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마라도의 해안
▲ 최남단비와 마라도 천연보호구역
장군바위 앞에는 대한민국의 최남단의 위치를 알리기 위하여 1985년 10월 2일 남제주군에서 동경 126°16´30˝ 북위33°06´30˝위치에 '大韓民國最南端(대한민국최남단)'이라고 새긴 비를 세웠다. 근래에 와서는 나라의 최남단에 서보고 싶은 관광객이 하루에도 수백 명에 이르고 있다. 그것은 어떻든 마라도의 상징이 돼버린 것이다. 기념 사진을 찍은 일행은 서둘러 발길을 북쪽 부두로 향한다.
마라도는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마라도는 기반암이 현무암질 암석으로 절리가 잘 발달되어 있고, 해중에서 독립 분화한 섬이라고 생각되나 분화구는 볼 수 없다. 등고선은 섬 모양과 같이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타원형을 하며 동쪽 등대 부근이 34m로 가장 높고 전체로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섬의 돌출부를 제외한 전 해안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북서해안과 동해안 및 남해안은 고도 20m의 단애를 이룬다.
* 독특하게 지어진 집들
파식대는 해식단애가 비교적 완만한 북동해안과 남서해안에 주로 발달하고 특히 남서해안에는 3단의 파식대가 관찰된다. 이곳의 육상식물은 원식생이 모두 파괴되어 경작지나 초지로 변했으며, 섬의 중앙부에 해송 조림지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해산 동식물은 매우 풍부하여, 해조류의 경우 난대성 해조류가 많이 출현하는 조간대와 조하대 식생이 잘 보존되어 제주도 본 도나 육지의 연안과는 매우 다른 이질적인 식생을 나타내고 있다.
작년 11월 1일에 왔을 때는 억새가 이곳을 장식하고 자줏빛 갯쑥부쟁이가 무더기를 이루더니, 오늘은 가끔씩 돌나물과 손바닥 선인장이 흐드러지게 핀 곳을 볼 수 있다. 좀 이상한 모습이 건물이 보여 사진을 찍고 다가가 보니 2000년 8월 2일에 지은 '뽀르기웅클라'라는 집이다. 교회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별장인 듯 문이 닫혀 있고 안에 실내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 '뽀르기웅클라'라는 집
▲ 마라도 등대, 그리고 슬픈 아기업게당 전설
마라도 등대는 1915년 3월에 아세찌링 가스를 이용한 무인등대로 처음 점등한 후 1955년 5월 유인 등대로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바다의 왕궁처럼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0초 주기로 약 1만 5천 촉광의 강한 빛줄기가 사방으로 비추며 돌아가는데, 이 빛은 약 21마일까지 도달한다. 안개가 길 때면 공기를 모아 에어폰으로 "부웅-" 하고 무적(霧笛)을 울려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 항해를 돕고 있다.
하얀 건물이 몇 동 들어서고 넓은 마당엔 태양열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과거 이곳에 발전기가 돌아가지 않았을 때 사용했던 것들이다. 마침 11시 30분이 넘었길래 선박 사무실에 전화를 넣었더니, 다행히 100명의 자리가 비었다고 13시 30분 출발하는 배로 나오라고 한다. 너무 기뻐 큰 소리로 사방에 알리고 할망당(일명 : 아기업게당)으로 향했다.
* 오랜 전통을 가진 마라도 등대
지금부터 약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 섬에 오가는 것이 너무 위험해서 금(禁)섬이라 불리었다. 그래서 이곳에 다녀가면 흉년이 든다고 하여 입도(入島)를 금하자, 사람들은 몰래 이 섬에 와서 해산물을 채취해갔다. 한 번은 대정읍 상모리에 거주하는 이씨 부부가 아기업게 처녀까지 데리고 이곳에 들어왔다. 일을 마치고 가기 전날 밤 꿈을 꾸었는데 처녀를 제물로 두고 가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정상 차마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 데리고 가려하니, 쾌청했던 날씨가 갑자기 나빠져 하는 수 없이 다시 데리러 오마 하고 그 처녀를 떼어놓고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배는 무사했으나 그 처녀는 애절하게 주인을 부르다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런 저런 사유로 못 오다가 3년이 지난 후 그들 부부가 다시 와 보니 그 처녀는 울다 지쳐 배 떠난 바위 아래에서 죽어 있었다. 울면서 죽은 시신을 거두었는데, 지금은 그 애절한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당(堂)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며 마을과 가족의 안정을 빌고 있다. 지금도 1년에 한번씩 제사를 지낸다.
* 슬픈 전설을 간직한 애기업게당
▲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오는 길
뱃머리에 가서 12시에 떠나는 배를 타지 못하도록 조치한 후 모아놓고 자유시간을 즐기다가 1시 30분 배를 타려면 20분까지 선착장으로 모이라고 하고는, 따르는 사람들을 모시고 해식동굴로 안내했다. 의지 없는 망망대해 북쪽 하늬바람이 몰아치는 곳에는 절벽 아래로 깊숙한 동굴이 많다. 그 중 서북쪽 끝에는 웬만한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남대문 모양의 동굴이 자리잡고 있다.
주민인 듯한 사람이 절벽에서 그물로 된 통발 5개를 넣었다가 한창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옆에 가서 본 즉, 떼지어 다니기 좋아하는 쏠종개가 몇 마리씩 들어 있다. 제주말로 메역치라 불리는 이 고기는 등과 양옆 지느러미에 독가시가 있어 잘못 찔리면 엄청난 통증을 수반한다. 이곳에 와서 회 한 점 못 먹고 가면 할 말이 있겠느냐고 횟집이 늘어선 곳으로 간다. 수조에는 갓돔 몇 마리와 자리돔이 놀고 있다.
* 수조 안의 갓돔과 자리돔
관에서 출입을 통제하던 금섬 마라도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살겠다고 들어온 것은 1883년 부터라고 전해진다. 대정골에 살던 김성오라는 사람이 도박으로 가산을 다 탕진하고 생활능력을 잃어버리자 친척들이 모여 의논을 한 후, 대정고을 원님에게 마라도의 개간을 건의했다. 이듬해 제주목사 심현택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모슬포에 살던 라씨, 김씨, 이씨 등과 함께 건너와 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다를 구경하며 고둥을 줍는 사람,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 사람, 자전거를 빌려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사람 등등 마라도에서 근 3시간이 흘러간다. 이곳 저곳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회를 한 접시씩 놓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많다. 시간이 다 되어 떨어진 사람이 없나를 살피며 가는데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며 술 한잔씩 권한다. 돌아오는 배에서는 아쉬운지 모두들 갑판에 나와 멀어져 가는 섬을 다시 돌아보았다.
* 독특한 마라도의 돌
섬은
육지에서
떨어져
나간 미아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너무나 외로워
육지를 향해 보내는
처절한 몸부림 같은
구애의 파도를
보낸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섬 하나를
갖고 산다.
가끔
그 섬에
가고싶어
가슴 설레인다.
--- 남낙현의 '섬' 전문
* 설레는 바다
♬ The Power Of Love / Nana Mousko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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