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꽃, 열매 공존하는 참식나무

김창집 2006. 11. 2. 00:00

 

 

20년 전 옛 학교에서 이곳 새 학교로 이사 오면서 이 참식나무를 옮겼다.
당시 부도가 난 학교 형편상 이 넓은 곳에 나무 하나라도 더 채우려고
옮긴 지 얼마 안 되는 녀석들을 뽑아다 학교 건물 북쪽으로 쭉 심었는데
가을 가뭄이 심해 나뭇잎이 마르기 시작했다.

 

어떻든지 이걸 그냥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수업이 없는 시간을 모두 바쳐 손에 물집이 터질 정도로 강 전정(剪定)을 했다.
그래 다음 해 봄에 싹이 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3층 건물의 높이와 같게 자라 저렇게 정열적인 빨간 열매를 매달았다.

 

저 녀석이 저렇게 클 줄 누가 알았으랴?
바라볼 때마다 정말 대견스럽다.
지금 꽃과 함께 매달려 있는 저 열매는 겨우내 새들의 먹이가 되어
그가 옮겨주는 대로 배속에서 나와 그 자리에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 참식나무(Neolitsea sericea)는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미나리아재비목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울릉도와 남부지방의 따뜻한 곳에서 자라며 키는 10m에 달한다. 피침형 또는 긴타원형의 잎은 가죽질로 어긋나는데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잎자루는 짧다. 어린잎은 밑으로 처지고 황갈색 털이 밀생하지만 점차 없어진다.

 

 황백색의 꽃은 10∼11월경 산형(傘形)꽃차례에 밀착해 핀다. 열매는 이듬해 붉고 둥글게 익는다. 비슷한 종(種)인 제주도의 새덕이는 어린잎에 털이 없고 열매가 흑자색으로 참식나무와 다르다. 관상용이나 방풍림으로 적당하다. 전남 영광군 불갑면의 참식나무 자생북한지대는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상태 글) 

 

  

 

♣ 눈부신 열매 - 박종영

 

초가을 얇은 밤
돌아누운 베갯머리 위에
휘휘한 별빛을 묻는다

 

깊어 가는 밤으로
달빛 굴리는
저, 풀숲 속의 벌레소리

 

여름이 문을 닫고
가을이 오는 소리
파란 미소로 열리는 하늘가에
노란 웃음을 달고 출렁이는
나무, 나무들

 

꼭 이맘때만
저토록 눈부신 열매를
허공에 다는가 보다


 

 

♣ 열매 - 양인숙

 

 흙은 사철 헐벗었다. 자신의 전부를 걸었기 때문, 열매를 위하여. 전부를 건다는 건 자존심마저 버리는 것이므로 가끔씩 어지러웠다. 나무가 남겨놓은 마지막 행간이 가슴에 걸렸다. 빈털터리 가을의 유서. 아름다운 침묵이 노을 속에 깔린다. 오백 생의 인연으로 눈 먼 거북 등에 가까스로 올라온 장작개비. 세상에서 가장 눈부셨던 나무의 노래, 그토록 뜨거웠던 기억을 간직한 채 서슬 푸르게 피워내던 잎사귀. 한 나무가 밀어 올린 허공의 무게만큼 그토록 오랜 짓무름을 이겨낸 가슴팍에 속살 깊이 박힌 여름의 고뇌를, 나무가 피워 올린 살의 떨림에 온 귀를 열어 볼 수 있을까. 흙은 조금씩 견고한 고독의 나이테를 허물었다. 제 살을 헤집으며 혈흔으로 얼룩진 옹이. 속앓이는 단단해지고 버림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묵상의 깊은 멍울. 한 열매를 위한 소신공양의 노을 앞에서 흙은 수만 번의 발길질을 견딘다. 열매는 흙의 전생이었다.

 

 

 

♣ 나무가 열매에게 - 한승수

 

가을 해 깊어가고
이제 너희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
내 팔에 주렁주렁 매달려서
떠나지 않겠다고 보채는 눈망울이 슬프구나.
하지만 떠나거라.
너희들을 다 내려놓고 포근한 눈에 덮이어
긴 겨울잠을 자고 싶다.

 

어쩌면 나는 올 한 해도
너희들과 이별하기 위해서 살아 왔는지 모른다.
꽃샘추위 찬바람에 심한 몸살을 앓으며
온몸에 돋는 열꽃으로 너희들을 피워 내고
땅의 맑은 물만 빨아 올려서
따가운 여름 햇살에 너희들을 달게 살찌웠지.
너희들의 무게가 늘어가는 만큼
나의 보람도 커져 갔단다.

 

너희들 기억하니.
지난 여름 폭풍우 몰아칠 때
너희들 하나라도 잘못될까 봐
꼭꼭 끌어안고 내 그렇게 안타까워하던 것을.
이제 너희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너희 가슴 속 간직한 씨앗이
다시 열매 맺는 나무로 태어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익었기 때문이란다.
잘 가거라. 사랑하는 열매들아.

 

 

 

♣ 열매를 꿈꾸며 - 조연호

 

 나는 순을 밀어 올리며 껍질 밖으로 나왔다. 땅 위에 하늘의 끝자리를 조금씩 올려놓으며 안개가 내려올 때 다발 꽃을 손에 쥔 아이가 허전한 꿈가를 뛰놀고 있었다. 아무도 그곳에 와서 기웃거리지 않았으므로 그 아이의 걸음, 한 줌의 사랑에도 묶이지 않았다. 안개는 강과 함께 흘러가고 들풀의 잠결로 깔깔한 삶이 두런거렸다. 그리움을 뒷전에 두고 나는 망울을 터뜨리며 봉오리 밖으로 나왔다. 몇 장의 꽃잎이 내 빈 손에 넓은 잎의 속죄를 쥐어주고 있었다.

 

 

 

♬ 감미로운 클래식 곡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