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제주어 글

내 어머니언어의 사멸을 지켜보며

김창집 2012. 7. 16. 07:46

주간조선(2214호, 2012.7.9.) - 사진은 바위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땅채송화 

 

  요즘 들어 부쩍 제주어로 써 달라는 글 청탁을 많이 받는다. 유네스코에서 2010년 말 제주어가 소멸 위기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뜻있는 단체나 언론기관에서 늦게나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럴 때 나의 화두는 어머니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면 어머니는 내 귀에다 대고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 쓰는 일이 이보다 편할 순 없다. 몇 줄 얽어내려다 쩔쩔매고 덮어버리는, 오랫동안 지속해온 소설 쓰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내게 어머니는 타고 난 것처럼 자연스레 언어를 습득시켰다. 그래서 모어(母語)라 하는 것 같다. 일부러 외게 하지도 적어주지도 않았는데, 언제 들어와 있었는지 신통하게도 적재적소에 알맞은 어휘가 튀어나온다. 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5년, 일에 쫓겨 가끔 어머니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자주 쓰지 않은 모어도 잊혀져가고 있다.   

 

 

* 나도 제주어의 사멸에 일조를 했다

 

  나는 고등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이른바 국어선생이었다. 35년 교단에 서있는 동안 제주어를 이 지경까지 모는데 일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 고문(古文) 수업 때에는 그 어형이 남아 있는 제주어를 활용해 많은 호응을 얻었는데, 1990년대 들어서면서는 제주어조차 알아듣는 학생이 드물어졌다. 연구수업 도중 사투리 몇 마디 섞었다고 장학사에게 호되게 지적당하고도 얼굴 붉힐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문교부 시책을 따른다고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말살정책을 펴던 것처럼 사투리 쓰는 학생들을 심하게 다루는 선생님도 있었다.

 

  입시에 표준어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고 입사시험 면접에서도 자연스런 표준어가 요구되는 사회에서 세(勢)가 약한 지역어가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일상에서 표준말을 쓰고, 늘 대하는 방송까지 표준어다 보니, 지역어가 설 곳이 어디 있었겠는가?

 

 유네스코는 2001년 파리에서 열린 제3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은 반세기 동안 다양한 사업을 통해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 온 유네스코가 ‘모든 이는 자신이 선택한 언어, 특히 모국어로 자기 작품을 창조하고 배포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문화 다양성을 전적으로 존중하게끔 질 좋은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한 실행 계획에서 언어에 대한 부분을 보면, ‘인류의 언어 유산을 보호하고, 가능한 다양한 언어의 표현․창조․배포를 지원하며, 모든 단계의 교육에서 -모국어를 존중하고- 언어 다양성을 촉진시켜 유년기부터 여러 언어를 학습하도록 장려하며, 교육을 통해 문화 다양성의 긍정적 가치 인식을 증진하고, 이런 목적에서 교과 과정 구성과 교사교육을 향상’시키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결국 문화는 인류 모두의 유산이기에 더욱 다양해져야 할 필요가 있고, 색다른 문화끼리 교류하는 과정에서 더 새로운 문화가 싹틀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말은 ‘문화는 독특한 것일수록 세계인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뜻이겠다.

 

 

* 고향을 이어주는 언어

 

  제주어와 관련된 군대시절 에피소드 두 가지. 1960년대만 해도 제주 출신은 병영에서 따돌림 받기 일쑤였다. 그 이유 중에는 독특한 지역어도 한 몫 하는 것 같아 안 쓰려고 노력했다. 논산훈련소를 마치고 후반기 영외부대로 갔는데, 우리 내무반장이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았다. 설날,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한 10분 침묵이 흘렀을까. 갑자기 “불 싸라(켜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났다. 분명히 우리 내무반장이었다. 몰래 찾아가 다짜고짜 제주도 어디 출신이냐고 따졌다. 마침 대학 동기의 친구였고, 이후 4주 훈련기간이 행복했다.

 

  부대배치를 받은 다음에는 연대 인사과에 행정병으로 근무를 하게 되는데, 부대원 중 특정 사병들을 면접할 일이 있어 강원도 해안가에 경비임무로 파견된 중대를 찾아 출장을 갔다. 약도를 들고 갔지만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 종일 찾아다녀도 허탕이어서 밥도 굶은 채, 시골 정류장에 쪼그려 앉아 있노라니까, 아가씨 둘이서 쿡쿡 웃으며 “에고, 꼭 동녕바치(거지) 닮다이.” 하는 게 아닌가? 제주 출신 해녀였다. 붙잡고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멀리 와서 고생한다면서 밥도 사주고 수소문해서 부대도 찾아 주었다. 객지에서는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더니.  

 

 

* 우리의 보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제주의 언어는 한 때 제주가 자랑하는 보배였다. 삼다(三多)도 유명하지만 삼보(三寶)라 하여 언어, 수중자원, 식물의 보고임을 자랑삼아 왔다. 그러던 것이 관광개발에 밀려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니, 쉽게 버림 받은 것이다.

 

  언어는 그 사회 구성원에게 일체감을 줌으로써 구성원들을 통합시키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언어의 기능에 대한 언급은 지역어의 경우에도 다름 아니다. 뒤늦게 제주어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으나 늦은 만큼 되살리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제주어를 살리려는 노력은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면서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릇이 없어지고 재료가 없어지면 문화 창조는 다른 언어를 빌릴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온전한 고유문화를 이룩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뜻있는 인사들은 올곧은 제주 문화와 정신을 붙들기 위해 그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리라.

 

  제주어가 사라지면 그리스 신화보다 더 많고 탄탄한 제주 일만팔천 신들의 신화(神話)는 무엇으로 전하며, 무수히 불러온 민요와 설화 같은 구비문학은 어떻게 살아남을지 참으로 염려되는 바다.

   

 

* 어머니의 힘은 위대하다

 

  언어는 소통할 수 있을 때라야만 생명력을 갖는다. 위기의 언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은 뜻있는 인사들의 힘으로만은 부족하다. 나의 어머니적에 그랬듯이 모어는 아기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우선 지역 어머니들의 참여를 기대해본다.

 

  내가 자라는 동안, 어머님은 한시도 입을 놀리지 않았다. 그 많은 속담이며 지혜가 담긴 이야기들을 수없이 쏟아냈다. 일하면서 힘이 들 텐데도 여럿이 있으면 하다못해 노동요 한 자락이라도 펼쳤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할머니 밑에서 자란 어머니가 어디서 그런 화수분 같은 이야기보따릴 채웠을까?

 

 아아, 불현듯 어머니가 그립다. 임종이 얼마 안 남았을 때, 눈멀고 귀먼 채로 “큰놈아! 나 꼼(조금) 살려 도라게.” 하고 애원해서 “걱정 맙서. 나가 알앙 다 살려 안네쿠다.” 하고 대답했던 말을 되뇌어 본다. 이제 모어도 사라져 버리면, 혼자서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려야 하리라.  (김창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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