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금초등학교 총동문회 축제 참가기
지난 일요일인 7월 22일, 모교인 곽금초등학교 총동문회 모다들엉(함께 모여?) 한마당 축제가 고향 바다인 진모살(긴모래)에서 열렸다. 61년이나 되는 연륜의 학교에 우리가 10회 졸업생이다 보니, 선배님들이 성성하게 센 머리, 아니 농사를 짓느라 까맣게 얼굴이 그을리고, 머리가 빠지거나 세어버린 선배와 후배들, 너무나 반가워 악수를 나누고 술을 나누고 정을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10시에 기념식을 가져, 내빈소개와 국민의례가 끝나고, 금년에 우리 기에서 자리를 물려받은 머리가 허연 진영부 총동창회장이 인사 말씀을 할 때는 우리가 한꺼번에 늙어버린 느낌이 들었고, 작년에 100명이 넘던 학생수가 금년에 90명 아래로 줄어들었다는 함석중 모교 교장 선생님의 격려사를 걱정으로 들으며, 모교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덜컥 가슴이 내려앉기도 했다.
이어 축사는 강창식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부의장과 전 국회의원이신 장정언 의원이 옛날을 회상하며 고향을 사랑하는 말씀과 강재석(2회) 전 회장이 학교 살리기에 대한 절절한 애원을 들었다. 이웃 두 마을의 경우는 벌써 10여 년 전부터 분교로 전락할 위기를 맞아 동네 연못을 메우고 연립주택을 지어 초등학교 학생을 가진 학부모들에게 무상 임대를 함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못할 것이고, 오래 지속되려면 마을이 잘 사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남아 있는 마을 사람들끼리 불목이 있으면 풀어버리고 머리를 맞대고 열린 마음으로 잘 사는 길을 찾은 후, 누구든 와서 열심히 일만 하면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마을이 될 때 학생수는 스스로 불어나게 되리라.
♧ 꿈을 키우던 모래벌판
서쪽으로 30여분만 자동차를 달리면 닿을 수 있는 유난히 파란 바다가 자랑인 우리 마을 보래 밭은 예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해수욕장이었다. 올해 제주도내 해수욕장엔 해류가 모래를 끌어가 버려 다른 곳에서 모래를 실어다 메우느라고 야단들인데, 우리 마을 해수욕장인 진모살은 기분 좋게 모래가 밀려와 쌓여 바위를 감춤으로써 더욱 좋은 환경을 이루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독립하여 동료들과 헤엄을 배우고 나서 맨 처음 한 일은 조개 잡이였다. 썰물에 바닷물이 밀려나가면 모래톱이 섬처럼 드러나는데 무릎 아래만 잠기는 바다에서 트위스트를 추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여린 발끝에 뭔가 딱딱한 것이 다가오는데, 손을 넣어 집어내면 바로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무늬를 가진 조개가 들려있는 것이다.
이 해수욕장의 모래는 다른 곳의 모래와는 달리 수많은 종류의 조개껍질이 부서져 이루어졌기 때문에 매끄럽고 광택이 있다. 그래서 돌이 부서져 된 대부분의 백사장과는 다른 매끄럽고 맑은 빛의 조개가 자라게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펜팔하는 여자 친구에게 보내려고 틈나는 대로 예쁜 조개껍질을 주워 모으기도 했다.
맑은 물빛은 이렇게 맑은 모래가 얕은 바닷물에 되비쳐 내는 빛이다. 이런 물가에 발을 담가 조개를 잡으면서 수평선 저 너머에 있을 새로운 신세계로 나가는 꿈을 키우며, 시도 읽고 노래도 부르며 놀던 어린 시절이었다. 라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들려나오던 박재란의 ‘진주조개잡이’의 맑은 목소리가 더욱 가슴을 부풀게 했다. ‘새파란 수평선 흰구름 흐르는/ 오늘도 즐거워라 조개 잡이 가는 처녀들…’
♧ 멸치잡이로 조용할 날이 없던 여름밤
멸치는 자신들의 종족을 보존하느라 본능적으로 떼를 지어 다닌다. 그러면, 돌고래를 비롯한 갈치나 고등어 떼가 그들을 쫓아다니는데, 급한 김에 모래밭 물이 얕은 곳으로 쫓겨 오면 재빨리 바깥으로 그물을 둘러 잡는 것이다. 멸치잡이가 행해지는 날은 마을의 축제일이었다. 그 시기가 보리 베는 일과 겹치는 바쁜 시기가 아니었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라.
여름밤 멸치가 들어오면 남녀노소 없이 백사장에 나와 더러는 양쪽에서 그물을 당기느라 박자를 맞추어 영차영차 노래 부르고, 간부들은 횃불을 휘두르며 양쪽 균형을 맞추느라 뛰어다니고, 아이들도 덩달아 “멜이여! 멜이여!”를 외치며 뛰어다녔다.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기면 그물 속에 든 것을 눈치 챈 갈치가 도망치려고 반대 방향인 모래사장으로 물결 따라 올라와 버둥거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꼬랑지를 잡느라 야단들이다. 재빠른 선배들이 잡은 갈치를 보면 은빛 비늘이 달빛이나 횃불에 비쳐 반짝이거나, 그렇지 않아도 형광(螢光)으로 퍼렇게 번들거리는 것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적당하게 끌어내면 그물을 좁히고 퍼내기 시작하는데 백사장에 한 섬들이 틀을 대놓고 줄을 맞춰 쌓는다.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 화수분처럼 밤이 새도록 작업이 이어지고 아침이면 풋나물을 넣은 멜국을 끓이느라 마을이 온통 멸치 비린내가 진동했다.
아버지가 공원이란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작업을 진행하다 오징어나 특이한 고기가 걸려들었을 때 잡아 던져주어 그것을 가져다 반찬을 해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뒷날이 일요일이나 방학 때라면 그것을 지고 외가나 이웃 친지들에게 멸치젓 해먹으라고 져 날라 인심 쓰는 일도 이런 해수욕장을 갖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이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일이었다.
♧ 고기를 잡던 바닷가의 추억
조개를 잡을 때의 그릇은 언제나 신발주머니였다. 3학년 때쯤에는 커다란 꽃게가 물어도 끄덕 없는 해동(海童)이 되어 있었다. 신발주머니 가득 잡는 일은 너무 쉬웠다. 그래서 4학년 봄부터는 조개 잡이는 취미가 떨어지고 움직이는 고기를 낚는 일에 몰두했다. 알록달록한 놀래기와 승부하는 일도 재미있고, 포동포동 살진 놀래미를 낚는 일이나 구멍을 뒤져 보들래기를 잡아도 재미있었다.
더 자라면서는 맨 바다에서 보리멸을 한꺼번에 몇 개씩 후려내는 일이나 좀더 깊은 물 바위 구멍에서 포동포동 살진 우럭을 연거푸 잡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어떤 때는 작은 물안경을 쓰고 헤엄치면서 ‘어랭이’라는 놀래기나 ‘고생이’라는 용치놀래기를 직접 입에 무는 것을 보며 승부를 거는 재미에 빠져 한동안 그 짓에 몰두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갑갑해서 아예 작살을 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조개가 많은 해수욕장 주변에는 그것을 노리는 문어가 많았다. 문어는 모래에서는 살 수 없고 낮에는 바위틈이나 구멍에 집을 짓거나 숨어 살았다. 그러면 모래로 된 바닷가 한쪽에 돌출된 현무암이 있는 곽지해수욕장의 바위 주변에는 문어가 사는 구멍이 많았다. 오전에 가 헤엄치다 보면 밤에 조개를 잡아다 먹고 집 주변에 껍질을 남겨놓아 들통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집이 얼마 안 되어서 잡아버려 빈집은 하루를 넘기지 않아 다른 놈이 들어 살기 때문에 집만 기억해 두면 아무 때나 잡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물속에서 헤엄을 치거나 지내다 보면 배가 빨리 고파진다. 그러면 문어를 잡아다 발 하나씩 질겅거리며 씹으면 고소한 맛이 배어들며 어느덧 시장기도 가시는 것이다. 아아~ 그 옛날 바닷가에서 문어발을 하나씩 베어 물고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던 그 옛날이 그립다.
♧ 해수욕장에서 - 박덕중
바다는
닫힌 가슴을
활짝 열어 놓는다
열기찬 뚜껑을 열어 놓고
활활 타오르는 가슴의 불꽃을
바다는 끄고 있다
불화살은
파도 위에서 튕겨 나가고
달궈진 마음들이
파도 위에서 쓰러진다
숨 가쁘게
폭염에 쫓기고 쫓겨 온
불굴에 무기력한 우리들
짙푸른 에로스
바다와 하늘이 입맞춤하는
저 아름다운 수평선을 바라보며
아, 우리는
바다의 해초가 되어
너울거린다
♧ 여름바다 - 고혜경
용광로를 다 쏟아 놓은
무섭기만 한 저 열정 좀 봐
철없는 모래 마냥 즐겁고
돌 바위 핏줄에 일어서고
잎을 떨군 나무
시름에 돌아눕고
빈 하얀 껍질
온 몸 녹아
짠 소금밭으로 질주하는
저 모래들의 아우성
겨울 바람 어디로 갔는지
매서움 앞에 그리도
냉정한 가슴 보이더니
널 부르며 돌아 눕는 구나
해 저물면 돌아오려나
별 빛으로 넉넉해지는 인정
땅 위의 사람들
남기고 간 아픔
밤 새 씻어
죽도록 보고 싶은
마음
하나 갖고
새로 태어나는구나
그래
너는 살아 있었구나
여름 바다
♬ 해변으로 가요 - 키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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