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제주에서 보는 『한국, 7천년의 미술』

김창집 2001. 9. 23. 17:14
 국립제주박물관 개관 특별전을 보고

` 오늘 또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무래도 그 많은 유물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지난 일요일 탐라문화보존회에서 기획한 행사에서는 아무래도 시간에 쫓겨 제대로 볼 수 없었기에.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구좌중앙초등학교 학생들이 관람을 끝내고 저들끼리 진지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나온다. 병아리유치원생들이 재잘거리며 서 있다. 저들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 전시장은 글자 그대로 보물 창고였다. 국보 한 점 없는 부끄러운 이 섬 제주에서 수십 점이 넘는 국보와 보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음은 행운이다. 이런 잔치는 국립제주박물관의 어려운 탄생을 축하하는 전시회여서 가능했지, 앞으로 이곳에서 이렇게 많은 보물을 한꺼번에 접할 기회는 다시없을 것이다.
` 국보와 보물뿐이랴? 이번 전시회는 한국 미술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특징들을 7천년의 흐름 속에서 살핀 것으로, 주제나 시대별로 뚜렷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유물들이 망라되어 있어, 교과서에 나오는 유물들을 거의 다 만날 수 있다. 이번 특별전은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하여 실시되었던 미국과 유럽 순회전을 거친 엄선된 유물들로 우리 한국 문화의 정수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이번 특별전의 매력은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비교 감상할 수 있게 해놓은 점이다. 가령, 청동기시대의 제의유물로 알려져 있는 방울(鈴)만 해도 그렇다. 강원 지방에서 출토되어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대뚜껍방울과 조합식쌍두령, 전남 화순군에서 출토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동쌍령구 2점, 그리고 국립광주박물관의 팔수형동령을 모아 한 판에 걸어놓으니, 청동방울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비교하며 볼 수 있다.

` 들어서면서 좌우에 전시돼 있는 것은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 선·원사시대 각종 토기(土器) 무리이다. 다음 칸은 석기와 청동기 유물들로 이루어진다. 미끈한 돌도끼, 돌칼, 돌화살촉, 모든 형태의 것이 다 모였다. 청동 유물도 여러 가지다. 방울 옆에 자리한 구리거울, 농경문청동기, 각종 동검들….
` 한 걸음 더 가면, 삼국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찬란한 유물들. 먼저 오리 모양 토기가 인사를 하면 신라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 그 중에서 천마도와 금관. 이에 뒤질세라 국립공주박물관이 자랑하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나온 금관장식과 왕비 귀걸이, 다리작명 은팔찌, 이 모두 국보들이다. 이렇게 기와와 전돌칸, 불교 유물칸, 청자칸, 백자칸, 분청사기칸, 그리고 단원 김홍도의 화첩을 비롯한 그림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천마총 발굴 상황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 더욱이 국보와 보물 25점이 보물과 다름없는 다른 유물들과 섞여 전시해 놓아 서로 비교하면서 감상할 수 있어 이해가 더 빠르다. 학생들은 입장료도 안 받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단체 관람 시켜 줄 것을 권해 본다. 가치관이 혼미한 이 시대, 아이들에게 이 보물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것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가르쳐줘야 할 필요가 있다. 책에서만 봐온 유물을 실제로 만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야 한다.

` 결실의 계절 가을,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특별전이 끝나는 9월말까지 사라봉 기슭에 자리한 국립제주박물관에 몇 번 더 가보려 한다. 요즘 항공료가 비싸져 전국에 흩어져 있는 박물관을 돌아보기가 쉽지 않다. 가서 시원하게 생긴 자기(瓷器) 청자상감매죽문매병이나 백자상감연당초문대접을 볼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 <제주일보 2001. 9. 21.자>

■ 사진 위는 보물제527호 단원 김홍도 풍속화첩 중 '무동도'이고, 아래는 국보 제60호 '청자사자뉴개향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