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과연 알프스라 할만했다 (3)

김창집 2006. 7. 22. 15:24

                 ---오름오름회 영남알프스 등산기

 

 

* 다 내려온 곳에서 만났던 석골폭포 

 

▲△▲ 운문산으로 출발하며

 

 인생과 등산은 꼭 닮은 것 같다. 주어진 길을 자신이 책임지고 자신의 힘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같고,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성취감은 물론 여러 사람에게서 박수를 받는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죽기 전까지는 한 가지 일이 끝났다고 멈춰서는 안 되며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것과 기회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완수하여 상대에게 믿음을 보여야 하고, 그러자면 아무래도 내가 가야 할 길이라 여기고 꾸준히 신념을 갖고 밀고 나가야 한다는 점 등등이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 시간이 여유가 있어 일행의 상태를 보면서 천천히 걷자고 했는데, 늦게 출발하다 보니, 여기서 아랫재까지 가서 다시 운문산을 올라 석골사로 내리기까지는 무시 못할 시간이 남아 있어 더 쉬고 싶어하는 회원들이 있었지만 과감히 출발하기로 했다. 바위 아래로 내려가니 매점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니 커다란 헬기장이 두 군데 있어 어떤 사람은 이곳에 헬기 타고 놀러 오냐는 얘기를 하길래 그게 아니라 구조를 위한 것이라니까 반신반의한다.

   

 

* 가지산 정상에서 안개에 촉촉이 젖은 기린초 

  
▲△▲ 아랫재로 내리는 길

 

 이곳은 네 거리가 되는 셈이어서 지도에서 보면 등산로가 짝표(×) 모양이 된다. 오른쪽 위로 가면 쌀바위를 거쳐 석남사로 돌아가는 코스가 되고, 오른편 아래쪽은 우리가 갔던 중봉을 거쳐 석남터널로 가는 코스, 왼쪽 위로는 배바위를 거쳐 운문사로 내리는 곳, 왼쪽 아래가 우리가 내리려는 아랫재를 거쳐 운문산으로 오르는 코스다. 우리는 남아 있는 사람들과 기사에게 약속한 게 있어 할 수 없이 아랫재를 거쳐 운문산에서 석골사로 내리는 코스로 내려야 한다.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내리는 능선 길은 풀이 우거져 손으로 헤치며 가야 하는 것과 가끔 길이 질퍽거리는 것만 빼고는 비교적 걷기 좋아 많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 중에 노루오줌의 개체수가 비교적 많았고 말나리는 완전히 군락이었다. 오래된 것은 한 꼭지에 10송이 달린 것도 있었다. 여기서 구룡폭포를 거쳐 호박소로 내리는 갈림길이 있는 곳까지는 2.58km이고, 갈림길에서 아랫재까지는 1.29km이다. 

 

 

* 운문산에 오히려 많았던 말나리꽃

 

▲△▲ 진을 빼버린 내리막길

 

 그런데 호박소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까지는 평탄한 능선과 약간의 내리막길이어서 긴 거리였지만 쉽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호박소로 내리는 등산객에게 길을 확인하고 들어선 아랫재까지의 1.29km는 힘은 들지 않았지만 진을 빼기에 충분했다. 갈림길에 접어  들자마자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은 마침 숲길이어서 피할 수 있었지만 경사가 심하고 미끄러워 걷기에 힘이 들었다.

 

 경사를 줄이려 여기저기로 갈래길이 나 있었지만 시원하게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나 표지판이 없어 등산모임에서 매달아 놓은 리본이 많은 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입장료는 엇비슷한데 정말이지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의 차이가 그렇게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헤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맥이 풀려 일단 쉬면서 지도를 꺼내 위치를 확인해야만 했다. 조금 전 능선의 연장인 듯 싶은 바위 위로 길이 나 있어 능선의 끝이 재이기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게 사실이었다.

 

 

*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자주꿩의다리

 

▲△▲ 아랫재에서 힘을 충전하여

 

 하지만 인적 하나 없는 곳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이란 게 굳건한 신념(信念)에 따른 행동뿐이라는 것이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지론인 바, 아무튼 이곳은 가지산에서 내려가는 길이기 때문에 아랫재가 아닌 다른 곳으로 하산해졌으면, '아! 이건 운명이구나'하고 하늘이 시키는 대로 운문산에 오르지 말고 동동주집에서 술이나 한 잔 마시며 차를 부르면 될 게 아니냐고 하면서 먼저 일어서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얼마 전 능선에서 내려오는 듯한 길이 오른 쪽에서 내려 합쳐지는 곳이 보였다.

 

 이제 확신을 갖고 내려가는데 앞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나고 우리가 내려온 곳으로 향하는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얼른 인사를 하고 물었더니 바로 여기가 아랫재라고 했다. 옆에 평상 같은 것이 놓여 있고 장기판이 있다. 공깃돌도 다섯 알 가지런히 모아둔 것도 보였다. 알고 보면 이렇게 쉬운 것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예지(叡智)가 고 정도에서 맥을 못 추었다니. 아랫재에는 일행이 또 있었다. 우리는 자세히 길을 묻고 입구 쪽에 올라 쉬면서 물도 마시고 초콜릿도 먹으면서 힘을 충전하여 1.2km의 운문산에 올라갈 결의를 다졌다. 

 

 

* 고추나물 꽃도 피어나고

 

▲△▲ 운문산에 오르며

 

 시간은 충분하니까 절대 무리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앞장서 속도를 조절하며 올라가니 얼마 안가 능선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이곳도 가지산을 오를 때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등산로였다. 이 길을 따라 오르막도 몇 번 오르며 가다가 한번씩은 바위가 있는 급경사를 타다 보면 결국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로 힘있게 나아갔다. 어김없이 말나리가 나타나 응원군이 돼주었다.
  
 운문산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188m이다. 영남알프스 7산 가운데 하나로, 지질은 편마암과 화강암이 대부분이고, 식생은 소나무, 낙엽송, 주목 등 침엽수와 참나무, 고로쇠나무, 엄나무 등 활엽수가 어우러져 있다. 경상남북도의 경계를 따라 뻗은 태백산맥 남단의 주봉 가운데 하나이며, 운문현(雲門峴 : 700m)을 중심으로 동운문과 서운문으로 나뉜다.
 

 

* 운문산에서 내려오는 숲길에서 만난 큰꿩의 다리

 

▲△▲ 운문산은 군립공원

 

 동운문은 남쪽 비탈면의 절벽 밑에 구연동(臼淵洞), 얼음골로 불리는 동학(洞壑), 해바위 등 천태만상의 기암이 계곡과 더불어 절경을 이룬다. 또 북쪽 기슭에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창건된 운문사가 있고, 남쪽에는 석골사(石骨寺) 등 크고 작은 절과 암자가 산재한다. 문화재로는 운문사 금당 앞 석등(보물 193), 내원암 석조아미타불좌상, 대웅보전(보물 835) 등 7점이 있다. 운문사 경내의 400년 된 반송은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운문산의 면적은 16.2㎢로 1983년 12월 22일 청도군에서 군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7개 산 중에서 자연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힌다. 곳곳에 기암괴석과 암봉, 울창한 숲이 있고, 천문동계곡과, 목골, 배넘이골, 큰골, 학심이골 등 크고 작은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정상에서 청도 쪽으로는 낮은 연봉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깊은 계곡의 곳곳에는 짙푸른 소(沼)와 암반, 끝없이 이어지는 활엽수의 천연림이 심산유곡을 이룬다.

 

 

* 운문산 정상 못 미쳐에 피어난 이질풀꽃

 

▲△▲ 운문산 자연휴양림

 

 자연림은 대구와 경남 언양간 지방도(69호선)변에 위치해 있는 영남 7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운문산 기슭에 위치하며,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남부지역에 위치하는 문복산(1,014m)과 영남의 알프스라 칭하는 가지산(1,240m)등 해발 1,000m 이상의 고봉에 둘러싸여 있어 여름철 피서는 물론 등산과 삼림욕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며, 인근에는 비구니 승가대학인 운문사와 주민 식수원인 운문댐을 볼 수 있다.

 

 휴양림 입구에는 옛 운문성을 재현한 특이한 정문 조형물과 시설 지구내에 20m 높이에 은막의 물을 쏟아 붓고 있는 용미폭포와 모래흙이 없는 완전 암반바위를 구슬같이 흘러내리는 벽계수와 계곡에 자생하는 노각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울창한 천연활엽수림 지역으로 여름에는 울창한 숲으로 더위를 잊게 하고 가을에는 기암괴석과 조화된 형형색색의 단풍과 겨울에는 심산계곡의 고요한 자연 속에서 포근한 설경과 얼음동산, 용미폭포의 빙벽은 절경이며 동쪽 2km지점에 위치한 운문령에서는 동해의 해돋이 관광도 즐길 수 있는 특색 있는 지역이다.

 

 

* 운문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바위 위에 피어난 며느리밥풀꽃

 

▲△▲ 운문산 정상에서

 

 오를수록 나무가 울창하고 가끔씩 높을 바위를 돌며 오르는데 갑자기 다시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라는 속담이 있지만 지금은 멈출 개재가 아니어서 다행히 잎이 넓은 나무 밑에 잠시 의지하여 순간을 넘기고 다시 능선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잠시 안개 속에 홀현홀몰(忽顯忽沒)하는 봉우리나 절벽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정상이 가까워지는 듯 바위가 자주 나타나더니, 가지산에서 보지 못한 이질풀이 꽃을 피워 빗방울을 머금고 짙은 자줏빛을 자랑한다.

 

 그 곳을 지나 험한 바위를 오르다 보니 며느리밥풀 꽃도 한두 포기 피어있다. 그리고 그곳을 거의 지난 곳에 타원형 표지석이 서 있어 거기가 정상인가 했더니, 위로 올라 가본 즉 저편으로 운문산 1,188m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비에 젖은 채로 서 있다. 가지산에서 한 번 정상 등정의 감격을 맛 본 터라 그 감격은 배가되었다. 사람이 없는 틈을 보아 모두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표지석을 의지하여 남아 있는 음식을 다 내놓고 마지막 성찬을 벌였다.

 

 

* 운문산 정상 표지석에서 단체 사진(한 사람은 사진 찍음. 필자는 왼쪽에서 두번째 ) 

 

▲△▲ 표지판 좀 세워 주세요

 

 내 배낭에는 삶은 달걀 하나와 두 개의 쵸코파이가 원형을 잃은 채로 들어 있어 "쵸코파이 먹을 사람 없소!" 하고 내미는데, 언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저요!" 하면서 저 쪽에서 귀엽게 생긴 조그만 여학생이 온다. 어리게 보이나 새내기 대학생쯤으로 보인다. 덤으로 김밥까지 얻어 가는 젊은이들은 사흘 동안에 영남알프스를 종주 한다고 했다. 우리도 젊었을 때는 그런 용기와 패기가 있었지 하면서도 저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왼쪽 가장 빠른 코스로 간다고 했고,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오른쪽 그러니까 북쪽 코스로 출발했는데, 곧 낭패에 빠지고 말았다. 길은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표지판은 없는 것이다. 보통 두 갈래로 나뉘는 경우 대부분은 묵은 길이 나무가 쓰러져 막히거나 파괴되었을 때 살짝 도는 코스나, 아니면 숲 속에서 바위 위 같은 동산이 있어 주위를 전망(前望)하려고 그 쪽으로 길을 내는 경우다. 그러나 여기서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세 곳으로 구분되어 있다.  

 

 

* 상운암 계곡에서 보이는 산의 모습

 

▲△▲ 철저히 준비 못한 탓

 

 전날에도 완벽한 등산 코스 지도를 못 갖춰 시간을 완전히 체크하지 못한 점과 손전등 하나 준비하지 않은 데 대해 후회했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된 등산 코스 지도 하나 준비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은 나에게도 있다. 일상으로 한라산을 오르거나 유적을 답사하는 경우에는 안내 책자에 정확한 코스와 소요 시간까지 나와 있고, 안내판이나 유도 표시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어 별 불편을 못 느낀 때문에 타성(惰性)이 생겼다고나 할까? 사흘 동안 불로그에 올릴 내용을 편집해 임시 보관함에 담아두는데 시간을 뺏겨 전날 인쇄해 봉투에 담아둔 전체에 나눠줄 유인물도 못 가져 왔으니….           

 

 그러나, 부회장인 교감 선생님이나 사회과 강 선생님, 그 외 컴퓨터를 가까이하는 회원들이 스스로 검색해서 얻은 내용이나 지도 또는 코스를 나타내는 개념도를 출력해 가지고 와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서로 달랐고 인터넷 속성이 그렇듯이 다른 사람의 정확하지 못한 내용을 복사해 실어서 오히려 혼동을 가져오기 일쑤다. 서툰 사람이 그린 컴퓨터 그래픽은 정확하지 못해 엄청난 거리를 바로 붙어있는 것처럼 그려 써놓는다든지 공간이 비좁아 가까운 거리를 멀리 떨어지게, 또 북쪽을 위로 두고 그려야 하는데 방위를 따지지 않고 그려 오히려 낭패를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운문산 개념도 : 지도 출처 - 부산일보(http://www.busanilbo.com/)

 

▲△▲ 한 동안 헤매기도

 

 그 세 코스와 맞지 않은 지도 때문에 한 동안 헤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 여기 실은 개념도는 부산일보 홈에서 가져온 것인데, 이 지도만 있어도 깨끗이 해결 될 문제를 가지고 20여분 정도 혼란이 있었다. 지금 이 지도를 보면 북쪽으로 난 길은 곧 세 갈래로 나뉘는데, 오른쪽으로는 운문사로 내리는 길이고, 왼쪽으로는 상운암을 거쳐 석골사로 내리는 코스, 능선을 따라 계속 내려간 코스는 결국 딱밭재를 거쳐 석골사로 내리며, 앞서 대학생들이 능선을 따라 내린 코스도 상운암 계곡을 거치게 돼 있어 결국 세 코스가 만나 하나의 길로 석굴사에 이르는 것이다.

 

 가운데 길을 택해 느슨한 내리막길 능선을 따라 서북쪽으로 거침없이 가는데 뒤에서 제동이 걸렸다. 아무래도 방향이 아까 보았던 상운암을 거쳐가는 길이 의식되었는지 북쪽으로 잘못 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저것 지도와 그림을 보며 설왕설래했다. 등고선이 있는 지도를 다라고 해서 나침반을 놓고 맞춰보았더니 방향이 정확하다. 생각하기에 능선을 따라 약간 돌아가는 코스로 높이를 천천히 줄여 재에 이르렀을 때 가파르지 않게 내리게 만든 코스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따라오면서도 뒤떨어진 회원들은 약간의 미련이 남은 듯 걸음이 신나지 못하다.

 

 

* 산 높고 물 맑은 상운암 계곡

 

▲△▲ 언제나 균형감각을 잃지 말아야

 

 그런 것을 보니 앞장선 나도 약간의 의심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능선이 거의 마지막이라고 생각 될 즈음 새로 세운 표지판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혼돈을 불러왔다. 이곳은 경상북도 지경이어서 청도군에서 안전 표지판을 새로 세웠는데, 우리가 온 쪽으로 가면 운문산이고, 내려가면 딱밭재라고 쓰여 있다. 거기 나온 번호로 전화를 넣었더니, 등산로를 잘 모르는 순경이 받고 횡설수설한다는 것이다.

 

 몇 회원이 "내려가는 길을 지난 지 10여분 밖에 안 걸렸으니 지금 돌아가도 늦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엉뚱한 길이라고 다시 돌아가자고 해서 돌아온 방향으로 힘없이 돌아가는데, 옛날에 세웠다가 쓰러진 표지판이 보였다. 어느 회사에서 선전 삼아 세웠던 것인데 전화 번호가 남아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넣었더니, 한참 뒤에 길을 아는 사람이 전화를 받아 딱밭재로 가면 왼쪽으로 석굴사로 내리는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되돌아가기로 앞장섰던 회원들이 중간에 서서 통화 결과를 지켜보던 나의 부름에 돌아와 다시 애초에 가던 길로 간다. 의견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중립적인 판단으로 냉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거의 다 내려온 곳에서 본 운문산 

      
▲△▲ 왜 이곳을 영남 알프스라 했는지

 

 지금에 와서 보면 제대로 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피부로 느끼게 한다. 일부 의견 중에 지금 엉뚱한 방향인 억산으로 간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사실이지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개념도를 보면 딱밭재를 지나 같은 방향 능선으로 계속 가면 범봉(965m)을 지나고 팔봉재를 거쳐 바로 억산(954m)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얼마 안 걸어 딱밭재가 나타났고 거기에 제대로 된 이정표가 있었다.

 

 방향을 제대로 잡은 일행은 이제 마음놓고 하산할 수 있었다. 급경사를 줄이려고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어 모래를 깐 것 같아 너무 좋았으나 저번 태풍 때 비로 말미암아 많이 훼손된 곳이 있어 길이 자취를 잘 살펴야 하는 곳도 있다. 아름다운 상운암 계곡의 지류와 나란히 내려오다 제대로 된 계곡을 만났을 때, 나무 사이로 엄청난 계곡의 깊이와 험하고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만나게 되었다. 엄청난 바위 위에 분재처럼 자라는 오래된 소나무를 보며 감탄했다. 산이 대체적으로 높고 물이 깊어 왜 이곳을 영남 알프스라 했는지 이해가 간다.
      

 

* 석굴사 대광전과 석등

 

▲△▲ 상운암 계곡에서 석골사로

 

 다 온 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계곡은 계속 이어진다. 나무 사이로 나타나는 비경은 그 동안의 피곤함을 잊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상운암 계곡으로 내려오는 한 등산인을 만나 얘기를 들어본즉 우리가 온 코스가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경사가 제일 완만한 정 코스라고 했고, 대학생들이 내려온 코스는 빠르나 급경사의 난코스라 했다. 등산을 하다보면 내려올 때 잘못해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리같이 나이가 좀 든 경우 관절에 무리가 가거나 미끄러져 골절상을 입기 쉬운 때문이다. 

 

 석골사는 경남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운문산(雲門山)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신라 진흥왕 12) 비허(備虛)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혜공왕 9)에 법조(法照)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寶壤)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므로, 비허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 셋째날 들른 언양 자수정 동굴 앞으로 보이는 산 

 

▲△▲ 소중하고 아름다운 결말

 

 한 때 석굴사(石窟寺) 또는 노전사(老澱寺)라고도 불렀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영조 11) 함화(含花)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광전과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석조아미타삼존불과 절구, 석탑 재료 등이 전한다.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대광전에 있으며, 석탑 재료는 기단과 보주 등만 발굴되었다. 나는 사진을 많이 찍으려 했으나 안개 날씨에 자주 카메라를 열다보니 습기 때문에 낮부터는 안 열려 따뜻한 품에 품었다가 한두 컷 찍는 식으로 만족해야 했다. 

 

 1착으로 석골사에 도착해보니, 6시 정각. 9시 40분에 출발했으니 잠시 잠간의 휴식시간을 합쳐 꼬박 8시간 20분 동안 걸은 셈이다. 밖에 서서 조용히 석굴사를 들여다보고 눈을 돌리니, 석골폭포가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남겨둔 우리 일행인가 하여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았으나 다른 사람들이었고, 저 쪽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여 얼른 다가가자 모두들 나와 수고했다고 박수를 친다. 더욱이 잔여 회원들이 너무 즐겁고 뜻 있게 보냈다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일행이 무난히 하산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중하고 아름다운 결말을 이루었다.

 

 

* 비오는 중에 들른 통도사 

 

▲△▲ 그 동안 잘 따라 준 회원들에 감사 

 

 셋째 날인 7월 17일(월)에는 기운이 소진된 회원도 있고, 비도 많이 와서 산행을 답사로 돌리기로 의견을 모으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언양 자수정 동굴과 영취산에 있는 통도사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부산 광안대교를 돌아 옛날을 추억하며 자갈치 시장에 가서 곰장어를 구워먹은 뒤 입맛대로 고래고기와 상어수염, 멍게 등을 사먹었다. 조금 일찍 오려고 공항에 갔으나 다른 비행기가 결항되는 바람에 갑자기 자리가 찼다고 하여 여기서 회식을 하고 가자고 을숙도가 내려다 뵈는 가덕도 횟집 2층에 앉아 갯장어회와 매운탕에 소주를 곁들여 저녁까지 먹고 7시 55분에 김해공항을 출발하여 모두들 멋진 추억을 간직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8시 45분에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그간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회원과 가족 여러분, 그리고 동행했던 현지 출신 남상열 사장, 대성 렌트카 이정헌 기사 등 현지에서 활동했던 분들과 고향에서 염려해주신 회원 여러분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어려울 때마다 항상 우리가 흘린 땀을 생각하자."는 말로 끝을 맺는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끝)

 

 

* 공항에서 나와 저녁 식사를 했던 식당에서 보이는 을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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