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과오름에 다녀온 이야기

김창집 2012. 8. 14. 00:30

- 당분간은 샛오름과 말젯오름만 가기를

 

* 납읍에서 바라본 과오름

 

▲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맑음

 

  아무리 원고가 바빠도 1주일에 한 번 운동은 걸러서는 안 되기에, 늘 하던 버릇대로 약속된 시간에 오름에 가기 위해 모이는 장소에 갔지만 아무도 없어, 다 가버렸나 하고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도 5분은 남아 있다. 회장에게 전화한 즉 중국이란다. 잘 구경하고 오라고 전화를 끊고 나서 조금 있다 전화를 받았는데, 직전회장이다. 둘이만이라도 가겠느냐고 제안을 받았는데, 생각해보니 오늘은 자유롭게 그 동안 못 찍은 연꽃 사진도 찍고, 요즘 변한 오름 사정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각자 행동하자고 이르고는 집으로 와서 물과 필기도구까지 챙겨 차를 달렸다.   

 

 

* 전에 곽지마을 서쪽 오도롱고망 입구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부터 큰오름, 샛오름, 말젯오름.

 

가다 정실 입구에 차를 세워 흰부용과 배롱나무 꽃을 찍고는 연화못으로 달렸다. 시기로 보아 연꽃은 분명 핀 것 같은데, 요즘 통 신경을 못 쓰다 보니, 어찌되었는지 몰라 궁금했던 터다. 생각했던 대로 하가 연화못의 연꽃은 절정을 이루고 있다. 꽃과 연못 풍경, 그리고 고내봉까지 맘껏 찍고 나서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과오름으로 달렸다. 오른 지가 오래기 때문에 요즘 길이 어떻게 났는지 확실하게 알아보려고….

 

  납읍에서 올레 15코스 골목길로 접어들었는데, 과오름을 거치는 길은 아직도 좁고 거칠다. 여자 혼자 걷기에는 여기도 으슥하겠다 싶은 생각을 하면서 광명사 입구로 접어든다. 그곳은 일주도로 애월가고 납읍 오는 네거리 서쪽 50m 지점 광명사 간판에서 1,4km 정도 올라온 곳으로, 과오름이 시작되고 동쪽으로 올레 15코스가 고내봉을 향하는 곳이다. 광명사 입구에 차를 세우고 배낭을 메고 남쪽 과오름으로 오른다. 무덤 1기가 있는 곳에서 왼쪽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바로 오름 능선으로 오르는 길과 만나게 된다.

     

* 첫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곳, 속칭 활둥이라 한다.

 

  소나무 아래 예덕나무, 아카시아, 후박나무, 천선과나무 같은 잡목이 우거진 길을 2~3분 걸어 첫 봉우리를 만나면서 훤히 트인 소나무 숲이다. 옛날 과오름 등허리가 민둥산일 때도 여긴 큰 소나무가 있던데, 50년이 지나도 크기가 비슷한 걸로 보아 그걸 베고 다시 심은 모양이다. 그 동산을 내렸다가 다시 오르면서 수난은 시작되었다. 환삼덩굴과 가끔 묻혀 있는 찔레나무, 쇠무릎풀 같은 거친 풀들이 무성하여 쉽게 걸을 수가 없다. 제주도에서 발간한 ‘제주의 오름’에는 어이없게도 첫 봉우리가 말젯오름으로 올라있다.

 

  아는 사람들은 과오름에만 다녀오면 나한테 오름 오르면서 혼났다고 푸념하는데, 그럴만 하다. 오름을 조금 안다고 출삭거리는 나도 북쪽 능선으로 넘어가보고, 남쪽 7~8부 능선으로 넘어오는 등 머리를 굴려도 쉽게 헤어날 수가 없다. 언젠가 겨울에 왔을 때는 그런대로 갈만하던데, 이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다른 마을 같으면 벌써 취로사업이라도 벌여 가시를 베어놓았을 텐데, 곽지 마을은 농한기가 없는 부업마을이어서 사시사철 바쁘고 품삯도 꽤 높다보니 이곳은 등한시 했나보다 하고 좋게 생각하며, 7부 능선길을 헤쳐 걷는다.

  

 

* 이처럼 허벅지까지 빠지는 풀숲은 그 속을 볼 수 없어 더 힘들다.

 

여기가 내 어렸을 적 암소와 송아지를 몰고 올라와 잔디밭을 뒹굴며 책을 읽었던 곳이라기엔 거리가 세월만큼 멀다. 그늘을 좋아하는 맥문아재비만 곳곳에서 꽃을 피워 하얗게 빛난다. 그걸 찍으러 몰두하는 사이에 풀모기는 옷속을 파고 든다. 적당히 찍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 했으나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 갈수록 풀 속이 깊고 거칠어, 가면 꼭 글을 써서 올려 나와 같이 고생하는 등산객을 한 사람이라도 구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맥문아재비

 

  드디어 곽금8경 올레 중 제7경 선인기국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내렸다. 이곳에서 보면 곽지리 상하동 마을이 꼭 선인들이 바둑판 같이 아름답다는 곳이다. 어렸을 적 봄에 이곳에 올라 유채꽃과 보리밭 그리고 마을 초가집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 나도록 정겨운 풍경이 펼쳐졌었다. 이곳은 곽지와 금성을 도는 곽금초등학교에서 만든 올레길이다. 속칭 성질에서 과오름 중허릿길을 올라 이곳에서 샛오름과 말제오름 능선을 거쳐 눌우시로 내려가 문필봉 옆으로 내려간다.

 

  오름 능선을 선호하지 않은 올레꾼은 압게통을 거치게 되어 있다. 속칭 압게통은 세 오름의 분화구격으로, 옛날에는 제일 깊은 밭이 촐밭이어서 가을에 촐을 베어버리면 잔디구장이 되어, 마을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휴일이나 방학에 이곳에서 축구하는 걸 전통으로 여겼었다. 물통 옆으로 올레길이 있어 능선을 걷게 되었지만 풀이 너무 무성하여 계단을 따라 오른다. 이곳 샛오름은 곽지리의 첫 공동묘지이다. 지금 공동묘지는 목장지대로 옮겼지만 이 오름 앞쪽에 큰할머니와 작은 할아버지, 뒷쪽에 증조할머니가 묻혔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갑자기 돌아가신 바로 내 위 누나도 묻혔던 곳이다.

 

* 무덤을 지나면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말젯오름이다. 뒤로 보이는 게 곽지해수욕장.

 

  그곳으로부터 올레길은 커다란 소나무 밭으로는 넉넉한 숲길이다. 어찌 보면 샛오름과 말젯오름은 하나로 이어진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무덤이 있는 샛오름과 소나무 무성한 말젯오름이 쉽게 구별된다. 그걸 모르고 ‘제주의 오름’에는 동쪽에 있는 작은 봉우리를 말젯오름으로 잘못 본 것이리라. 어떤 사람은 과오름 북쪽의 보그만 동산을 알오름으로 보는 사람이 있으나, 그건 오름으로 치지 않는다. 어떻든 숲길을 걸어나오면 오름 옆길이다.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데, 왼쪽(서쪽)으로 가면 곽지하동으로 이어지고, 오른쪽(동쪽)으로 가면 압게통과 눌우시로 빠져나가는 길이 이어진다. 이곳에는 농사용수 관정을 뚫어 물통을 세워 놓았다. 개인적으로는 유일하게 고향에 남은 내 소유의 소나무 밭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출발점인 광명사까지는 길이 없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어 차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분간 과오름은 등반을 피하고 납읍으로 올라가다가 곽금 올레길을 따라 성질로 오름 옆길로 올라 물통 옆에 차를 세우고 샛오름과 말젯오름을 돌아 압게통으로 한 바퀴 돌든지, 아니면 일주도로 한담동 옆 장한철 표해기적비에서 조금 서쪽길로 올라와 아래 물통에서 샛오름과 말젯오름을 돌든지 해야겠다.

 

  3시간여를 헤매어 오름을 돌고 집에 와 인터넷을 검색하니, 과오름 둘레길과 고내봉 등 오름 몇 개를 돈을 많이 들여 손봤다고 나와 있다. 의아해서 물어 보았더니, 오름길이 아닌 성질에서 하가 쪽으로 빠지는 오름 옆길 같다는 것이다. 나도 딱 안 거친 곳이 그곳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거기는 오름 오르는 길, 또 어느 올레길과도 무관한 곳이다. 과오름은 능선으로 길이 제대로 뚫릴 때까지 보류해두면 좋을 것이다. 꼭 오를 필요가 있다면 남쪽 6~7부 능선을 통해 종주할 것을 권한다.

 

* 말젯오름으로 올레길을 내려와 바라본 말젯오름 끝자락.

 

* 압게통으로 들어가는 곳의 거욱대- 보통 방사탑이라고 하는

 

* 동서로 뻗은 길쭉한 과오름의 모습.

 

* 마을 쪽에서 보면 무덤 때문에 잔디밭처럼 보여 구분이 되지만, 뒤(동쪽)로는 나무가 있어 말젯오름과 구별이 안 된다.

   

 

* 압게통으로 들어서다 보면 오른쪽에 방금 거쳐온 말젯오름이 보인다.

    

 

* 곽지해수욕장에서 본 과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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