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섭지코지에 부는 바람

김창집 2004. 11. 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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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치는 섭지코지

 

 탐라문화보존회 회원 130여 명을 모시고 우도로 가기 위해 성산포항으로 갔는데,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하루종일 배가 뜨지 않을 것이라 한다. 하늘이 막는데 어쩔 수 있겠느냐고 대신 그 부근의 유적지를 찾아 답사하기로 했다. 아닌게 아니라 성산포 내항으로 파도가 밀려오고 외항 방파제 쪽으로 하얀 포말이 솟구친다.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게 섭지코지였다. 관광객이 많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엔 들고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람이 많이 몰려 좀처럼 갈 생각을 않았는데, 오늘은 오전이고 또 파도가 멋있을 것 같아 얼른 첫 답사지로 정했다. 그 땅의 끝에는 옛 형태 그대로의 협자연대가 남아 있기도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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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솟음치는 바다 위의 파도

 

▲ 섭지코지란 어떤 곳인가

 

 속칭 섭지코지는 남제주군 성산읍 신양리에 있는 해안에 바다 쪽으로 돌출한 곶을 말한다. 신양해수욕장을 두르고 2㎞에 걸쳐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는데, '섭지'란 '재사(才士)가 많이 배출되는 지세'란 뜻이라고 하나 민간어원설에 지나지 않고, '코지'는 '곶(串 : 바다나 호수로 가늘게 뻗어 있는 육지의 끝 부분)'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섭지코지는 뱃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바닷가 쪽의 '고자웃코지'와 해수욕장 가까이에 있는 '정지코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해수면의 높이에 따라 물 속에 잠겼다 나타났다 하는 기암괴석들로 절경을 이룬다. 곶의 끝에는 외돌개처럼 생긴 높이 30m, 둘레 15m의 바위가 솟아 있는데, 용왕의 아들이 이곳에 내려온 선녀에게 반하여 선녀를 따라 하늘로 승천하려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그 자리에서 선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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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올인' 촬영지

 

 이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이곳을 찾은 사람은 얼마 없었다. 모자를 날릴까봐 끈을 내려 턱 아래로 묶고 앞장서 걸어가는데, 드라마 '올인'의 주인공 송해교의 사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다음에 이병헌의 사진판이 나타난다. 이곳은 나무가 없이 바위와 바다가 펼쳐진 곳이어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81), 영화 '단적비연수'(2000)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합판을 이용해 세트를 지어 '올인'에 나오는 민수연(송혜교 분)이 살았던 요양원의 촬영을 했는데, 일본에까지 방영되는 바람에 널리 알려져 이젠 진짜 재료로 건물을 짓는 중이다. 물 건너간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 그 장면이 생생하니,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곳으로 주변의 풍광과 어울려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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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자연대와 새로 짓는 '올인' 세트

 

▲ 눈뜰 수 없이 부는 바람

 

 사람들은 심한 바람과 그로 인해 날리는 모래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임에도 눈앞에 펼쳐진 파도의 장엄함 때문에 모두들 즐거워한다. 더구나 끝에 보이는 선돌을 비롯한 까만 바위 위로 부서지는 파도는 탄성을 지를 정도로 기막힌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그 쪽으로 향했지만 피사체를 가눌 수 없어 쉽게 누르지 못한다.

 옆에는 바람을 이기고 갯쑥부쟁이가 한창 피어나 향기를 발하고 있다. 멀리 성산일출봉과 그 너머로 우리가 가기로 예정했던 우도가 보인다. 파도는 쉴새 없이 밀려와 바위에 부서지면서 물보라를 일으켜 전설 속의 용왕의 작은아들이 하늘로 승천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여기에 왔을 때 바다 위로 뛰어오르며 지나가던 돌고래 떼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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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속에서 굳건히 피어나는 갯쑥부쟁이

 

▲ 제주도기념물인 협자연대

 

 방어시설의 하나인 협자연대는 등대와 선돌이 바로 내다보이는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초 침략이 잦은 왜군을 막기 위해 제주도 전역에 3성, 9진, 10수전소, 25봉수, 38연대를 설치했다. 연대(煙臺)는 바닷가의 높은 지대에 돌을 사면으로 쌓아 중앙에 봉덕을 만들어 사용했다. 연대는 보통 2교대로 근무를 서면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연락을 취했는데, 평상시에는 1개, 이상한 배가 나타나면 2개, 가까운 곳에 이르면 3개, 경내를 침범하면 4개, 싸우게 되면 5개로 연락했다.

 '올인' 촬영 세트 바로 위에 자리잡은 협자연대는 원형이 훼손되지 않은 몇 개 안 되는 연대이다. 거의 직육면체로 된 석축물이며, 윗부분도 평면을 유지해 불을 피웠던 자리에 약간의 흙이 있을 뿐이다.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연대는 협자, 말등포, 소마로 세 곳뿐이다. 이 곳 연대에서는 북쪽으로 오소포연대와 성산망이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말등포연대와 연결된다. 협자연대에서 북동쪽으로 보면 일제시대에 만들어 놓은 고사포 진지의 잔해가 남아 있고 북쪽으로는 신양리 포제단이 있다. [200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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