걸어 5분 거리인 관광센터로 갔다. 옆에서 선물센터에 가보자고 하는 바람에 같이 들어가 북측 물건들과 한쪽 모퉁이에 외국 물건들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무슨 돈 쓸 일이 있을까 하고 바빠서 새뱃돈 남은 것만 챙기고 왔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옆 사람들이 인색하다고 흉보았을지도 모른다.  

 

 

* 이 날 우리보다 앞장서 다니던 금강산 포장마차

 

 연변에 갔을 때도 그렇고 이곳에 왔을 때도 그렇고, 우리가 긴히 소용되지도 않은 북한의 물건을 인정 삼아 사주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더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들어 자생력을 기르도록 지켜보는 것이 옳은 일인지. 당장 달콤한 이런 것에 길들여지면 그들이 자립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하지만 내가 마셨던 들쭉술 한 병 정도 사다가 오름 동료들에게 기념으로 맛보이는 것은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혹 내 마음을 알아 차렸는지 옆에서 시식을 권해 결국 엿을 먹게 만들었다.

 

 이제 버스를 타고 되돌아가야 할 판이다. 천천히 가다가 잠시 세워놓은 차창 너머로 길가를 바라보니, 남쪽에서 가져온 개나리, 철쭉 같은 꽃나무가 벌써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비록 남측 전용도로지만 꽃이 피면 더러 솎아다 심게 되겠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길 건너 금강산 샘물 생수공장이 있어 조장에게 물어봤더니, 남측의 (주)태창과 북측의 조선능라88이라는 회사가 합작해서 세운 것이라 한다. 우리가 탄 차는 점점 남쪽으로 흐르는데 2시간마다 교대한다는 17∼8세 정도의 조카 같은 군인에게 손을 흔들어봤으나 반응이 없다.

 

 

* 삼일포

 

 북측 출입사무소가 가까워졌다고 금강산 관광증과 신분증을 내놓고 나머지 호주머니에 있는 물건은 전부 짐 속에 넣고 카메라만 손에 들고 있으라고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옆에 여선생님이 거기 서 있는 여군이 계급장에 별이 많다고 계급이 뭐냐고 묻는다. 모른다고 하니까 그곳을 지날 때 용감하게 직접 물었는데 아무 대답도 않고 위아래를 훑어본다. 지금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가로 별 두 개 세로 별 두 개 나란히 있는 건 대좌(대령) 아니면 대위인데, 마크가 기억나지 않는다.

 

 북측 검색대를 지나면서 카메라가 망원렌즈처럼 길다고 10$ 벌금 낸 사람도 있고, 가방에 남아있는 여분의 휴대폰 배터리 때문에 10$ 벌금 낸 사람도 있다. 그 일 말고는 아무 탈 없이 남측출입국사무소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번에 통일 연수라고 금강산에 가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는 자칫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누구의 가슴에든 새겼을 것이다. '통일은 해야 되지만 서두르지 말고 조그마한 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들에게 이런 소중한 기회를 준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 (완) * 다음은 사진만 싣습니다. 

 

 

* 삼일포의 섬 와우도

'국내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연 알프스라 할만했다 (1)  (0) 2006.07.20
올봄 마지막 금강산 설경  (0) 2006.03.04
통일을 향한 여정 (3)  (0) 2006.02.24
통일을 향한 여정 (2)  (0) 2006.02.22
통일을 향한 여정 (1)  (0) 200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