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남해 금산 답사기 (2)

김창집 2004. 7. 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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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

 

♣ 정겨움이 묻어나는 농촌의 들녘

 

 7월 17일 제헌절. 연휴를 이용해 답사를 떠난 오름 나그네들은 아침 일찍 당항포를 나섰다. 이번에 이용하는 차량은 우리가 묵었던 썬 프라자 사장님이 직접 운행하는 35인승 버스라 차비 부담이 크긴 해도 한 의자에 한 사람씩 차지하여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알맞게 비가 내린 후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농촌의 들녘은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그림으로만 보던 우리 시골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참나리와 원추리는 길가에 심어 퍼진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제자리에서 얼굴을 내밀고 한창 꽃을 피어 섬 나그네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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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불구불 오르는 금산 길

 

1007번 국도를 따라 남해 고속도로로 향해 가다가, "이 마을에 용이 나겠다."고 우스개를 하며 개천을 지나 영오를 거쳐 문산 교차로를 통해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연휴라 하지만 길은 아직 한가하였고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태극기 단 곳도 드물다.

 

 진주, 사천, 가산, 곤양을 거쳐 진교 터널을 지나 진교 교차로에서 1002번 국도로 나왔다. 얼마 안 가 남해대교가 눈앞에 다가온다. 슈퍼 앞에 차를 세워 마실 물과 해장용 막걸리를 사는데, 누가 더 욕심을 부려 수박을 한 통 사는 바람에 힘쓸 일이 생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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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다가 만난 작은 계곡

 

♣ 남해도는 섬이 아니라 반도(半島)처럼 느껴

 

 남해섬으로 들어서서 달리는데도 섬이란 관념으로만 남아 있지 육지와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인다. 1제주, 2거제, 3진도, 4남해….'하고 섬의 큰 차례로 외며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다리로 육지와 연결된 거제도나 진도, 완도, 강화도, 그리고 이곳 남해섬이 섬이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남해섬은 우리 나라 섬 가운데 가장 산이 많아, 하천은 짧고 평야가 협소하다. 소백산맥 줄기가 남해안까지 뻗어져서 이루어진 남해도의 지층은 경상계가 약 80%를 차지하고, 주로 쥐라기 말기에서 백악기 말에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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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암 입구에서 만난 노각나무꽃

 

 그러기에 이 섬에는 망운산(786m), 금산(701m), 송등산(617m), 창선도에는 대방산(468m) 등 험준한 산들이 솟아 대부분이 산지(山地)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 산지에서 15개의 하천이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육지와 다른 점이 별로 없다.

 

 상주, 송정이란 이정표를 따라 가다가 두 섬이 이어진 것 같은 좁은 목을 지난 곳에서 보리암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산의 옆구리를 돌아 2.6km 들어간 곳, 복곡 제1주차장 매표소에서 차를 세웠다. 이곳에서 3.3km 떨어진 북곡 제2주차장까지는 대형 버스는 갈 수 없고 승용차나 승합차만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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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

 

▲ 산과 수박과 싸우며 오르다

 

 우리 오름 모임에서는 작년에 이 금산을 오를 계획을 세웠는데,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출발 직전에 무산되었다. 제주에서의 산행 실력을 확인하고 범위를 넓히고자 마련한 원정 계획은 욕심을 내지 않고 좀 낮지만 아기자기한 산을 골라 이루어져 왔다. 이를테면, 월출산, 조계산, 천관산 들이다.

 

 이번 금산 등정 계획을 세우면서 먼저 생각한 것 역시 산을 오르는 것이지 구경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을 버스를 타고 보리암 옆까지 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상주 해수욕장 쪽 매표소에서 2시간 30분 정도 소요해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로 오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구경하면서 마을 버스를 타고 하산하여 나머지 시간을 남해섬을 돌며 보내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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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까치수영

 

 그러나, 날씨가 별로 고르지 못해 정상에서의 조망이 힘들 것 같아서 계획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거꾸로 복곡 주차장으로 올라 정상에서 대충 시간을 보내고 상주해수욕장으로 내려 오후 시간에는 다음 날 계획인 화개장터와 쌍계사 등을 보는 걸로 바꿨다. 마을 버스를 타고 오르지 않는 이유는 그래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자존심과 올랐을 때의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다.

 

 차를 상주해수욕장 매표소로 보내고 금산 등정이 시작되었다. 매끈하지 않은 시멘트 포장은 그런 대로 걸을 만 했으나 마구 차가 오가는 걸 피하면서 심기가 불편해진다. 이왕 사놓은 차가운 수박을 차에 그냥 놔두고 가기도 뭐하고, 산에서 먹는 수박 맛을 경험한 터라 지고 가자는 고집을 피운 것이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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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의 수박 파티를 앞 두고

 

▲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정상  

 

 처음에 산봉우리를 볼 때 끝에 구름이 걸려 있어 설마 했더니 갈수록 안개가 짙어진다. 수박을 진 걸음이 더뎌질 무렵 혼자 애쓰는 것이 안쓰러웠던지 한 회원이 배낭을 빼앗아 지고 가다가 총무에게 넘긴다. 온통 젖어버린 내의를 추스리고 나서 안개가 슬슬 발 밑으로 배어들기 시작할 때 총무를 보니, 형편이 아니다.

 

 2.1km 지점. 도무지 그냥 둬서는 안되겠다 싶기에 나누어 배에 담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길섶에 주저앉아 기념 사진을 찍고 수박의 배를 갈랐다. 산에서 먹는 수박 맛을 어디에다 비기랴. 13명이 먹을 정도로 큰 시원한 수박은 이후 많은 시간을 버티는데 큰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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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복곡 주차장의 안내판

 

 그 뒤로 복곡 2주차장까지의 걸음은 너무도 가뿐하였다. 제주와 별로 다르지 않은 식생이었지만 새로 보는 꽃과 나무를 찍으며 걸어 안개 자욱한 2주차장에 이르렀다. 거기에 마련된 안내판을 보면서, 먼저 정상에 오른 다음 단군성전을 거쳐 장군바위, 보리암, 이성계 기도처를 들르고 쌍홍문을 거쳐 하산할 계획을 세웠다.

 

 전망도 없는데 굳이 정상에 갈 이유가 있겠느냐는 어느 회원의 자조 섞인 물음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회원들을 격려하며 안개 속을 앞장서 걸었다. 문장암을 거쳐 바로 앞의 망대에 올랐을 때는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안개가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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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에 싸인 최고봉 문장암

 

 ♬ 박신양  '사랑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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