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제주어 글

용꿈 꿉서

김창집 2012. 1. 24. 13:09

제주어로 쓰는 산문(5)

       

                                                        ♧ 용꿈 꿉서

 

 

  임진년이 앗수다.

  용(龍)이 활활 아댕기멍 우리 섬에 하간* 숙제덜 풀어줘시문 좋구다.

 

  새해 첫 해 보레 댕겨와십주. 다섯 시에 일어난 몸을 깨깻이 싯고 옷 려입언 저 서우봉*엘 간 거라마씀. 차에서 리난 빗방올이 똑똑 털어집디다마는 하영 올 빈 아니란 그냥 올랏수다. 질레서 아는 사름 만난 치이 가신디, 성산일출제에 가젠 단 고만히 생각여보난, 나 나라도 빠지문 어디광 어디서* 온 관광객덜이 꼼이라도 펜안게 보게 뒐 거난 양보엿젠마씀.

 

 바당엔 절*이 희양엿고, 하니름이 귀뚱배길* 확 후려기난 정신이 바짝 들언, 훌딱훌딱 튀난 몸에 열이 후끈후끈게 걸어집디다. 어이에 오름 북쪽 망오름 민딱* 동산에 올란, 잘 베려짐직 쪽 이염*에 산 조용히 해를 기다려십주.

 

 시간이 뒈여간 동더레 베려보난 시커멍 구름뿐이라, 그 구름이 틈을 내영 손바닥만게라도 붉은 점을 배와줌직 아니여도, 동새벡이* 일어낭 이디장 온 정성이문 그것만으로도 충분덴 위안멍 해 트는 시간을 지드렷수다.

 

 해 튼덴 는 일곱 시 삼십육칠 분이 지나도 번찍* 그대로난, 피선* 실망는 사름이 나둘 십디다마는 건줌* 다 동더레 돌아산 두 손을 모앙 소원을 빕디다. 이녁만썩* 소원이 이실 텝주마는 나도 구름 저 펜이 올라온 뻘겅 해를 떠올리멍 히 소원을 빈 후제, 그 곱닥 해를 가심에 품언 려왓수다.

 

 전설(傳說)거추록 용이 어디서 아왕 구름을 확 걷어뒁, 짓뻘겅 해를 둥실둥실 떠 올리문 오죽 조쿠가마는 이 시상은 그자* 뒈는 일이 읏어부난, 이녁만썩* 노력멍 맨들아가렌 는 걸 텝주. 아무도 용을 본 사름은 으서도 우리 머리 소곱에선* 언제고 산 용이 꿈틀꿈틀듯이, 서로를 믿으멍 부지런히 노력염시문 용이 소원을 다 이루와 줄꺼우다.

 

  경디 요세 사름덜은 너미 현실적이랑 눈에 안 보이문 잘 믿젠 아니는디, 알앙 보문 안 보이는 것 중에가 소중 게 하마씀. 생각여봅서. 머리 소곱에서만 왓다갓다 는 ‘믿음, 소망, 사랑, 행복’ 튼 것이 시난 진짜 시상이 살만 거 아니우까. 경난 잇날 사름덜이 동물이 한한 디도 용이엔 희안 걸 멩글아낸 거 닮아마씀. 땅 우틔서 호랑일 상대 놈이 으서부난, 멍 싸우렌 개기영 뿔이영 돋은 놈을 맨들안 짝 붙인 생이우다. 경지 아니여시문 용호상박(龍虎相搏)이엔 말이 어디 시멍, 청룡백호(靑龍白虎)가 뭣이우까.

 

 우리가 는 말 중에 ‘개천에서 용 낫젠’ 는 말이 싯수다. 잇날은 임금만 용 대접엿주마는 오 민주화 시대엔 용이 랏입주. 때 뒈문 신문 광고에서도 용뒌 사름덜을 봅니다. ‘에에? 무신 용씩이나?’ 지 모르쿠다마는 큰 용기 내천 엄청난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올라시난 무시 수 으신 용이라마씀.

 

 광고낸 사름덜이 어려운 돈 내멍 축하는 디는 다 이유가 이십주. 집안광 지역사회, 또 나라를 위영 진짜 용이 뒈어도렌 는 거 아니우까. 비가 꼭 필요 때랑 비를 리우곡, 름이 심 때랑 름도 막아주는 그런 용을 원는 겁주,

 

 용 뒈엿고렌 하늘에서만 놀멍 개천 생각 아니곡, 놈의 꼭대기에 앚앙 호량가달만 는 용보다는 개천에 살멍 려운 디를 솔솔 긁어주는 용이 우린 좋수다. 처얌엔 용으로 시작영 내중에 강은 베염 꼴랑지가 뒈부렁은 뭇 부치러운 일 아니우까?

 

 용의 해가 뒈여시매 용꿈 꾸멍 딱 귀게 뒈곡, 음 먹은 일을 이루어시문 좋쿠다.

 새해 복 많이 받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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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간 : 여러 가지의. 이것저것의. 모든.

* 서우봉(犀牛峰) : 조천읍 함덕리와 북촌리 사이에 있는 표고 111.3m의 오름. 서모봉.

* 어디광 어디서 : 아주 멀리서. 아주 먼 곳, 또는 힘들게 찾아가거나 온 곳을 가리킴.

* 절 : 파도를 이루어 밀려오는 물결(波).

* 귀뚱배기 : 귀퉁이. 귀의 언저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 민딱다 : 겉면이 거친 것 없이 매끈하다. → 다.

* 이염 : 길이나 담장의 가나 옆. 어염.

* 동새벡이 : 이른 새벽에.

* 번찍 : 씻은 듯이 아무것도 없는 모양.

* 피선 : 옆에선.

* 건줌 : 거의.

* 이녁만썩 : 자기만큼씩.

* 그자 : 거저. 공짜로.

* 읏어부난 : 없어버리니.

* 소곱에선 : 속에서는.

 

                                                       --계간의정소식지 'Dream Jeju 21'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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