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남해 금산 답사기 (3)

김창집 2004. 7. 2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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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 제1경 망대에 쌓은 화덕

 

▲ 마음의 눈으로 보는 금산

 

 금산(錦山)은 38경을 자랑하는 산이다. 동양의 하와이라는 우리 제주도도 영주10경, 조금 욕심부리는 사람은 12경 정도로 그치는데, 38경을 찾아내 이름 붙인 사람의 눈물겨운 노력이 가상하기만 하다. 그만큼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경치라는 뜻이겠지만. 누군가는 '아름다운 바다와 산이 같이 있으면 밝고 맑음(明澄)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보리암에 며칠 묵기만 해도 마음의 눈(心眼)이 열린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남해를 건너 푸른 숲을 거쳐온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교장 선생님의 말처럼 진짜로 비단 구름을 두르고 있는 산을 제대로 보는데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 제1경 망대는 봉수대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정방형으로 높이 쌓은 돌은 고려 때 것으로 추정되는데, 가운데 곱게 쌓은 것은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오래된 것을 보면 그저 가운데가 불룩하게 나오게 조금 쌓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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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암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몇 년 전에 여기 왔을 때도 바로 이 자리에서 후드득 쏟아지는 소나기와 비구름으로 사방을 조망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는데, 오늘은 그런 어리석음은 다시 거듭하고 싶지 않아 건네주는 시원한 얼음물로 머리를 맑게 한 뒤 바로 앞 안개 속의 제2경 문장암을 바라본다.  조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운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쓴 글씨 위를 열심히 쪼아댔을 석수의 정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렵사리 귀가 트였으므로 막걸리를 잔을 기울이며 안개로 이어진 나머지 경치를 천천히 더듬어 나간다. 3경 대장암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4경 형리암이며, 관음보살 입상이 세워진 5경 탑대, 비둘기 모양의 6경 천구암까지 상상하고 나서, 7경 태조기단은 직접 가서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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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 속에 신비로운 단군성전

 

▲ 단군성전에서 보리암까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일단 망대에서 나온 뒤 문장암 바위틈으로 들어가 주세붕 선생의 글씨를 확인한다. '由虹門上錦山(유홍문상금산)', 즉 "홍문이 있어 금산에 오른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홍문이 경치가 빼어나다는 걸 표현한 글이라 생각하며 북서쪽에 자리한 단군성전으로 내려갔다. 경내에 조그만 5층석탑이 하나 있고 울긋불긋 꽃을 심어 놓았는데, 우리 고유의 꽃은 좋았지만 근래에 들어온 국적 불명의 꽃이 있어 눈에 거슬린다.

 

 단군의 영정이 봉안된 성전으로 올라가 문안 드리고 내려오다가 이번엔 동상을 모신 곳으로 올라갔다. 주변에 초롱꽃을 많이 심어놓았는데 거의 시들어있어 아쉬웠다. 일련의 학생들이 올라와 사진을 찍는데, 보살 같은 아줌마가 와서 막는다. 뜻 있는 학생이라면 단군을 섬기는 종교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사교(邪敎)처럼 대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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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암을 떠받치는 바위

 

 휴일을 맞아 보리암에는 많은 신도들이 모여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옛절 보리암은 동해의 낙산 홍련암, 서해의 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음성지 중 한 곳으로 친다. 그 정도의 힘이었기에 800m 앞까지 주차장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명산에 자리잡은 절들은 탐승객까지 합세하여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불가에서는 관세음보살은 바닷가에 상주한다고 믿는데, 그러다 보니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는 바닷가 쪽에 관음성지가 몰려있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관음성지는 그 지리적 특성 탓에 저절로 일출이나 일몰 명소가 되어 사람이 몰리게 돼 있다. 합장하여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나서 마당을 돌아 약수를 한 그릇 마시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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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암의 범종

 

▲ 이성계가 백일 기도를 드린 곳 '태조기단'

 

 보리암 마당 옆으로 '태조기단'이란 조그만 표지판이 있어 인원을 확인하면서 앞장서 들어  갔다. 가는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은 몇 년 전에 왔을 때보다는 조금 정돈이 되었고, 여기저기 계단을 만들어 놓긴 했으나 워낙 산세가 험준한 곳이 되어서 오르고 내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태조 이성계가 천운의 뜻을 품고 백두산으로 들어갔으나 산신(山神)이 받아주지 않았고, 두 번째로 들어간 지리산 산신에게도 거절당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온 곳이 이곳 금산,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기도처이다. 당시로서는 길을 찾기도 어려웠고 누가 드나들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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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계가 기도를 드렸던 태조기단

 

굴처럼 바위 밑이 열려 비교적 좁은 틈에 백일 동안 기도한 곳이 있었다. 왕위에 오른 뒤 옆자리에 비각을 세우고 그를 기념하여 집을 짓고 유품을 넣어두었다는 특이한 모양의 집에는 교자상 하나가 접혀 세워져 있을 따름이다.

 

 원래 이 산의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이성계가 산신에게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면 이 산을 비단(錦)으로 두르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의미에서 왕명으로 산 이름에 비단을 둘렀다. 그래서 금산이 된 것이다. 이름은 짓고 보면 그럴듯하다는데 정말 비단을 두른 듯 아름다운 산에 맞는 이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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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홍문 바위 위로 뚫린 곳


▲ 쌍홍문을 통해 하산 길에

  

 이 산에 온 이상 쌍홍문은 안 볼 수 없다고 거기로 내려가기로 했다. 자연히 상주해수욕장 쪽에 있는 매표소를 통해 오가려면 거쳐야 하는 곳이다. 커다란 바위에 굴처럼 두 군데 구멍이 뚫려 있고, 커다란 아치형의 문같이 터진 곳이 나란히 있는데 이것이 쌍홍문이고, 그 한 쪽 문을 통해 오가도록 되어 있다.

 

 문을 곧 내려선 곳에 장군 바위가 있어 문화유산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고 있다. 그 등뒤 바위에는 굵은 송악이 아래서부터 바위 끝까지 얽혀 있다. 보통 널리 퍼진 것은 많아도 이렇게 오래 되고 높은 것은 보지 못한 터라 저번부터 눈 여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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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홍문의 한 쪽

 

전에도 한여름에 들러 오늘과 꼭 같은 코스를 돌았는데, 내려갈 때 사정없이 비가 쏟아져 엄청나게 맞은 기억이 있다. 비닐 우의로 버티며 신발을 적시고 가는데 등산로 자체가 냇물이고 폭포였다. 중간쯤 갔을 때 여기저기서 커다란 두꺼비가 튀어나와 어지럽히더니 오늘은 한 마리가 보인다.

 

 내려와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산 정상에 구름이 점차 벗겨지는 것을 볼 수 있었으나 정상은 여전히 구름에 싸여 있다. 다음에는 여름에 말고 가을이나 겨울에 한 번 더 오리라 다짐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피곤했는지 아니면 배가 고픈지 모두들 축 쳐져 잠 속으로 스멀스멀 빠져들었다.


* 나머지 일정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을 다녀온 후 적당한 기회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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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왔을 때 조금씩 벗겨지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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