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조이삭과 양전형의 가을시

김창집 2006. 11. 3. 02:06

 

 

♧ 조 이삭은 이제 전설 속에 묻히려는가

 

 옛날 제주의 가을은 온통 조 이삭으로 가득 했다. 토지에 빌레(암반)가 많고 화산회토여서 척박함이 극에 달했지만 웬만한 가뭄이라도 견뎌 그런 대로 이삭을 잘 패는 조야말로 제주 땅에 가장 알맞은 작물이 아니었을까? 논(畓)이라야 특수한 지역에 조그맣게 자리를 잡을 정도였던 섬에 해변이든 중산간이든 가리지 않고 심었던 조(粟)는 보리 다음으로 우리 몸을 지탱해주었던 식량이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으면 벼이삭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곳이어서 조를 보고 더 확실하게 그 뜻을 실감했을 정도였으니까…. 소의 등에 한 바리 싣고 출렁출렁 짊어지고 오는 농부의 모습에서 수확의 기쁨을 공감할 수 있었고, 그 이삭을 따서 연자방아에서 찧을 때 다시 한 번 그 즐거움을 반추할 수 있었다.

 

 조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버릴 것 하나 없이 골고루 나누어준다. 짚과 알맹이를 털고 난 강메기는 소가 차지했고, 졸래(덜 여문 알맹이)는 돼지와 닭의 먹이로, 그리고 알맹이는 우리 사람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차조든 아니든 맨 조밥은 과히 신통치 않고, 제주도 곡식 생산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보리와 3 : 7 정도는 섞어야 밥맛이 있다. 그렇지 않음 아예 고구마를 많이 넣든가.  

 

 

 조를 많이 생산하다 보니 좁쌀은 성질이 비슷한 쌀이 하는 역할을 했다. 떡은 대표적으로 침떡(좁쌀가루로 쪄낸 시루떡)을 쪄 먹었고, 찰지기 때문에 오메기 떡을 해먹거나 술을 담갔다. 요즘 중산간에 조금 재배하는 것은 대부분 술을 담그기 위한 것이다. 지금 좁쌀 청주를 출시 중인 곳이 두 군데 있으며 그것을 증류해서 소주를 만들어 시판하고 있다.
 
 올해 벌초를 다니면서는 몇 군데서 조밭을 볼 수 있어 사진도 이렇게 찍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회담을 가졌지만, 어쩔 수 없이 개방을 해야 할 형편이라면 경쟁에 이기는 농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블로그 '향토문화기행' 작년 9월 5일자로 가 보면 조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실어 놓았다. 불현 듯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조밥을 좋아하시는 경상도 출신 김창기 선생님이 오늘 따라 보고 싶다.     

 

 오늘은 평소 애송하는 양전형 시인의 가을 시편을 골랐다. 시인께서는 1953년에 제주시 오라동에서 출생해 서울예신대 문예창작과 졸업하고, 제3회 열린문학상, 제12회 한국자유시인상을 수상했다. 지금 제주감귤농협에 재직 중인데, 시집으로 '사랑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아 사랑밭 가자', '하늘레기', '길에 사는 민들레', '나는 둘이다' 등이 있다. 


 

 

♧ 가을 이야기 - 첫 번째
  
가진 것 탈탈 다 털어 내는
은행나무

 

버려진 것들은 바람 몫이다
바람이 비틀비틀 굴리며 간다

 

맞다 맞다
가을은
떨어져 내려와서 구르며 가는 것


 

 

♧ 가을 이야기 - 두번째
  
가을은
혼자서 왔다가 혼자 가는 것

 

포르르 떨며
내 안에 단풍들 내려 쌓인다
홀로 내게 들어와
낙엽을 바삭바삭 밟고 있는 누구여,

 

이제는
바람을 휘휘 감아 넣겠으니
어깨를 움츠리고 옷깃을 세우시라


 

 

 

♧ 가을 이야기 - 세 번째  

 

아니다 아니다
가을은
오는 게 아니라 가기만 하는 것
우리가 그냥 흘러만 가듯

 

한낮
방구석에 들앉아
또르르 또르르
가을이 잰걸음으로 흘러가는 소리인 줄 모르고
가을이 왔다고만 박박 우기는
저 귀뚜라미

 

 

 

♧ 가을, 내리막길에서 

 

허름한 가을 스산한 내리막길
버스 한 대 휙 지나가자 가로수 아래 초라하게 모
여 있던 낙엽들이 줄지어 좇아간다
버스 멈추고
이파리들도 멈추어 애처롭게 쳐다보는데
아줌마들이 한 줄로 내리더니 힐금거리며 모두 그
냥 지나친다
아, 다 모르는 사이들이었구나
나도 지금 어미를 찾고 있는데

 

 

 

♬ 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 / Nana Mousko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