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틀 동안 벌초를 다녀왔다. 첫날은 고조할아버님 이하의 집안 벌초였고, 어제는 입도(入道) 할아버님부터 그 아랫대에 속하는 할아버님 할머님 산소였다. 다른 집안도 대부분이 그런 절차를 거친다. 뭍에서는 추석에 산소에 가서 벌초도 하고 차례도 지내지마는 제주에서는 흩어져 있는 묘소의 벌초를 음력 8월 초하루에 하고 추석날 집에서 차례를 지낸다. 그래 좀 섭섭한 생각이 들어 벌초가 끝나고 나면 저렇게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절을 한다.
▲ 처음 도입할 때는 어른들께서 예초기로 어떻게 조상의 묘를 깎느냐, 조상신이 시끄러워 노하신다는 등 꾸지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보편화가 돼 버렸다. 어제는 전부 10대가 동원되었으나 8개만 가지고 풀을 베었고, 차량 2대를 가동하여 가족 묘지의 풀을 안에서 나를 정도였다. 아들 하나 낳으면 그만 두는 요즘, 세계는 좁아지고 벌초할 곳은 점차 늘어 날 텐데 걱정이다. 그래 버튼만 누르면 저가 알아서 착착 해주는 로봇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
△ 억새가 하루가 다르게 모양을 갖추고 하늘은 높아져 버렸다. 하기야 엊그제가 벌써 추분이었는데 더 말해 무엇하랴? 이제 저 억새가 더 하얗게 익게 되면 황량한 바람에 가을은 점점 짙어지겠지. '당신이 떠나실 때 가슴을 덮었던 저녁 하늘/ 당신이 떠나신 뒤 내 가슴에 쌓이는 흙 한 삽/ 떠나신 마음들은 이런 저녁 모두 어디에 깃듭니까/ 떠도는 넋처럼 가으내 자늑자늑 흔들리는 억새풀.'이라고 노래했던 도종환 시인의 눈에 비친 억새풀과 어떻게 다른지.
▲ 조 이삭에 농부가 흘린 땀이 덕지덕지 걸려 있다. 보리밭 그루터기를 갈아엎고 그 포기가 썩기 시작할 무렵 다시 갈아 씨를 뿌린 다음 목장에 간 소떼나 말떼를 내려다가 빙빙 돌며 노래를 불렀지. "어려려려 얼하랑 어허 돌돌돌돌-" 그게 끝나고 손 부리에 집힐 만큼 자라면 솎기부터 시작하여 벗어진 곳에 묘 심기, 몇 번 김을 매고 강아지풀 뽑을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게다가 이제는 새를 쫓는 일까지. 그래 지금은 조밭을 쉽게 찾을 수조차 없게 돼버렸다.
△ "호박이 넝쿨째 굴러 떨어졌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이름인가? 일년에 호박 30통은 늘 먹어왔는데 금년엔 비싸고 호박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별로 못 먹었다는 삼촌의 말을 들으며 이걸 찍었다. 예전엔 초가집 지붕 위나 울타리, 또는 낟가리 위에서 자주 보았는데, 이제는 초가집도 사라지고 울타리도 시멘트 콘크리트로 바뀌어 이렇게 밭 구석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돼버렸으니….
▲ 아직 익지 않은 이 꽈리가 익는 것을 대하기는 늦은 가을 목화밭이나 고구마 밭 또는 조를 베고 나서 그 그루터기 사이에서다. 만져 보면 통통히 자란 것이 좀 말랑말랑해지거나 아니면 껍질 자체가 누렇게 익어서 마르는 증세를 보이는 것은 십중팔구 익은 것이다. 깨물었을 때 톡하게 터진 사이로 입안에 퍼지는 고소함이 다시 그들을 찾게 되는 이유이다.
△ 풀을 베는 도중 겁에 질린 저 도마뱀 녀석이 비석에 대피해서 눈을 데록데록 굴리는 모습이라니…. 어렸을 때는 저게 커서 날아다닌다는 말로 사람을 겁주더니만 월남에 가서 1년 동안 무던히 많은 도마뱀과 마주했었다. 첫날 화장실에 갔을 때 켜놓은 백열등 주위에 까맣게 몰려 날아드는 모기와 나방을 노리더니만 막사라고 잠자는 방 천정에 빛을 못 받아 허연 도마뱀이 항상 별자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 난 저 녀석이 도망가다 말고 돌아서 '날 잡아 봐라.' 하는 듯이 버티는 걸 보면서 항상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고사성어를 떠올린다.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는 말로, 자기 분수를 모르고 상대가 되지 않는 사람이나 사물과 대적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외 여러 문헌에 나오는데, 곤충 세계에서 무적(無敵)이라고 감히 수레바퀴를 막다니…. 허나 요즘 세상에는 이런 사마귀 같은 부류의 사람이 꽤 있다.
△ 이 개똥참외는 참외와 교배되어 보통 것의 대여섯 배는 족히 될 것 같다. 어렵던 시절에는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이걸 따먹으러 밭을 누비다가 곡식을 망친다고 주인에게 욕깨나 얻어먹었지. 고구마 밭 같은 곳에서 샛노랗게 익은 놈을 따서 옷섶에 쑥쑥 문지르고 나서 입안에서 툭하고 터질 때의 고소함이란…. 익을 때까지 참지 못해 따먹었다가 한 입 베어먹고 너무 써서 나 둥글기도 했다.
♬ 통기타 Live Cafe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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