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문회 일본 칸사이지역 답사기(8)
♧ 시텐노지(四天王寺)에서 골동품을 파는 행사
나라에서 오사카로 이동하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자 최초의 관사(官寺)인 시텐노지(四天王寺) 안에 이르렀을 때는 사회사업을 위해 정기적으로 벌이는 바자회가 끝나 막 집을 꾸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상상도 못할 장사가 절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아직 덜 치워진 곳에 가보니, 벼룩시장에서나 있음직한 골동품이라든가 옛 물건들이 많다. 그걸로 보면 이곳이 사회사업의 본산이라 할 만큼 알려진 곳이라는 게 실감났다.
오사카의 시텐노지(四天王寺)는 6세기말에서 7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사원건축으로 일본의 사회사업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시텐노지는 요메이 천황의 황태자인 쇼토쿠타이시가 6세기에 억불파(抑佛派)의 집정관인 모노노베노모리야를 멸하기 위해,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수호신인 시텐노를 기리고, 또한 승리한 것에 대해 감사하기 위하여 6세기 후반에 건축되었다.
시텐노지는 중문(中門), 탑(塔), 금당(金堂), 강당(講堂)이 남북으로 일직선에 늘어선 시텐노지식 가람 배치는, 그 당시의 중국대륙의 사찰 건축 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나라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의 호류지와과 함께, 6세기 말에서 7세기 전반에 세워진 아스카 시대의 사원건축을 대표하는 것으로 꼽힌다.
중국대륙과 한반도와의 교류의 무대가 되었던 시텐노지에는 고대 대륙에서 전해온 시텐노지 무악이 있으며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건립 당시부터 경내에는 가난하고 병든 이에게 약을 주거나 치료하고, 고독한 노인이나 아이들을 수용했던 세야쿠원을 비롯하여, 복지시설이 설치되어 서민들의 구제에 노력하여, 일본의 사회사업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중세에는 이 절의 서문에서 보이는 석양이 무척 아름다워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염원하는 많은 참배객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절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유희가오카(夕陽丘)라고 불리며 그 옛날의 나니와의 자연과 문화를 그려보는 산책 코스로 정비되어 있다. 예부터 선진 문화의 창구 역할을 한 오사카에서 시텐노지는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영빈관으로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파괴된 것을 1971년에 재건한 것이다.
♧ 위풍당당한 오중보탑(五重寶塔)
제법 넓은 경내에는 20여 채의 건물로 가득하다. 한가운데에는 이시부따이(石舞台)라는 무대가 연못에 둘러싸여 있다. 봄의 세이레이까이(聖靈會) 때 천년 전통을 자랑하는 부가꾸(舞樂)을 공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계단 아래쪽으로 가면 돌거북의 입에서 물이 솟아나오는 카메이도(龜井堂)이 있다. 이 물은 극락과 이어진 연못이라는 금당(金堂) 지하의 세이류이께(靑龍池)에서 솟는 것, 이 때문에 고인의 이름이 적힌 명패를 물에 씻으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
시텐노지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야하는 금당에는 구세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바로 앞의 오중보탑은 593년에 세웠다가 소실된 것을 1959년에 복원한 것이다. 높이는 39.2m로 꼭대기에서 오사카 시내가 거의 다 내려다보인다고 했다. 바로 앞의 인왕문(仁王門)에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인왕상(높이 5.3m, 무게 1톤)이 놓여 있다.
쇼토쿠태자는 불교를 나라의 통치이념으로 여기고 불교를 장려를 목적으로 이 절을 지였으나 그 당시의 일본의 기술자로써는 실력이 부족하여 백제의 기술자들을 데리고 와서 이 절을 완공하였다고 한다. 백제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또 한번 실감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독특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어서도 유명하지만 오사카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사랑 받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절로 공식적으로 인정된 시텐노지는 16세기 적에 대항해 성공적인 승리를 거두고 불교 도입을 이끈 초기 일본 역사의 위대한 문화적 영웅인 성덕태자(쇼토쿠 태자, 서기 574~622년)에 의해 건설되었다. 당시 소가씨와 모노노베씨 사이에 싸움이 있었는데, 성덕태자를 대표로 하는 소가씨(백제계의 도래인)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치면서 고도로 발전된 신착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이기를 원했지만, 모노노베씨(신라계의 도래인)는 고대의 일본종교를 지지하면서 이에 강력히 반대했다.
♧ 성덕태자의 불심으로 건립된 절
성덕태자는 스스로 4대 천왕상을 조각하고 기원을 드렸다. 그 싸움에서 승리한 성덕태자는 서기 593년 승리를 기리기 위해 시텐노지 절의 축조를 명하였다. 시텐노지는 무역과 교통의 중대한 역할을 하는 오사카항구와 가까운 곳에 지어 졌으며, 반복된 개조에도 불구하고, 경내의 가람 배치는 초기 때부터 변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시텐노지는 일본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절이며, 일본 불교인 화종의 총본산이다.
‘홍윤기의 역사 기행’에 보면, 지금의 오사카 시내 중심지인 그 옛날 구다라스(백제주) 한복판에 우뚝 선 시텐노지(四天王寺)는 오랜 세월을 행정 지명이 줄곧 구다라군(百濟郡)이었다고 한다. 1685년에 히가시나리군(東成郡)으로 바뀌었으며, 1889년 텐노지촌(天王寺村)으로 다시 바뀌었다. 현재 이 가람은 행정 지명 오사카시 텐노지구에 속한다.
시텐노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오중탑인데, 이 절은 백제시대 세 번째 왕도였던 부여땅 군수리 절터와 건축 양식이 똑같다. 즉 군수리 절터처럼 사찰의 중문과 오중탑 및 금당을 남북 일직선으로 하여 사방은 회랑으로 빙 두르고 있다. 이 시텐노지는 쇼토쿠태자(574∼622)가 발원하여 593년에 백제 건축가 유씨(柳氏)에 의해서 웅장하게 일어섰다.
명공 유씨에게는 쇼토쿠태자의 생부인 요메이왕(585∼587 재위)이 생존 당시 곤고(金剛·금강)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때문에 유씨 가문은 뒷날 오사카의 건축 전문회사인 ‘곤고구미(金剛組)’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사세가 기울어 올해 초에 회사문을 닫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12세의 독실한 불자였던 홍안 소년 마구간왕자(뒷날의 쇼토쿠태자). 이 소년은 불교에 목숨을 걸겠다고 하리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587년 7월 조정의 불교 반대파를 무찌르는 전쟁터에 몸소 참전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모노노베노 모리야 일당 배불 모반 세력을 무찌르기 위한 장정 길에 나선 나이 어린 마구간왕자는 참전 길에 숲을 지나가다가 붉나무를 잘라서 ‘사천왕상’을 만들어 높이 받들면서 무릎 꿇고 사천왕에게 맹세하기를 “만약에 이번 전쟁에서 제가 적과 싸워 승리하게 해주신다면 반드시 사천왕님들을 받드는 절과 탑을 세우겠나이다.”라고 다짐했다. 이때 총사령관인 소가노 우마코 대신도 “사천왕님들께서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주신다면 절과 탑을 세우고 삼보(불, 법, 승)를 널리 위하겠습니다”라고 역시 굳게 맹세했다.
♧ 시텐노지(四天王寺) 왓소(ワッソ) 마쯔리
시텐노지(四天王寺) 왓소(ワッソ)마쯔리는 고대 동아시아 나라들의 국제교류를 영웅 위인들의 모습을 통해 우아하게 재현한 것이다. '왓소(ワッソ)'라는 말은 한국어의 '왔다'라는 의미로, 일본에서 마쯔리를 할 때 가마를 메고 '왓쇼이(ワッショイ)'라고 힘찬 구령소리를 내는데, 이것이 한국어의 '왔소'가 어원이라고 한다.
행사는 11월 3일 문화의 날(文化の日)에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수천 명의 행렬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마쯔리는 신라 백제 고구려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각 시대의 인물로 분장한 수천 명이 다니마치거리에서부터 시텐노지까지 행진하는 것이다. 행진은 성덕태자에게 불교를 전해 준 고구려의 고승 혜자를 선두로, 가야의 우륵, 일본에 문자를 전해 준 백제의 왕인박사,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 등 각 시대의 위인들과 영웅들을 비롯하여 발해, 중국의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의 배세청, 조선시대의 세종대왕, 그리고 조선통신사의 인물들이 행진한다. 장대한 행렬은 성덕태자를 비롯한 일본을 대표하는 문부대신, 만요시인 카기노모토히토마로 등의 영접을 받으며 시텐노지에 도착하면 끝난다.
시텐노지 왓소마쯔리의 심볼은 길이가 12미터에 이르는 일본 최대의 배수레이다. 이 배수레는 고대 동아시아를 향해하는데 사용된 것을 재현한 것이다. 또한 사물놀이패가 등장하여 행렬의 화려함을 더해 주는 것은 물론, 우주 만물의 리듬을 자유롭게 조절하여 듣는 사람들의 육체와 영혼을 고대의 세계로 인도한다.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마쯔리로는 쓰시마섬의 아리랑 마쯔리가 있다. 8월 중순경에 열리는 이 마쯔리는 조선통신사가 쓰시마섬을 경유하여 일본 본토에 상륙 하였던 것을 기념하여 당시 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한 것이다. 시텐노지 왓쇼이(11월) 일본과 고대 아시아의 풍부한 문화교류의 현장를 새로운 의미의 한 형태로 재현한 축제로써 북이나 징등의 각국의 악기소리가 울려 펴지면서 고대 역사사의 인물이나 병사로 분장한 약 4,000명의 사람들이 행진하는 축제이다.
♬ 나카시마 미카 - ひとり
'해외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토의 이총과 국립박물관 (0) | 2007.07.25 |
---|---|
‘스파월드’와 오사카의 두 번째 밤 (0) | 2007.07.24 |
나라국립박물관 관람 (0) | 2007.07.15 |
나라 사슴공원과 토다이지 (0) | 2007.07.08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호류지 (0) | 2007.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