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진초록 숲을 거닐다

김창집 2015. 6. 14. 07:25

 

6월,

자연이 내린 선물

끝없이 이어진 진초록 숲을 거닐었다.

 

눈이 피로가 말끔히 가시고

맑은 공기는 몸을 편안하게 한다.

 

무엇이 부러우랴

비록 내 가진 것 별로 없어도

그리웠던 얼굴들과 얼려

스스로 찾아가 누리는 행복,

 

어제 오전 내내 거닐며 가슴을 적셨던

그 숲의 빛깔을 여기 옮긴다.

 

 

♧ 초록 사랑을 꿈꾸다 - (宵火)고은영

 

누군들 알랴

청춘의 색깔로

흩뿌리는 계절에

나비는 고운 날개 위

찬란한 빛을 싣고

 

눈부신

비운의 침묵으로

서러웁게 불 밝힌

싸리꽃 하얀 얼굴

 

영혼으로 다소곳이 다가서

그 아픔마저도 치료하는

초록 사랑을 떠올리며

하늘 높이 선회하는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지

 

 

♧ 녹음 속에서 - 양채영

 

六月숲에 들어서면

향기로운 풀잎과 수피 향기로

꽃들도 제 이름을 잊은 듯 하늘을 우러러보면

상수리나무며 물푸레나무잎들이 또

제 이름도 없이 열려

새 하늘을 이루어 일렁이고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초록 향기가 되어

빠져나갈 수도 없는 천길

깊은 노랫소리로 가득 차오른다.

 

 

♧ 초록 파도 - 박인걸

 

초록 파도가

산 위에서 출렁인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끝없이 퍼져 나간다.

 

소리 없이 일어서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생명의 에너지를

비처럼 퍼붓고 있다.

 

동상에 잘린 가지와

바람에 꺾인 상처들도

바다 빛 붕대를 감아

시푸르게 치유하고 있다.

 

유월의 숲속에 오면

젊은 나무아래 서면

가슴에 난 상처들까지

말끔히 아물어 간다.

 

피톤치드의 원액과

삼림욕의 효능이 아니다

가슴속을 어루만지는

생명의 손길 때문이다.

   

 

♧ 초록 예찬 - 오보영

 

사람 향해 바라보다

흐려진 눈을

 

싱그러운 너를 보며 씻어내린다

 

사람 마음 대하다가

흠집 난 가슴

 

널리 펼친 품에 안겨 달래어본다

 

너를 보며 지난 흔적

 

지워버린다

 

너를 통해 새론 생기

 

돋우어본다

 

 

♧ 초록 풍경 - 박종영

 

가슴 볼록한 뭉게구름

그토록 만지고 싶었던 청람색 하늘이

산 바위에 얹혀 손짓하고,

노련하게 흔들리기 위해서

녹색의 여름 산을 오른다

 

산골 물 시샘하듯

톡톡 쏟아내는 산새울음,

창연한 세월의 이름으로 바람 가르는

아담하게 허리 굵은 동백나무숲,

 

어느 것 하나 눈으로 담아보고 싶어

은빛 물결 잔잔하게 찾아들고

어느해 그리운 이별 마중했던 날이

가슴을 열고 초록 숲에 숨는다

 

오래 갖고 싶은 차진 흙의 보람을

어디에서 찾을까

곱게 피어오르는 한그루 나무,

그 향기 재미나게 보듬어주던 시절이

마냥 부끄럼을 탄다

 

 

 

♧ 초록 꽃나무 - 도종환

 

꽃 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갈로

돌아와 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나무는 다시 똑같은 초록이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된다

그렇게 함께 서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숲을 이룬다

꽃 피던 날은 짧았지만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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