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오름회 영남알프스 등산기
* 터널 옆으로 난 길에서 처음 만난 계곡
▲△▲ 가지산 가는 길
2006년 7월 16일 일요일 아침 흐림.
아침에 먹은 표충사의 산채비빔밥이 유난히 맛이 있었다는 곽 사장의 말이 아니라도 오래된 숙소 이불에서 나는 냄새를 피해 빨리 떠나기로 했다. 다만 오늘 일정이 가지산과 운문산을 종주하는 긴 코스이기 때문에 힘이 부치는 회원들이 하나둘 빠지겠다는 의사를 전해와 그럼 어차피 빌린 차가 있으니, 그냥 대기하기보다는 호박소와 얼음골을 비롯한 몇 군데 관광지를 돌게 했더니, 다섯 분이 남고 정예 회원 아홉이서만 산행하게 되었다.
오늘은 종주를 하는 만큼 최단 코스를 택하자고 해서 얼음골을 통과하는 23번 도로로 가서 석남 터널에서 오르기로 하고, 김밥 등 점심 요깃거리와 물 3병씩 사서 각자 채긴 뒤 표충사에서 나와 석남사 터널을 향했다. 얼음골을 지나고 구불구불 산 옆구리 길을 도는데 안 사장이 이곳에 이렇게 좋은 산수(山水)가 있는 것을 몰랐다고 몇 번이고 감탄을 한다. 손칼국수를 판다는 가건물 식당이 유난히 많다면서 터널에 도착하니, 버스에서 배낭을 진 몇 분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 곳곳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준 말나리
차를 세워 물었더니 일행은 오른쪽 능선을 탄다면서 가지산을 가려면 터널 입구 왼쪽 주차장으로 들어가라 했다. 석남터널 입구 왼쪽에는 승용차 몇 대를 세울 만한 주차장이 마련돼 있었다. 일행을 보내고 앞장서 천천히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니 그냥 전진하는 길과 오른쪽으로 오르는 길이 나있어, 오늘은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회원들의 힘을 비축하면서 천천히 걷자는 다짐을 하면서 10여 분 정도 올랐더니 능선이 나타났다.
도립공원이어서 그런지 어제보다는 등산길이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 일행 중 누가 첫날 이곳으로 왔으면 누구든 다 적응했으리라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뒷일을 감안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그 쪽을 택한 것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 가지산만 네 시간 정도로 부족할 것 같지 않은가? 다시 얼마 안가 이정표가 나타난다. 795m 고지라 써있는 표지판엔 서북쪽 능선을 계속 타고 가면 간이매점이 나타난다고 되어있고, 오른쪽으로는 석남사로 간다고 되어있다.
* 가지산 개념도 : 지도 출처 - 부산일보(http://www.busanilbo.com/)
▲△▲ 도립공원으로 된 가지산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및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경계를 이루며 3도에 걸쳐있는 가지산은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1,240m이다. 태백산맥의 끝자락에 딸려 있어 주위의 운문산(1,190m), 천황산(1,189m), 고헌산(l,033m) 등과 더불어 태백산맥의 남쪽 끝 산악지대를 형성한다. 위의 산 외에 신불산(1,209m), 간월산(1,083m), 영취산(일명 취서산 : 1,059m)과 함께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며, 이들 가운데 가장 높다.
밀양강의 지류인 산내천(山內川)과 무적천(舞笛川)의 발원지이며, 남쪽의 천황산 사이 산내천 하곡부(河谷部)의 산내면 시례(詩禮)에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이 있다. 정상 부근에는 바위 능선이 많고 나무가 거의 없는 대신 사방이 탁 트여 가을이면 곳곳이 억새밭으로 장관을 이룬다. 높이 약 40m의 쌀바위가 유명하며 동쪽 상북면 계곡에는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자 비구니 도량인 석남사(石南寺)가 있다.
* 곳곳에 피어 있던 싸리꽃
석남사에는 절의 창건자인 도의국사(道義國師) 사리탑인 석남사부도(보물 369)와 석남사삼층석탑 등의 문화재가 있다. 인근의 영취산, 천성산(812m) 등과 함께 1979년 11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가지산 도립공원의 면적은 106㎢이며, 태백산맥의 여맥(餘脈)에 솟은 산들의 자연경관과 그들 산지에 있는 통도사(通度寺), 내원사(內院寺), 석남사(石南寺) 등의 문화재경관으로 구성되며, 통도사지구, 내원사지구, 석남사지구로 나뉘어 각각 독립된 지구를 이룬다.
산중에서는 송이버섯과 복분자 딸기가 많이 나서 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며, 천황산 북쪽 기슭에는 요지군(窯址群:사적 129)이 있는데, 일본 미시마 도자기[三島燒]의 원조가 되는 도요지일 것이라는 설로 인해서 근래 일본인 관광객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가지산은 주변의 수많은 봉우리 중에서 최고봉이다. 주변의 귀바위(1,117m), 무명봉인 1042m봉, 1028m봉, 1060m봉 등이 가지산을 빙 둘러 대장처럼 호위하고 있다.
* 몇 군데 피어 있던 물레나물
▲△▲ 안개 속 들꽃을 벗삼아
서북쪽으로 능선을 따라 나아가다 적당한 곳에 쉬기로 하고 바위 위에 오르니, 전망대로 안성맞춤인 듯 사방으로 트였으나 안개에 가려 갑갑하기만 하다. 전 구간을 모자 없이 오를 정도로 햇볕이 없고, 장마 중임에도 비도 안 오고, 여름임에도 그렇게 덥지도 않고…. 딱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앞에 말한 사방을 조망할 수 없다는 점인데, 지리산은 통제가 되고 중부지방엔 물난리로 야단법석 중인데 이 정도면 그만이지 100% 완전한 것을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채근하며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사실이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정도의 호조건 - 굴곡이 있고 비탈지기는 하나 이런 평탄하고 덥지 않은 길을 가는 거면 정말 축복 받은 삶이라고 '룰루랄라'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지만 자연 앞에서는 경건해야 한다고 입조심을 시키며 천천히 오르는데, 이번엔 사방에 숨어 있던 꽃들이 얼굴을 내밀어 우리를 반기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조망(眺望)이랑 생각하지 말고 대신 안개 속에 물기를 머금고 더욱 진한 색으로 유혹하는 꽃을 보며 길을 걷기로 했다.
* 미역줄나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말나리였다. 갓 피어난 꽃빛이 수줍은 색시의 볼처럼 진한 색으로 다가오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어떤 곳에서는 군락(群落)을 이루어 산을 수놓아 여덟 시간 20분의 대장정에 가지산과 운문산의 상징은 이 말나리라 해도 좋을 만큼 우리를 즐겁고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간혹 원추리도 보였지만 가끔씩 나타날 뿐 말나리처럼 많지 않았다. 갑자기 바위가 떡 버티는가 했더니, 올라보니 조그만 간이매점이 있었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토요일인데도 문을 열지 않았다.
그곳에서부터 한참 동안은 서쪽 990m 이정표를 향해 평탄한 능선을 걸었다. 조금 철이 지난 듯한 가치수염이 가끔씩 흩어져 있고, 진분홍 싸리 꽃과 묘한 빛을 띤 미역줄나무 꽃이 반긴다. 또, 바위 봉우리마다 기린초와 바위채송화의 노란 꽃도 물기를 머금고 더욱 짙다. 얼마 안 걸어 도착한 990m 고지 이정표에는 우리가 출발한 석남터널에서 계곡을 따라 오다가 남쪽 능선으로 올라온 등산로와 마주치는 곳이었다.
* 물기를 머금고 부풀어있는 꿩의다리
▲△▲ 중봉을 거쳐 가지산 정상으로
조금 쉬었다가 다시 서쪽으로 계속 중봉(中峰)을 향해 걸어간다. 능선에 오를 때부터 하나둘씩 눈에 띄던 꿩의다리가 곳곳에 물기를 가득 머금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머리를 조아린다. 간혹 물레나물 꽃도 피어 노란색을 자랑하고 있다. 어깨까지 올라오는 무성한 풀이 옷을 적시는 풀밭길과 나무 우거진 숲길, 사방이 확 트인 풀밭 길을 번갈아 걸으면서도 내려다보는 경치, 아니 10∼20m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 차라리 주의가 산만하지 않아 좋다.
이름을 잊어버리고 자꾸 물었을 때 거듭해 대답하면서 웃음이 나오는 노루오줌 꽃도 물기를 머금은 건 마찬가지여서 곧바로 서지 못하고 60세 중늙은이의 오줌발처럼 휘어졌다. 드디어 1165m의 중봉에 다다라 멋진 바위 위에 앉아 입가심을 했다. 황토흙에 구운 달걀에 오지 못한 회원이 건네준 송순주를 한 모금 들이켰더니 온 몸에 '싸아' 하게 솔향기가 퍼진다. 땀을 빼고 온 몸에 활력이 돌기 때문에 더 그러는 것 같다.
* 중간에 만난 안개 속의 봉우리
이정표는 밀양시 산내면 산양리에서 올라온 등산로와 마주친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끔 마주치는 바위마다 기린초와 바위채송화 외에 늦게 양지꽃 군락이 있다. 더 앉아 있고 싶어도 자리가 좁아 새로 올라오는 등산객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일어선다. 이제 말의 안장을 얹는 곳처럼 아래로 조금 오목하게 들어간 안부(鞍部)를 통해 정상까지만 가면 되는 것이다. 비는 오지 않고 안개보다 더 짙은 는개가 퍼진 능선 길을 신나게 걸어 내려간다. 가끔씩 청설모 다람쥐가 쪼르르 달아나다 말고 주춤하게 앉아 우리를 빼꼼히 쳐다본다.
속도가 빨라져서 몇 분 안가 1110m고지 표지판이 붙어있는 안부에 다다랐다. 이곳은 남쪽 용수골에서 올라온 등산로와 만나는 곳이다. 그냥 지나쳐 길섶에 피어 반기는 들꽃들의 환영을 받으며 가다보니, 오르막 바위가 막아선다. 이곳이 이 부근에서는 가장 높은 가지산 정상인 것이다. 바위를 지그재그로 타고 오르며 클라이막스를 즐긴다. 드디어 정상! 우리편이나 다른 편이나 모두 성공해서 감격의 만세를 부를 수 있는 곳이다. 번갈아 사진을 찍으며 감격의 순간을 즐기고 나서 점심을 펼쳤다. 가지산도 식후경이다. 맥주와 참외가 유난히 맛있었다. (계속)
* 정상 표지석과 기와 이정표
▲△▲ 가지산 - 최상고
가지산 가는 길을
참 가파라져 있다
오색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억새능선은 누워서
한숨 쉬어가라 손짓한다
아아 눈감으며
이런 아름다운 날들에
내가 살아 숨쉴 수 있다는 것도
옛날에는 감사할 줄 몰랐다
오오 내 고향 같은 가지산아!
* 가지산 곳곳에 피어 있던 원추리
▲△▲ 초록, 초록의 찬바람 숲 - 정영자
초록, 초록의 찬바람 숲
밀양 얼음골
차가운 돌바위 아래
태고적 겨울을 살았었네
산 틈 사이로 하늘의 물이 내리고
다이아몬드 햇볕 쏟아지는
나무아래
허준이 걸어간 돌밭길을
내 아버님 돌아오신 협곡의 길을
오르고 내리었네
돌아오는 영남 알프스
가지산 길 위에서
잠만 자는 일생으로
돌아오고 있었네
* 가지산 정상 바위 틈에 피어난 바위채송화
♬ 청산은 나를 보고 - 김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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