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 닌과의 대화
제주 문학인의 집(대표 : 김순이) 소속 작가 30명은 지난 2015년 1월 3일부터 9일까지 베트남 꽝아이성 작가들과의 교류를 위해 베트남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 기간 동안에 여러 가지 행사를 가졌는데, 그 중 하나가 문제작 ‘전쟁의 슬픔’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베트남의 소설가 바오 닌과의 만남이었다.
바오 닌(Bao Ninh)은 1952년 1월 18일 베트남 중부 응에 안 성 지엔 쩌우 현 출생으로, 1969년 쭈 반 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7세 때 베트남인민군대에 자원입대했다. 3개월간 사격 등 군사훈련을 받고 인민군 이등병으로 10사단에 배치, 바로 B3전선에 투입되었다. 첫 전투에서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하는 바람에 5개월 만에 하사로 진급한 그는 소대 지휘관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싸웠다.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공수부대와의 치열한 최후 교전 끝에 떤 선 국제공항을 장악했을 때, 살아남은 소대원은 그를 포함하여 단 두 명이었다. 이 전투와 함께 길고도 길었던 베트남전쟁은 끝났고, 그는 전사자 유해발굴단에 참여하여 8개월간 베트남 산하에 버려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한 다음 전역했다. 전역 후 참전 후유증으로 방황을 거듭하다가 응우옌 주 문학학교에 입학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바오 닌의 첫 장편인 ‘전쟁의 슬픔’이 출간되면서 베트남 문학계와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환영과 찬사를 받았고, 베트남 문학 최초로 한국어를 비롯한 16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1991년 베트남 작가 협회 최고 작품상, 1995년 런던 ‘인디펜던트’ 번역 문학상, 1997년 덴마크 ALOA 외국 문학상, 2011년 일본 ‘경제신문’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가 작가의 집을 찾은 것은 4일 오후 9시경이었다. 그는 많은 다과를 차려놓고 아내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 맞았고, 우리를 상대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작가와의 대화는 아맙 베트남 본부장 구수정씨가 주선했고, 통역까지 맡아 진행했다.
* 필자와 화해의 악수를 나누는 바오 닌(사이 - 왼쪽 구수정, 오른쪽 김순이 대표)
구수정 : 먼저 바오 닌 선생님을 소개하겠다. 선생님은 ‘전쟁의 슬픔’이라는 장편소설을 써서 1991년 베트남 작가협회 최고 작품상을 받은 이래, 세계 16개국의 언어로 번역 출판되어 대내외적으로 많은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에 박찬규 씨에 의해 번역 소개된 적이 있고, 2012년에 하재홍 씨에 의해 번역 출판하여 절판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서사적인 장편소설이 드문 시기에 독특한 소설을 써서 유명해진 바오 닌 선생을 소개한다.
제주작가 : 우리는 제주도에서 온 시인과 소설가들인데, 이번에 꽝아이성 작가들과 교류를 위해 이곳 하노이에 왔다가 바오 닌 선생님과 만날 기회가 되어 너무 반갑다. 이 중에는 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은 작가도 있고, 아직 접하지 못한 작가도 있지만 우리를 기꺼이 맞아준데 대해 감사드리며 좋은 얘기 부탁드린다.
바오 닌 : 반갑다. 제가 한국에 많이 갔는데, 제주도에는 못 가봤다. 제가 운이 좋아 소설이 많이 알려지고 한국작가들을 알게 되었고 펜이 많이 생겼는데, 최근에는 젊은 작가들도 많이 찾아온다. 특히 오늘은 저와 비슷한 연배 작가들이 많이 와서 더욱 반갑다.
제주작가 : ‘전쟁의 슬픔’을 쓰게 된 동기는?
바오 닌 : 작품을 쓰게 된 동기 같은 것은 없다. 나는 미국과의 전쟁에 참여한 병사였다. 베트남의 작가 중에는 전쟁에 참가한 작가가 많다. 그 중에는 미국과의 싸움에 대해 쓰고, 가끔 한국군에 대해서도 쓴다. 그러나 보통 미국과의 전쟁 중에 자기가 체험했던 것을 많이 쓴다. 어쨌든 ‘전쟁’이란 것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참혹하고 늘 상처 같은 것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작가들이 찾아온다. 한국의 참전 작가들과도 자리한 적이 몇 번 있다.
제주작가 : 제주도에 한 번 다녀가실 의향은?
바오 닌 : 나는 국내 여행을 좋아한다. 중부인 경우 동쪽이 바다고 서쪽이 산이기 때문에 갈 곳이 많다. 한국도 반도고 베트남도 반도이기 때문에 국토 형태는 비슷하게 생겼다. 베트남 남부에 ‘푸꾸억’이라는 섬이 있는데, 제주도처럼 생겼다. 거기서 섬을 많이 배우고 있다. 제주가 섬이라서 섬사람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 여행을 하는 중에 베트남 사람들을 많이 만날 텐데, 모두 외국인들에게 친절할 것이다.
제주작가 : 북한에도 자주 가나요?
바오 닌 : 작년에 파주에 다녀왔다. 파주가 북한과 아주 가깝다고 들었다. 북한은 아무나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영화제에서 북한 사람들을 몇 번 보았다. 북한은 개방을 안 하고 있어 중국 사람들도 비자를 받아야 간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곳이 북한 대사관과 가까워서 북한 사람들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김일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고, 전쟁기간에 북한과 동맹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남베트남과 동맹관계에 있었던 남한 사람과 싸운 셈이다.
제주작가 : 베트남은 1945년 9월에 독립을 했고, 한국은 1945년 8월에 해방이 되었다. 그런데 혹 그 이후 제주4․3에서 죽은 사람의 숫자와 베트남전에서 죽은 사람의 숫자를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바오 닌 : 제주에서도 학살이 있었습니까? 한국의 젊은이들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텐데, 제주에 안 가 본 사람이 알 리가 없다. 혹 일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
제주작가 : 제가 ‘전쟁과 슬픔’이라는 책을 못 읽어봐서 죄송한데, 앞으로 ‘죽음과 용서’라는 제목의 작품을 쓸 의향은 없는지?
바오 닌 : 사실 제가 전쟁에 대한 작품을 쓰는 이유가 ‘화해’고 ‘평화’를 위해서다.
제주작가 : 지난번에 파주에 왔을 때 제주에 오시겠다고 했다가 못 오신 이유가 작품을 쓰기 위해서였던 것 아닌가요? 탈고 중인 작품이 있다고 들었는데….
바오 닌 : 제가 좀 알려진 다음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초청이 많은데, 절대로 안 간다. (담배 갑을 집어 들고 웃으며)요것 때문이다. 지금은 제가 초청을 받고 수락하는 나라가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가끔 한국에 갔다가 가까운 일본 정도면 몰라도…. 한국에서 초청하면 무조건 간다. 그리고 탈고 중인 작품은 없는데, 사실 그 때는 쓸 것이 있었고, 좀 아파서 핑계를 댄 거였다.
제주작가 : 한국에 가면 좋은 이유가?
바오 닌 : 다녀본 중에 무조건 한국이 좋았다. 한국에 가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제주작가 : 전쟁에 참여했을 때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바오 닌 : 우리 베트남 사람이라면 ‘따이한’이 그 당시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질문자에게)혹시 참전하셨나요? 저는 그때 한국인이 말하는 공산군이었다. 그게 미군이었던 한국군이었던 그 누구였더라도, 우리나라를 침략한 이상 싸울 수밖에 없었다.
* 책에 서명을 하는 바오 닌
제주작가 : 선생님은 처음부터 ‘전쟁과 평화’에 대한 글을 썼고, 앞으로도 계속 쓰길 바라는데, 당시 세계의 지도자들에 대한 생각은?
바오 닌 : 나는 지금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는데, 특히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사실 그 때 전선에서 반대편에 서서 서로 총을 겨누고 싸웠지만, 끝난 뒤에 이 분(파월참전자를 가리키며)과 같이 이렇게 잘 어울려 노는 것, 그것이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제주작가 : 나는 당시 1972년에 파월되었지만 비둘기부대에 파견나간 심리전부대 소속이어서 실제로 전투에 참가하진 않았으나, 어떻든 동료들이 용병으로 싸웠으니 미안하다.
바오 닌 : 괜찮다. 나는 그런 일, 전쟁을 겪어봐서 그 심정을 잘 안다. 나는 오히려 전쟁을 겪고 나서 평화가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과연 인간이 그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의심한다. 아무도 원하지 않아도 전쟁이 생기니까 막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가끔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문학을 하지만, 그래서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는 남한과 북한이 어찌되었거나 한반도의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전쟁은 피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은 마주 봐야, 눈을 마주쳐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내 희망이기도 하다.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나 자신은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전쟁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전쟁을 쓰는 작가는 없다. 전쟁은 상황이었고, 나는 그 속의 인간일 뿐이었다.
제주작가 : 지금 세계에서 한국만이 유일한 분단국가인데,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바오 닌 : 그렇지만 세계는 끊임없이 분열되고 있다. 여전히 벽이 더 생기고 있다. 그럼에도 충돌만은 피해야 한다. 지금 베트남도 중국과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 청년들은 매우 분개하고 있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데, 나도 분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경우에라도 충돌은 안 된다고 본다.
제주작가 : 세계 지도자들이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핵전쟁을 막을 수는 없을까?
바오 닌 : 일본에 갔더니 원자력 발전소 옆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서도 무서워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핵무기를 계속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런 걸로 보면 인간은 우스운 동물이다.
제주작가 : 핵을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쓰게 되지 않을까요?
바오 닌 : 핵은 아무리 조심해도 하나만 삐끗하면 위험하다. 그래서 인류의 양심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은 히로시마에 가서 보고 느껴야 한다. 우리 베트남엔 원자력발전소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문학이 세계 평화를 위해 조그만 힘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나의 희망사항이다.
제주작가 : 전쟁에 참가한 후 작품을 썼는데, 언제 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나?
바오 닌 : 아버지가 언어학자셨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늦게 시작했다. 한 40세가 되었을 때 습작을 시작했으니까. 42~3세 때인 것 같다.
제주작가 : 다른 나라는 안 가도 한국에는 간다고 했는데, 유독 한국작가들과 교류가 많은 이유는? 동족간의 전쟁을 했다든가, 아니면 무슨 통하는 게 있는지?
바오 닌 : 왜 그런지는 딱이 설명하기 힘들다. 처음 한국에 갔을 때, 같은 테이블에 한국 작가들이 많았다. 그런데 초청한 분은 말은 안 통했지만 나를 계속 끌고 다녔다. 그가 프랑스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렇게 안했을 것이다. 그들은 말을 많이 했지만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술이 있어서 나중에는 나도 베트남어로 계속 말을 했고, 그런대로 뭔가 통했다.
제주작가 : 그런데 술 얘기를 많이 한다. 주량은?
바오 닌 : (아내를 보면서) 저어, 나이도 있고…. 이제 많이는 못한다.
제주작가 : 오늘 이렇게 30명이나 방문했는데, 앞으로 우리 제주작가들과 교류할 생각은 없는지?
바오 닌 : 봐라. 우리는 이미 친구다.
제주작가 : 베트남에 와 보니까 한국 드라마, 아이돌 그룹이 TV에 많이 나오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바오 닌 : 나는 TV를 잘 안 본다. 하지만 파주에 갔을 때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는 느낌이 참 좋았다.
제주작가 :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의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바오 닌 : 내가 한국에 갔을 때 호텔에 묵었는데, 거기 유명한 가수가 오니까 그 주변에 꽉 몰렸다. 젊은이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젊은이도 일본 문화를 좋아하더라.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다. 그냥 ‘아름다운 인간’, 이런 것에 관심이 있다.
제주작가 : 역설적으로 선생님의 명성은 전쟁 덕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쟁이 아니었으면 어떤 얘기를 썼을지?
바오 닌 : 나는 그 얘기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사실 어떤 상황에 이끌리는 그런 이야기를 썼을 뿐,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전쟁이 아니었으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전쟁’이라고 해서 다시 말하지만, 사실 ‘전쟁’을 쓰는 작가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전쟁은 하나의 상황이었고, 나는 그 속에 있는 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후에 그의 저서에 사인을 받으며 단편적인 얘기가 오갔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다과를 권하며 대화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고, 끝나서 밖으로 나와 우리가 차에 전부 탈 때까지 배웅했다. 끝으로 그의 장편 ‘전쟁의 슬픔’ 중 한 대목을 옮기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쓰러져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 그러나 끼엔이 살아남은 대신 이 땅에 살아갈 권리가 있는 우수하고, 아름답고, 누구보다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쓰러지고, 갈가리 찢기고, 전쟁의 폭압과 위협 속에 피의 제물이 되고, 어두운 폭력에 고문당하고 능욕당하다 죽고, 매장되고, 소탕되고, 멸종되었다면, 이러한 편안한 삶과 평온한 하늘과 고요한 바다는 얼마나 기괴한 역설인가.
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들여다보고 성찰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제주작가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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