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답사에서 썩은다리라는 오름에 올랐다 내려와
차가 있는 화순해수욕장으로 들어서다가
아직도 싱싱한 채로 꼿꼿이 서 있는 갈대를 만났다.
해군기지가 되느냐 마느냐
주민들과 군당국이 밀고 당김을 아는지 모르는지
앞으로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 채
저렇게 이삭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을 때쯤이면
저 녀석들도 그 자랑스럽던 푸른 잎이 퇴색된 채로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을 맡길 것이다.
♧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갈대 - 소재호
막막한 하늘에도 이제는
손이 닿습니다.
손 저으면 어디서나 사운대는
풀피리 소리.
기다린다는 것은
그리워한다는 것은
몸을 정갈하게 가꾸는 일
가슴속에 한 생애 뭉클뭉클
무엇인들 키우면
달이 뜨고.
♧ 갈대 - 정호승
내가 아직도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내 발밑에서 물결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도 아무도 살지 않는 강변에 사는 것은
실패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가장 강한 자가 이긴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라는
죽은 새들의 정다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온종일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의 삶이 진정 괴로운 것은
분노를 삭일 수 없다는 일이었나니
내가 아직도 바람 부는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날아간 하늘에 햇살이 빛나기 때문이다
♧ 갈대 - 김명석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그렇게
부서져버린 가슴을 보듬으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그렇게
바람이 불어오면 서걱거리다가
저녁이 오면 손가락 하나 둘 분지르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그렇게
봄 여름 갈 겨울 계절 맞춰 숨죽이며 숨죽이며
울어야 하는 운명의 나이기에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그렇게
♬ 내가 부를 너의 이름 -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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