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입춘, 하루종일 눈을 밟다

김창집 2007. 2. 5. 09:14

--- 물찻, 마은이, 마은이옆 답사기

 

 * 물찻오름 가는 길 

 

♧ 2007년 2월 4일. 입춘이자 일요일. 하루종일 맑음

 

정말 봄이 든 것처럼 하루종일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고
눈밭을 걷고 싶다는 회원들과 함께 물찻과 마은이,
그리고 마은이옆을 찾아 실컷 걸어 다닌 하루였다.

 

아침에는 눈이 얼어있어 물찻 입구까지 가는데 천천히 갔는데도
차 3대 중 1대가 언덕을 오르지 못해 몇 번 시도하다가 안 돼
결국 옆에 세워두고 나머지에 분승해서 오름 입구에 도착했다.

 

물찻 입구에서 오름까지는 눈 위로 촘촘히 발자국이 찍혀
그대로 다져져 있어 미끄러워 조심조심 걸어 오른다. 

하지만 능선을 한 바퀴 돌면서 첫 발자국을 찍을 수 있었다.

 

    * 물찻오름으로 난 숲길

 

  * 물찻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

 

  * 물찻오름 분화구 산정호수의 물이 얼었다. 

 

남쪽 트인 곳에서 웅장한 한라산이 모습도 좋았고
얼어있는 분화구의 정경도 멋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온다. 심지어는 개까지 올라와 있다.
아! 우리만이라도 이곳에 그만 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래서 사람이 안 가는 마은이로 갔다.
서서히 녹아 가는 눈은 찻길을 더디게 하지만
가득 깔린 사방의 눈이 분위기를 돋운다.
물찻오름 입구에서 남조로로 나가다가 보면 오른쪽(남쪽)으로 난 길이 있는데
이는 궤펜이 옆을 스쳐 물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한참 더 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난 길이
바로 거린악 입구로 이어지는 임도(林道)이다.
이곳을 가다보면 송전 철탑이 가끔 보이며
두 번째 왼쪽 한라 67번 철탑 아래로 진입할 수 있고
그 곳에 차를 몇 대 세울 수 있을 정도의 터가 다져져 있다.

 

 * 물찻오름 임도의 소나무들

 

 

  * 산에서 만난 여러 가지 버섯의 모습

 

 * 마은이 정상에 있는 무덤

 

차를 세우고 동쪽 숲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냇가 같은 구렁이 나오고 옆으로 돌아 비스듬히 오르면 곧 마은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산 203번지
표고 838.6m, 비고 47m, 둘레 1,235m, 면적 115,182㎡, 저경 421m
북향을 향한 말굽형 화구인데 그냥 원형 분화구처럼
굼부리가 평평하고 넓어 소풍 장소로도 그만이다.
 
나지막하지만 워낙 넓어 한 바퀴 비잉 돌다 보니
정상에 커다란 무덤이 있었는데
비문(碑文)에는 '마안이(馬安伊)'라 표기되어 있다. 

눈 위에는 사람의 발자국은 없고
온통 노루들이 뛰논 자취만이 어지러이 찍혔다.

 

한 바퀴 돌고 나서 평평한 분화구에 들어가
눈 위에 큰 대자로 벌렁 드러눕기도 하고
눈싸움도 하며 휴식을 취했다.

참식나무와 소나무 푸른 숲이 겨울에도 청청하고
잡목으로는 때죽나무, 서어나무, 물참나무, 산딸나무 등이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이제는 다 썩어가고 있다.

 

 *  눈밭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새 순을 밀어올리는 식나무

 

 * 마은이에서 마은이옆으로 가는 길 

 

거기서 나와 차를 돌려 이번에는 남조로 쪽으로 나가다가
말찻 입구를 지나 400m 지점쯤에 차를 세우고
동남쪽으로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마은이옆이 비스듬히 누워 있다.

 

이곳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 158번지로 붉은오름과 번지가 같다.
마은이와는 읍면도 틀리고 보면
차라리 '붉은오름옆'이라고 이름 붙여야 하지 않았을까?
편이상 붙인 이름이 두고두고 혼동을 유발할 우려가 있겠다.

 

표고 548.5m, 비고 53m, 둘레 1,337m, 면적 119,062㎡, 저경 513m
북동향을 향한 말굽형 화구인데 그냥 능선이 길쭉하게 보인다.
능선에서 조금 아래 분화구 쪽으로 무덤 하나 있었으나
작년에 이장(移葬)해 묘자리만 남아 있다.

 

하루종일 눈밭을 걷다 나와
절물오름과 민오름 사이로 가서
노란 색이 도드라진 눈 속의 복수초를 보았는데
많이 훼손되어 있어 아쉬웠다.
하루종일 눈밭을 걸은 신나는 하루였다.

 

 * 오다가 절물오름 옆에서 만난 입춘을 맞는 복수초


♧ 눈길에서 - 강남주

 

내가 해야될 이야기는 없다

 

이 조용한 정물(靜物) 속에서
나는 한 그루
가로수(街路樹)가 되는 걸로
만족하다

 

잊었던 옛적의 친구에게
오랜만에 엽서(葉書)를 받아 들 듯이
손을 가만히 펴들고 있으면
손바닥에 내려앉는
다정(多情)한 소식(消息).

혼야(婚夜)에 새 살결 감촉(感觸)하듯이
산길을 돌아오는 나의 촉각(觸覺)에
사뿐히 말 없이
내려지는 말씀
이제 내가 해야될 이야기는 없다.

 

 

♧ 눈길 - 정군수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눈 내리는 산길을 간다
살아있는 것들은 소리를 묻고     
어머니의 꿈을 꾼다
 
내가 걸어온 길도 눈길
눈에 덮여 세상은 은빛 고요
닦아도 열리지 않는 눈
투명하게 흔들어대는 혼
   
억센 나의 손을 잡고
눈 내리는 산길을 간다
내가 가는 길도 눈에 덮여
세상은 혼자이었음을 안다

 

 

♧ 눈길 - 김유선

 

눈송이 하나에 얹혀오는 너는
나의 무엇인가
눈이 내리면 마음에서는 지레
분홍꽃 숭어리 벙근다

나는 잠시 모든 무게를 벗고
눈송이 하나만의 가벼움으로
어디든 갈 수 있겠다

 

맨 처음 너의 어깨에 앉으리라
주소불명의 너는 차라리
견고한 희망이다

 

저 막힌 길, 황막함은 겨울의 몫이 아니었다
빈자(貧者)의 꿈꾸는 빈잔 속에서
꽃잎이 되는 눈송이

 

어두운 밑그림 속에서 찾아내는 너는
너에게 그는, 그에게 나는
눈송이 하나만큼의 중량인지도 모른다
곧 녹으리라.

 

  
♬ 베스트 클래식 모음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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