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호류지

김창집 2007. 7. 1. 00:56

--탐문회 일본 칸사이지역 답사기(6)

 

 

   * 중문인 사이인가람의 정문. 화재로 불탄 것을 670년에 재건. 금강역사상은 711년에 만든 것. 

 

♣ 2007년 2월 22일 목요일


 일본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틀째 되는 날이다. 2월이어서 그렇게 늦게 자고도 수면도 충분한 느낌이다. 우리가 묵은 난바 오리엔탈 호텔은 시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교통이 참 편한 곳이다. 아침을 먹고 오늘 답사 지역인 나라현으로 가려고 천천히 골목을 나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건물 앞에 후줄근한 의복 차림으로 자리를 깔고 앉은 남녀를 보면서, 그냥 일터에서 데리러올 사람을 기다리는 인력시장의 일꾼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파친코장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문 열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이라 한다. 이쯤 되고 보면 일본의 파친코가 주변에 많이 있고 어느덧 생활화(?)가 돼있는 걸로 보인다. 누구한테 들은 얘기지만 제 자신만 알고 돈이 좀 있다고 껄떡대는 친구에게는 파친코나 경마를 배워줘 버릇을 고치게 한다는 얘기가 무색해진다. 하긴 전에 왔을 때 보니까 시장 가운데도 파친코장이 있어 반찬 사러 나온 주부들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잠시 들르는 것을 본적이 있다.  

   

 

* 우리가 묵었던 호텔 옆. 아침부터 파친코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 나라현으로 가는 길


 우리가 오늘 가게 되는 나라현(奈良縣, Nara)은 일본 혼슈[本州] 기이반도[紀伊半島] 중앙부에 있는 현으로 현청소재지 역시 나라[奈良]이다. 현의 중앙부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요시노강[吉野川]에 의해 두 지역으로 나뉘는데, 북부는 나라 분지와 주변의 산지와 구릉지로 된 지역으로 야마토강[大和川]이 분지의 소하천을 합쳐 서류(西流)한다.


 남부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오미네[大峯], 다이코[臺高], 오바코[伯母子]의 3산맥이 남북으로 뻗고 산맥 사이를 구마노강[熊野川]의 지류인 타야마강[北山川]․도쓰강[十津川]이 깊은 협곡을 이루면서 남으로 흐른다. 기후는 남북차와 지역차가 큰데, 나라 분지는 강수량이 적고 한서의 차가 크며, 동부의 구릉지는 냉량 습윤하다. 남부 산지는 비가 많은 고산성 기후를 보인다.

 

 

*  크진 않지만 단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 남대문.

 

♣ 우리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


 이곳 나라[奈良] 문화의 번성은 우리 민족의 공헌에 힘입은 바가 크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우리 민족은 빈번히 이곳을 왕래하거나 정착하면서, 선진민족으로서 그들에게 한자, 유학, 불교, 미술 등 문화를 전수하고, 또 생활용품 제조기술, 관개용저수지 축조기술 등을 가르쳐서 그들의 문화개발에 공헌을 했다. 일본 역사에서 나라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기에 그 상대 국가와 가장 유대가 깊었던 것은 백제로, 오늘날에도 그곳에 구다라[百濟], 와니[王仁] 등 지명 및 구다라사지[百濟寺址] 등 유적이 남아 있다.


 또 1972년 발굴된 타카마쓰총고분[高松塚古墳] 석실 안에서는 백제의 영향을 받은 인물, 복장, 동물 등의 벽화가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현의 경제 기반이 되는 산업은 농업과 관광업이다. 나라 분지는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높은 쌀 생산지, 야마토[大和] 수박의 특산지로 알려져 왔으나, 오늘날 재배작물이 채소, 딸기, 화훼 및 차․과일 등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공업은 야마토코리야마시[大和郡山市]의 약전기기(弱電機器) 공업 외에 목재공업과 메리야스, 양말 등 섬유공업이 성하다.

 

 

*  담징의 '사불정토도'가 그려져 있던 금당.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 세계문화 유산인 호류지(法隆寺)

 

 우리 나라식 한자 발음으로 법륭사(法隆寺)인 호류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7세기후반에 한번 소실되고, 8세기에 재건되었으며, 현존하는 금당과 오중탑등은 세계 최고의 목조건물로 유명하다. 일본 불교 예술의 보고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절은 도인[東院]과 사이인[西院]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3만㎡의 부지에 약 20여개의 건물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소토쿠태자가 아스카로부터 국정을 주관하였던 이카루가 마을은 7세기에 태자의 부친 요메천황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쇼토큐태자와 스이코천황이 창건한 절이다. 경내에는 서원과 동원으로 분리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인 금당(金堂)과 오층탑 등의 가람은 서원(西院) 있고, 우아한 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팔각원당의 몽전은 동원(東院)에 위치하고 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불상과 화상 등이 안치된 대보장전이 있고 건축불과 불상 등의 국보 및 중요 문화재를 합하면 1,870점을 보유하고 있다.

 

 

* 중문입구를 옆에서 본 것. 오래된 소나무가 인상적이었다.

 

♣ 담징의 금당벽화는 내부공사 때 소실


 금당벽화는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린 것으로 또한 유명한데, 1949년 내부공사 때 화재로 불타버린 원본을 대신해 복사본이 있다. 담징의 대표적인 아미타정토도 역시 불에 탄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금당내부 천당의 비천도는 화마에 겨우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쇼토쿠 태자가 명상을 하고 경전에 전념했던 곳인 유메노도와 호류지의 오랜 역사와 보물들이 수장된 다이호조덴이 있다.


 금당의 본존 석가삼존상, 대보장전의 백제 관음상 등의 불상들이 있으며, 1993년 12월에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정식 명칭은 ‘호류지의 불교기념물군(Horyu-ji : 세계문화유산, 1993)’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호류지에는 아스카 시대, 가마쿠라 시대(1192~1333년 무인이 집권하던 시기), 무로마치 시대(14~16세기에 일본에서 아시카가 막부가 집권한 시대)의 다양한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다.

 

 

* 중문 안에 있는 석등. 회랑으로 둘러진 사이인감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 불교를 활성화시킨 쇼토쿠 태자


 호류지는 요메이(用明) 천황이 병이 들자 불력(佛力)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짓기 시작한 절인데, 불사(佛事) 도중 천황이 죽자 그의 아들인 쇼토쿠 태자가 이어받아 완성했다. 쇼토쿠 태자는 592년에 천황이 된 스이코(推古)를 대신해서 섭정(攝政)을 시작하는데, 당시 일본 조정에서는 호족(豪族) 간의 권력 다툼이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쇼토쿠 태자는 가장 세력이 강한 소가씨(蘇我) 호족과 손을 잡고 다른 호족들을 물리친다.


 그리고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을 강화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가 만든 17조의 헌법에 ‘깊이 삼보(三寶)를 받들라.’라는 조항까지 넣을 정도로 힘을 기울여 호류지 이외에도 많은 절을 세웠다. 무려 40개가 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이렇게 쇼토쿠 태자는 불교를 활성화하고 그로써 정치를 안정시키며,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었고, 지금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남대문 안 왼쪽에 있었던 성덕종 종무소와 법륭사 운영 사무소.

 

♣ 남대문, 아스카 건축양식의 진수 중문과 회랑 


 두 번째로 보게 된 호류지는 벌써 소나무가 늘어선 남문 앞의 정경부터 눈에 익었다. 차에서 내려 조심조심 남대문으로 들어선다. 쇼토쿠종[聖德宗] 총본산인 호류지는 우리나라의 일주문이나 인왕문, 또는 금강문 같은 구조도 아니고 절의 규모로 볼 때 오히려 초라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문 안에는 왼쪽으로 종무원과 관리사가 늘어서고, 조금 들어서자 눈앞에 중문과 그 너머 웅장한 오층탑이 눈길을 끈다.   


 그 쪽으로 다가가 중문으로 들어서니 문에서 이어지는 회랑이 금당과 오층탑을 두르고 대강당으로 이어진다. 남대문은 무로마치시대인 14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절의 현관 역할을 하는 문이며 1438년(永亨 10년)에 재건된 건물이며, 중문은 아스카 시대인 6세기 중기에서 8세기 초에 이룩된 아스카 건축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고 한다. 그 안의 금강역사(金剛力士) 역시 8세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 중문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회랑으로 가람을 둘렀다.

 

♣ 어두컴컴한 금당(金堂)


 회랑 안에 탑과 금당이 나란하게 서 있고, 안쪽 정면으로 대강당과, 서쪽에 경당, 그리고 동쪽에 종각이 세워져 있는데, 이러한 가람배치를 ‘호류지식’이라고 한다. 금당 역시 아스카시대의 건물로 쇼토쿠(聖德) 태자를 위해 건조된 금동석가삼존상(아스카시대), 태자의 아버지인 요메이(用明) 천황을 위해 건조된 금동약사여래좌상(아스카시대), 어머니인 아나호베노 하시히토 왕후를 위해 만들어진 금동아미타여래좌상(가마쿠라시대)이 모셔져 있으며, 이를 수호하듯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장목(樟木)으로 만들어진 사천왕상이 서 있다.


 조명이 돼있지 않아 어두컴컴한 채로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외에도 목조 길상천(吉祥天) 입상, 비사문천(毘沙門天) 입상(헤이안시대)이 더 안치되어 있다. 천정에는 서역문화의 영향이 짙은 천인(天人)과 봉황새가 비상하는 그림, 그리고 벽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담징의 그린 금당벽화가 1949년에 소실돼버린 대신 그를 복원한 그림이 패널에 그려져 있다. 떳떳치 못한 사실 때문인지 불을 켜놓지 않아 복원해놓은 그림도 잘 볼 수 없었다.

 

 

   * 기단을 빼고도 31.5m의 5층탑. 사람의 키와 비교하면 가히 그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 아직도 위풍당당한 오층탑


 오랜 세월을 흘렀음에도 5층탑은 여전히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어느 절이건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들지만 이 탑에 그 안치 여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역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5층탑으로 아스카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화강암으로 동서남북에 계단이 있는 기단을 쌓아놓고 그 위로 31.5m의 높이의 탑을 쌓아 올렸다.


 이 탑 최하층의 내진(內陣) 속에는 나라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소상(塑像)들이 다수 안치되어 있으며, 동쪽 면에는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문답하는 장면, 북쪽면은 석존의 입적(入寂) 장면, 서쪽면은 석존의 유골 분할 방면, 남쪽면에는 미륵보살의 설법 장면이 그려져 있다. 지붕은 모두 6개처럼 보이지만 아래에 있는 지붕은 상층 기단으로 본다. 지붕은 일정한 비례로 위로 줄어들지만 석탑처럼 심하지 않아 단아하며 웅장한 모습을 함께 지닌다.

 

 

* 회랑과 석등.

 

 

* 중문으로 이어진 회랑안의 모습.

 

♣  대강당과 경당(經堂), 그리고 종각


 대강당은 불교의 학문을 연구하거나 법회(法會)를 거행할 목적으로 헤이안시대에 건립되었으나 925년에 종각(鐘閣)과 함께 낙뢰(落雷)로 소실되어 990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때문에 여기 모신 본존인 약사삼존상과 사천왕상도 그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당(經堂)은 나라시대인 8세기에 지어져 경전을 보관하는 시설로 건립되었으나, 지금은 천문과 지리학을 일본으로 전했다는 백제학승 관륵증정상으로 전해지는 좌상을 안치하고 있다.


 종각(鐘閣)은 헤이안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이 종각에 걸려 있는 하쿠호(白鳳) 시대인 7세기 후기에서 8세기 초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도 변함없이 소리를 내고 있다. 대강당 뒤에 있는 가미노미노 불당은 가마쿠라시대에 재건된 것으로 나라시대 덴무(天武)천왕의 왕자인 도네리신노의 발원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안에는 석가모니 삼존불과 무로마치시대의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다.

 

 

  * 호류지의 것다양한 법요 행사가 열리는대강당.

 

 

* 사이인 가람을 빠져나와 다이호조인(대보장원)으로 가는 길의 우물.

 

 

  * 금당과 5층탑의 뒤편.

 

♣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쇼로인


 대강당에서 나와 종각 쪽으로 도는데 매화나무에 꽃이 피어 옛절의 정취를 더한다. 다시 다른 방향에서 카메라 가득 들어오는 금당과 5층탑을 찍고 나서, 치료를 하면서 버티고 있는 나이 많은 소나무를 뒤로 하고 회랑을 나와 동쪽으로 가다가 우물이 있는 정자와 못을 보고나서 걸어가는데 눈앞에 길쭉하게 서 있는 건물이 바로 쇼료인(聖靈院) 불당이다.


 가마쿠라시대인 12세기 후기에서 14세기 전기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승려들의 거처였기 때문에 승방(僧房)으로도 불린다. 특히 가마쿠라시대에 쇼토쿠 태자 신앙에 관심이 높아져 헤이안시대 말기에 쇼토쿠 태자의 존상을 안치하기 위하여 히가시무로(東室)의 남단부를 개조한 것이다. 지금 일본의 쇼토쿠 태자를 우러르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 백제관음상을 소중히 모시고 있는 백제관음당.

 

♣ 보물 창고인 대보장원


 쇼료인 불당 앞을 지나 동쪽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 곳에 대보장원(大寶藏院)이 있었다. 호류지의 중요 유물들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자 1998년에 낙성식을 가진 구다라(百濟)관음당을 중심으로 한 보물창고인데 국보급 문화재가 수없이 많다. 유메치가이 관음상(夢違觀音像), 스이코 천황소유의 불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다마무시노즈시(玉蟲廚子) 감실, 그리고 연꽃 위의 금동 아미타 삼존불을 본존으로 하고 있는 다치바나 부닌노즈시(橘夫人廚子) 감실.


 그리고 백만탑, 중국에서 전래된 백단(白檀)향으로 만들어진 구면(九面)관음상 및 촉강금(蜀江錦), 천인(天人)이 그려져 있는 금당 소벽화 등, 아스카시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국보급 문화재들은 1400년에 걸쳐 만들어진 호류지의 정수들이라 할 만하다. 안에 있는 구다라(百濟) 관음당은 구다라 관음상을 일본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상이다.

 

 

* 도인(동원) 가람 안에 있는 건물.

 

♣ 도인가람의 건축물들 


 대보장전을 나와 동대문을 지나 도인(東院)가람으로 발길을 돌렸다. 동대문은 나라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보기 드문 3동 형태로 되어 있다.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조용한 곳에 도착하니, 유메모도(夢殿) 불당을 둘러 사리전과 회전(回殿)이 있었다. 몽전(夢殿)이 동원 가람의 중심 건물인데, 601년에 건조된 이카루가노미아(斑鳩宮) 유적터에 교신소즈라는 고승이 쇼토쿠 태자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들이다.


 737년 조정의 신임이 두터웠던 고승 행신(行信)이 태자의 유품을 수집하였고 739년 상궁왕원(上宮王院: 현재의 몽전)을 세우면서 이 지역이 절로 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몽전 안의 중요한 볼거리는 쇼오토쿠 태자의 등신상으로 생각되는 목조 구세관음상이다. 몽전 뒤쪽으로는 전법당과 태자전이 있고, 다시 동쪽으로 가면 추쿠지(中宮寺)가 있다. 쇼오토쿠 태자의 어머니 간인왕후의 사저였던 곳을 절로 만들었다고 하며 6세기에 만든 목조 미륵보살상이 유명하다.

 

 

* 도인 가람의 중심이 되는 유메모도.

 

♣ 호류지(법륭사)를 나오면서


 10년 전에 왔을 때는 준비도 없었고, 안내자도 없었는데 이번에 가이드가 있어 소상하게 설명을 듣고 보니, 이곳에 이렇게 오래된 절이 있고 보존이 잘 된 것이 너무도 부럽다. 이 넓은 곳의 조경과 나무 하나 가꾼 것을 보면 일본 사람들의 문화재 애호가 어떠한가를 잘 말해준다. 그리고 이 절이 이루어질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와서 한 수 지도했을 터이고 보면 자랑스러운 면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담징의 금당벽화가 현대에 와서 그것도 태평양전쟁 이후에 소실되었다 하니, 아쉽기 짝이 없다. 그런 대로 복원해 부처님 상호 부분만 복사해 팔고 있는 그림 한 장을 소중하게 사서 가지고 간다. 10년 전에 사가지고 간 것은 어떻게 했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시 되돌아 동대문을 나오면서 오래된 나무가 새 순을 뽑아 올린 것을 보며 새로운 한일 관계를 생각했다.


 

* 나오는 도중 금당 못 미쳐에서 만났던 새로 순이 돋아난 녹나무.

 

♬ Nakashima Mika - 雪の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