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탐라입춘굿놀이 [2월 3일, 4일]

김창집 2005. 2. 8. 02:23

 


 

* 칠머리당굿보존회 인간문화재인 김윤수와 회원들의 굿하는 광경


♠ 새해 첫날 탐라왕 목우 끌고 오시다

 

 탐라입춘굿놀이는 오랜 전통을 가진 제주 특유의 축제이다. 과거 농경문화가 시작되면서부터 벌어졌을 이 축제는 1914년 마지막 도황수(굿을 주도했던 무당의 우두머리)인 성산읍 신풍리의 홍매화(洪梅花) 심방(무당의 제주말)의 집전을 끝으로 일제에 의해 중지되었다가, 1999년 제주시에서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가 주관하여 복원함으로써 올해 일곱 번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입춘 전날인 3일에는 입춘굿놀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세미나에 이어, 나무로 만든 낭쉐(木牛)와 입춘탈굿놀이에 사용될 탈들을 시청 현관에 모신 뒤 돼지머리와 각종 제물을 진설한 상을 놓고 코시(告祀)를 지낸 다음 낭쉐를 끌고 축제가 열리는 제주목관아로 출발했는데 시내 각 동에서 출연한 9개 풍물패가 뒤를 이었다. 현장에 도착해서는 상모판 굿과 노래 공연, 농사풀이와 영감놀이가 행해졌다.

 


 

관덕정 앞에 세워놓은 농기들


 입춘날인 축제일에는 동문, 서문, 남문에서 출발한 풍물패가 행사장인 목관아로 오면서 입춘거리 도청제를 열었으며, 11시부터 16시까지 연희각 앞마당에서 초감제, 석살림굿, 용왕맞이 등 입춘굿이 벌어졌다. 한편 14시부터 16시까지는 홍화각 앞마당에서 축하공연이 열려, 초청 공연으로 진주오광대, 하늘나라 꽃밭지기, 이도2동 신풀이, 산도2동 걸궁이 재현되었다.


 이어 16시부터 17시까지는 연희각 앞마당에서 탈굿놀이가 재현되었는데, 부대행사로는 입춘 국수와 막걸리를 무료로 나눠주는 먹거리마당, 입춘 부적과 동자석 등을 파는 살거리마당, 얼굴 그리기와 가훈 써주기의 참여 마당, 전통문화마당으로 판소리마당, 해금산조, 거문고 산조의 한마당, 떡 만들어 먹기, 미숫가루 만들기, 바람개비 만들기 등의 체험 마당, 탐라입춘굿놀이 사진 전시, 봄을 알리는 시전시 등 전시마당이 있었다.
   

    


 

* 지점토나 비슷한 재료로 만든 각종 민속 인형들

 

♤ 신구간과 새철 드는 날

 

 이곳 제주에서는 예로부터 입춘(立春)을 '새철 드는 날'이라 하여 특별한 의미를 두어 왔다. 지금도 신구간이라는 풍습이 남아 있는데, 이는 24절기 중 마지막 대한(大寒) 5일 뒤부터 입춘(立春) 3일전까지 약 일주일 동안으로 지상의 인간사를 다루는 1만8천 신(神)들이 한해의 임무를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보고하고 대기하다가, 새롭게 열리는 한 해에 섬땅을 관장할 새 임무를 받고 내려오는 기간을 말한다.


 그러면 신이 없는 기간 동안에 이사를 가기도 하고 집을 고치는가 하면, 돗통시(돼지우리 + 변소)를 손보기도 한다. 옛날 숙명처럼 바다에 갇힌 척박한 땅을 가진 이곳 섬땅에서는 탈도 많고 화(禍)도 많았다.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 바람 때문에 온갖 것을 날려버리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온갖 신을 섬기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신이 노해서 그런 줄로 알았다. 그러기에 이 신이 없는 기간이야말로 꺼리던 일을 처리하기 좋은 기간이었던 것이다.

 


 

*목관아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와 분위기


 신구간이 끝나고 사흘 후에는 입춘절이 되는데 새로이 좌정한 신들이 섬을 관장한다. 그 부임 첫날이 바로 입춘이고, 새철 드는 날이 되는 것이다. 즉, 시절로 보아 24절기의 첫날인 입춘은 1년이 시작되는 날이기에 이 때 1만8천 첫 업무를 보는 신들을 맞아 그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절차로서 축제가 필요했으리라.


 이 날 행사에는 탐라왕이 몸소 친경직전을 하였고 마을마다 각 신당(神堂)에 좌정하고 있는 본향신을 섬기는 심방과 단골들이 관덕정으로 모여들어 대대적인 한판 굿을 걸판지게 쳐온 것이 바로 입춘굿놀이인 셈이다. 이 때가 되면 한 해의 풍농(豊農)과 풍어(豊漁)를 정성으로 비념하기도 한다. 이 축제야말로 제주 사람들의 몸 속에 흐르고 있는 원형질적인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진정한 의미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 작년엔 만들었던  낭쉐의 모습

 

♠ 낭쉐코사 축문
 
유세차 2005년 을유년(乙酉年) 2월 초사흘
묵은철 가고 새철 드는 아싯날 유시(酉時)에(*아싯날 : 전날)
제주시청 너른 마당에서 새로 만든 낭쉐를 모셔놓고
정성으로 치성으로 제물 진설하고
하늘옥황 천제석궁 문국성도련님과
얼굴 곱고 마음 고운 세경할마님[農耕神]과
세경 장남 정이 으신 정수남이 모시고
낭쉐에 금줄쳐 부정서정을 쫓고
정성으로 제물 진상하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세경할마님이시여
할마님의 은덕으로
탐라땅에 오곡풍등 육축번성 시켜주시옵고
가가호호 집집마다 넋날일 혼날일 없게 막아주시옵고
한해 농사 한해 사업 막힘 없이 걸림 없이
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탐라국 시절 입춘절에 탐라국왕이 직접 나서
밭을 갈던 친경적전의 유업을 이어받아
올금년 을유년 입춘절에 낭쉐를 만들어
탐라국을 관장하는 탐라왕이 낭쉐를 끌고
도민과 함께 시민과 함께 금년 한해 살아가자 하오니
세경할마님이시여
탐라땅에 들어오는 액을 막아 복을 주시고
탐라사람들 하는 일마다 번성하고 번창할 수 있도록
두루두루 보살펴 주시옵소서
올금년 을유년 희망으로 다시 되살아나
신명나는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주시옵소서

 


 

* 칠머리당굿보존회원들과 입춘굿놀이 제물 진설 광경 

 

♤ 낭쉐 고사와 낭쉐 몰이

 

 전야제로 열린 낭쉐고사는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농민들의 신성한 의식이었다. 그러기에 낭쉐(木牛)를 지내기 전에 고사를 지내고 금줄을 친 뒤 잡인의 출입을 막고 낭쉐가 완성된 뒤에 다시 고사를 치른다. 그 때마다 걸궁은 악기를 울려 신명을 부추기고 낭쉐를 만드는 동안에는 집집을 돌며 '문굿'을 쳐주고 인정을 받는다.


 제주도에는 소나 말을 기르는 테우리와 둔주가 주동이 되어 치르는 고사인 낙인(烙印)고사, 귀폐고사, 테우리 명절 등 마소를 위한 고사가 있었다. 입춘굿을 준비하며 전날 부정을 막는 것이 낭쉐고사다. 탐라국입춘굿놀이의 풍농굿으로서의 특징은 나무로 소를 만들고 마을의 유지가 되는 호장(戶長)이 직접 낭쉐와 쟁기를 끌고 밭을 갈아 농부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굿판에서 실연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 초청된 진주오광대의 시연 모습


 조선조 기록에 남아 있는 화반(花盤)은 '굿돌기'의 이두식 표기로 집집마다 돌며 굿을 치는 문굿으로서 마을 굿을 하기 전에 하는 '거리도청제'에 해당한다. 걸궁패는 마을 굿을 하기 전에 며칠 동안 제비(祭費) 마련을 위해 쌀을 담을 항아리를 마차에 싣고 마을을 돌며 문굿을 하던 연희패로 연희 지도를 담당하던 심방 약간명과 연물패 3∼40인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육지 농악의 영향으로 조선 후기에 '걸궁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나타났다.


 제주도 마을에는 수눌음 조직 같은 당심방 중심의 '장고접' 또는 '걸궁패'라는 40명 정도의 상설 연희패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들이 하는 판굿으로서 걸궁은 마을의 신년제인 여성 중심의 무속적인 당굿이나 유교식 포제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 활동한다. 걸궁패가 관공서, 상가, 집 앞에 이르면 집주인은 작은 상에 쌀과 제주(祭酒) 그리고 인정(기부금)을 문 앞에 갖다 놓는다.

 


 

* 제주시청 현관 앞에서 낭쉐고사를 하기 전 모습

 

♠ 입춘굿놀이 본굿인 입춘굿

 

 옛날에는 각 계보의 우두머리 되는 무당 중에서 선출한 도황수가 굿을 집전했다. 그러나, 지금은 제주 칠머리당굿보존회가 맡아 인간문화재인 김윤수(金允洙) 씨외 40명의 회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1980년 11월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된 칠머리당굿(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굿)을 전승 보전하는 칠머리당굿보존회는 매년 음력 2월1일 영등환영제와 2월14일 영등송별제를 주로 하는 모임이다.


 먼저 초감제를 지내는데, 이는 신구간이 지나고 새 철 드는 날(입춘일)에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새로 부임하는 신들의 강림을 기원하는 청신의례(請神儀禮)다. 따라서, 태초의 시간에 천지가 창조되고 인간의 생활이 시작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베포도업침'과 굿을 하는 때와 장소를 알리면서 이곳이 세계의 중심임을 알리는 '날과 국 섬김'이 끝나면 굿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연유닦음'에 들어간다.

 


 

* 행사장에서 만난 시인 고은 선생님과 제주향서당 훈장 전병식 선생님


 그런 절차가 끝나면 심방은 감상기와 신칼을 들고 격렬한 춤을 추어 '군문 열림'을 함으로써 하늘의 옥황 도성문이 열려 하늘에서 1만8천 신들이 하강하는 것이다. 이 신들이 오기 전에 굿판의 부정을 씻는 것이 '새도림('도'의 'ㅗ'는 '아래아')'이라는 정화 의식이고, 신들을 모셔오는 절차가 '오리정 신청궤'다. 이어 제주 읍성 안의 본향당신을 청해 들이는 '본향듦'을 하고, 삼헌관에게 절을 시킨 후 소지(燒紙)를 사르고, 세경할망을 청해 추물공연을 한다.


 다음에 행해지는 애기놀림굿은 아이를 놀리면서 키우는 행위를 실연하는 것이고 이어 '불도맞이' 가 행해진다. 이에는 아기 낳게 해주기를 간절히 비는 '수룩춤', 산신(産神)인 삼승할망이 오는 길을 닦는 '할망다리 추낌', 큰시루떡을 공중으로 던졌다 잡으며 여러 신들에게 음식을 올리고 아래 군졸들도 대접하는 '지장본풀이', 신을 즐겁게 하는 '석살림굿', 용왕을 맞아들여 해녀와 어부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요왕맞이'가 있고 집집마다 궂은 액운을 맞는 제차인 '도액막음'으로 끝을 맺는다. 

 


 

* 각종 소원을 적어 낭쉐에 걸어놓는 시민들

 

♤ 입춘탈굿놀이 시연(試演)

 

 입춘탈굿놀이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채로 여러 탈춤의 원형과 제주굿을 기본으로 구성한 굿놀이인데, 앞으로 시급히 발굴 전승해야 할 내용이다. 보통 탈춤이 과장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이것은 여섯 마당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마당은 '춘경(春耕)'으로, 딸을 지키는 돌하르방 춤이다. 여러 오방신장무가 오방신에게 배례하고 시작을 알리는 것인데 비해 돌하르방 춤은 제주읍성을 지키는 수호신인 돌하르방에 대한 내용이다.


 둘째 마당은 '파종(播種)'으로, 남성의 원리인 밭에 씨를 뿌리는 호장인 씨하라비 춤이다. 호장(戶長)이 쟁기를 잡고 낭쉐(木牛)를 끌고 가면, 호장의 탈을 쓴 농부와 소탈을 뒤집어 쓴 소가 서로 어르며 밭을 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셋째 마당은 '벽사(壁邪)'로 밭을 부정하게 하는 새탈춤과 부정을 쫓는 사농바치(사냥꾼) 춤이다. '새'는 새(鳥)와 새(邪)의 중의적(重義的) 의미를 지닌다.

 


* 탈춤 중 새도림의 한 장면 


 넷째 마당은 '풍농(豊農)'으로 남녀가 희롱하는 각시인 거부춘심의 춤과 임신한 여인의 춤으로 구성된다. 기생인 춘심(春心)을 살려내는 각시춤, 염가밍 여러 각시들과 어울려 춤추는 영감춤, 성관계를 암시하는 사랑춤, 사생아를 잉태하는 각시춤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다섯째 마당은 '씨앗 싸움'으로 본처와 첩의 생산력을 다투는 춤이다.


 여섯째 마당은 '수확(收穫)'으로 땅을 기름지게 하는 오방각시 춤이다. 동(靑) 서(白) 남(赤) 북(黑) 중앙(黃)을 나타내는 오방색의 각시탈을 쓴 기생들의 춤이다. 제주도에서는 밭을 '세경', 농경신 자청비를 '세경할망' 또는 '세경신'이라고 한다. 풍농굿은 성행위, 출산, 육아, 농사의 전 과정을 보여 주는 세경놀이를 한다. 여기서는 오방각시를 놀림으로써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탈굿놀이 시연은 대학 탈춤 동아리 출신인 '제주두루나눔'에서 맡아 공연했다.

 



* 본 행사인 입춘굿을 열심히 보고 있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