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보미오름과 백약이오름[2001. 12. 9.]
오늘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월드컵 경기장인 서귀포 경기장 개장(開場),
기념 경기로 미국과 한국의 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날.
같은 조에 편성돼 있어 미리 16강 진출을 가늠해볼 수 있다고
온 섬이 들떠 들썩이는 가운데, 우리 10사람의 오름 나그네들은
점심 전에 오름 둘을 오르는 여유를 부렸네.
제주시에서 동부산업도로(97번)를 따라 대천동 사거리까지 20.6km
성읍 쪽으로 4.4km를 더 간 후 성읍2리로 들어가는 길로 좌회전하여 들어가
마을을 지나고 그 옛날 장영자가 거두었던 '넓은 목장' 정문으로 들어가 계속 진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양쪽 삼나무가 도열한 길을 신나게 달리다 보면,
왼쪽 백약이오름과 오른쪽 좌보미오름으로 갈리는 길에 다다른다.
▲ 계절을 잊고 계속 꽃을 피워대고 있는 좌보미오름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산 6번지 일대
봉우리 4개에 수많은 구릉들을 데리고 있는 좌보미오름에서는
누렇게 퇴색해버린 풀과 탁 트인 전망으로 하여
원시 본연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네.
옷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벌거벗은 채 가로누워
불룩한 가슴과 오목한 골짜기를 가끔씩은 부끄러워하며
우리의 애무를 거침없이 받아들였네.
남녘 주변 목장엔 금승·다간* 송아지들이 모여
그들의 어머니 암소들의 보호 아래 여유를 즐기고
철조망으로 들어가 서쪽 봉우리에 있는 방화 초소에 가서 신고를 하려고
걸어가는데, 이건 겨울이 아니라 봄·여름·가을이 공존(共存)하고 있었다.
사실 '좌보미'라는 이름은 '한좌보미'에서 왔다고
오름 이름 연구로 박사 학위 받은 오창명 회원의 주장대로
'미'는 '산(山)'이니까 '한좌보'의 뜻을 밝혀야 한다지만
남아 있는 꽃을 보면서, 퍼뜩 '봄'하고 연관된 것이 아닌지 하는 예감이.
이곳에 명당(明堂) 자리가 있는 걸 증명이나 하듯이
번듯하게 무덤을 꾸미고 석물(石物)도 제대로 세운 강씨(康氏) 묘소엔
음력 팔월 초하룻날 벌초 후에야 솟아 피어난 꽃들…….
물매화로부터 자주쓴풀, 쑥부쟁이, 섬잔대, 미역취까지 오롯이.
오름 오르는 길엔 토끼풀도 아직 흰 꽃을 피워대고
이건 참 봄에 피는 노란 양지꽃이 저무는 하늘에 별처럼
가끔씩 풀잎 속에서 튀어나오고
섬잔대와 산도라지가 서로 사랑하여 낳아놓았을 법한 잔대꽃이 한창.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봄이 화신(化身)이 이곳에 머물러
시들어야 할 엉겅퀴가 새 꽃대를 밀어 봉오리를 만들며 피어나고
정상에 이르렀을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지역 300고지 이상이면 정상에 퍼져 있는 철쭉이 맹렬히 꽃을 피워대고 있었다.
우리는 때아닌 봄기운을 받고자 둘레에 모여 앉아
소풍 나온 아이들 마냥 도시락을 펼친다.
유부초밥이며 누드초밥이 등장하는가 하면 배추가 튀어나오고
아직도 따뜻한 채로 있는 삶은 계란 노른자가 병아리가 되어 삐약거릴 듯이.
해발 341m급의 봉우리들 오르내리길 반복하며
오름 오르며 처음으로 만났던 도라지를 찾아 정신 없이 헤매다
이제 막 솟아오른 것 같은 화산탄과 화산석을 만지며
한 3년은 젊어져 화산의 잔열(殘熱)을 간직하고 내려 왔다네.
*주 : 금승·다간 - 제주말로 소나 말의 1살과 2살을 말함.
▲백 가지 약초가 자란다는 백약이오름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산 1번지. 표선면의 꼭지점.
표고 334.7m, 앉은키 130m, 둘레 2,069m, 면적 338,028㎡, 밑지름 654m
좌보미오름 건너편 서쪽으로 듬직하게 앉아있으면서도
멀리서 보면 가운데 삼각 봉우리를 부리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듯한.
듬직한 자세로 앉아 사방의 오름을 거느린다.
동북쪽으로 동거미, 아래로 문석이, 그 뒤로 위용을 자랑하는 높은오름,
서북쪽에는 영화 '이재수란' 촬영 세트를 차렸던 아부오름, 서쪽에 민오름, 비치미,
남서쪽에 망을 보듯이 꼭대기에 개가 앉아 있는 개오름…….
소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소걸음 걷듯 묵묵히 걸어 올라가면
원형 경기장을 닮은 움푹 패인 굼부리가 눈앞에 나타난다.
산정부의 동남쪽에 열세살 소녀의 팽팽한 젖무덤 같은 조그만 봉우리 하나
서사면은 우묵지면서 송당리로, 동사면은 아래쪽으로 긴 언덕을 이루며 뻗어나간다.
오름 동·남쪽 기슭에는 삼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놓아 숲이 형성되고,
나머지 풀밭 사이사이 가시덤불을 이루며 소가 먹다 남은 약초가 숨어 자란다.
제주와 이북에서만 자란다는 피뿌리풀이 가끔씩 얼굴을 내밀고,
복분자, 층층이꽃, 꽃향유, 쑥, 익모초, 꿀풀, 쇠무릎, 초피나무, 인동덩굴이…
예부터 약초가 많이 자란다고 백약이오름이라 했는데
우마(牛馬)를 방목하면서부터 그들의 발굽에 밟히고 먹히어 하나둘 사라지고
분화구 속으로 철쭉, 청미래덩굴, 찔레나무, 덤불 속에나 숨었을까?
처음 올랐을 때 그렇게 많던 도라지까지 꽃 필 때나 간간이 눈에 띈다
언젠가 한번은 어떻게 약초가 100가지가 넘는가 생각하면서
눈 비비며 하나둘 찾아 메모하다가, 도저히 20여 가지를 못 넘겨 혼자 절망하였다.
집에 가서 이것저것 찾아본 뒤에야 알았다. 모든 풀이 다 약초가 된다는 것을….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맞는 자리를 찾으면 다 한몫 하는 것을….
그러나, 백약이오름의 멋은 그 통통한 정상 삼각점에 앉아 오름을 감상하는 데 있다.
저 멀리 한라산 정상으로부터 제주시·남원읍·표선면·성산읍·구좌읍·조천읍까지
수백을 헤아리는 오름의 자리를 찾아 그 얼굴을 확인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그 오름에 얽힌 사연을 더듬어 안부를 묻는 것이다.
<사진> 위는 잔대꽃이고, 아래는 백약이오름의 모습입니다.
~


오늘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월드컵 경기장인 서귀포 경기장 개장(開場),
기념 경기로 미국과 한국의 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날.
같은 조에 편성돼 있어 미리 16강 진출을 가늠해볼 수 있다고
온 섬이 들떠 들썩이는 가운데, 우리 10사람의 오름 나그네들은
점심 전에 오름 둘을 오르는 여유를 부렸네.
제주시에서 동부산업도로(97번)를 따라 대천동 사거리까지 20.6km
성읍 쪽으로 4.4km를 더 간 후 성읍2리로 들어가는 길로 좌회전하여 들어가
마을을 지나고 그 옛날 장영자가 거두었던 '넓은 목장' 정문으로 들어가 계속 진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양쪽 삼나무가 도열한 길을 신나게 달리다 보면,
왼쪽 백약이오름과 오른쪽 좌보미오름으로 갈리는 길에 다다른다.
▲ 계절을 잊고 계속 꽃을 피워대고 있는 좌보미오름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산 6번지 일대
봉우리 4개에 수많은 구릉들을 데리고 있는 좌보미오름에서는
누렇게 퇴색해버린 풀과 탁 트인 전망으로 하여
원시 본연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네.
옷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벌거벗은 채 가로누워
불룩한 가슴과 오목한 골짜기를 가끔씩은 부끄러워하며
우리의 애무를 거침없이 받아들였네.
남녘 주변 목장엔 금승·다간* 송아지들이 모여
그들의 어머니 암소들의 보호 아래 여유를 즐기고
철조망으로 들어가 서쪽 봉우리에 있는 방화 초소에 가서 신고를 하려고
걸어가는데, 이건 겨울이 아니라 봄·여름·가을이 공존(共存)하고 있었다.
사실 '좌보미'라는 이름은 '한좌보미'에서 왔다고
오름 이름 연구로 박사 학위 받은 오창명 회원의 주장대로
'미'는 '산(山)'이니까 '한좌보'의 뜻을 밝혀야 한다지만
남아 있는 꽃을 보면서, 퍼뜩 '봄'하고 연관된 것이 아닌지 하는 예감이.
이곳에 명당(明堂) 자리가 있는 걸 증명이나 하듯이
번듯하게 무덤을 꾸미고 석물(石物)도 제대로 세운 강씨(康氏) 묘소엔
음력 팔월 초하룻날 벌초 후에야 솟아 피어난 꽃들…….
물매화로부터 자주쓴풀, 쑥부쟁이, 섬잔대, 미역취까지 오롯이.
오름 오르는 길엔 토끼풀도 아직 흰 꽃을 피워대고
이건 참 봄에 피는 노란 양지꽃이 저무는 하늘에 별처럼
가끔씩 풀잎 속에서 튀어나오고
섬잔대와 산도라지가 서로 사랑하여 낳아놓았을 법한 잔대꽃이 한창.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봄이 화신(化身)이 이곳에 머물러
시들어야 할 엉겅퀴가 새 꽃대를 밀어 봉오리를 만들며 피어나고
정상에 이르렀을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지역 300고지 이상이면 정상에 퍼져 있는 철쭉이 맹렬히 꽃을 피워대고 있었다.
우리는 때아닌 봄기운을 받고자 둘레에 모여 앉아
소풍 나온 아이들 마냥 도시락을 펼친다.
유부초밥이며 누드초밥이 등장하는가 하면 배추가 튀어나오고
아직도 따뜻한 채로 있는 삶은 계란 노른자가 병아리가 되어 삐약거릴 듯이.
해발 341m급의 봉우리들 오르내리길 반복하며
오름 오르며 처음으로 만났던 도라지를 찾아 정신 없이 헤매다
이제 막 솟아오른 것 같은 화산탄과 화산석을 만지며
한 3년은 젊어져 화산의 잔열(殘熱)을 간직하고 내려 왔다네.
*주 : 금승·다간 - 제주말로 소나 말의 1살과 2살을 말함.
▲백 가지 약초가 자란다는 백약이오름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산 1번지. 표선면의 꼭지점.
표고 334.7m, 앉은키 130m, 둘레 2,069m, 면적 338,028㎡, 밑지름 654m
좌보미오름 건너편 서쪽으로 듬직하게 앉아있으면서도
멀리서 보면 가운데 삼각 봉우리를 부리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듯한.
듬직한 자세로 앉아 사방의 오름을 거느린다.
동북쪽으로 동거미, 아래로 문석이, 그 뒤로 위용을 자랑하는 높은오름,
서북쪽에는 영화 '이재수란' 촬영 세트를 차렸던 아부오름, 서쪽에 민오름, 비치미,
남서쪽에 망을 보듯이 꼭대기에 개가 앉아 있는 개오름…….
소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소걸음 걷듯 묵묵히 걸어 올라가면
원형 경기장을 닮은 움푹 패인 굼부리가 눈앞에 나타난다.
산정부의 동남쪽에 열세살 소녀의 팽팽한 젖무덤 같은 조그만 봉우리 하나
서사면은 우묵지면서 송당리로, 동사면은 아래쪽으로 긴 언덕을 이루며 뻗어나간다.
오름 동·남쪽 기슭에는 삼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놓아 숲이 형성되고,
나머지 풀밭 사이사이 가시덤불을 이루며 소가 먹다 남은 약초가 숨어 자란다.
제주와 이북에서만 자란다는 피뿌리풀이 가끔씩 얼굴을 내밀고,
복분자, 층층이꽃, 꽃향유, 쑥, 익모초, 꿀풀, 쇠무릎, 초피나무, 인동덩굴이…
예부터 약초가 많이 자란다고 백약이오름이라 했는데
우마(牛馬)를 방목하면서부터 그들의 발굽에 밟히고 먹히어 하나둘 사라지고
분화구 속으로 철쭉, 청미래덩굴, 찔레나무, 덤불 속에나 숨었을까?
처음 올랐을 때 그렇게 많던 도라지까지 꽃 필 때나 간간이 눈에 띈다
언젠가 한번은 어떻게 약초가 100가지가 넘는가 생각하면서
눈 비비며 하나둘 찾아 메모하다가, 도저히 20여 가지를 못 넘겨 혼자 절망하였다.
집에 가서 이것저것 찾아본 뒤에야 알았다. 모든 풀이 다 약초가 된다는 것을….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맞는 자리를 찾으면 다 한몫 하는 것을….
그러나, 백약이오름의 멋은 그 통통한 정상 삼각점에 앉아 오름을 감상하는 데 있다.
저 멀리 한라산 정상으로부터 제주시·남원읍·표선면·성산읍·구좌읍·조천읍까지
수백을 헤아리는 오름의 자리를 찾아 그 얼굴을 확인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그 오름에 얽힌 사연을 더듬어 안부를 묻는 것이다.
<사진> 위는 잔대꽃이고, 아래는 백약이오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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