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제주어 글

황금녀 시 '이녁 이녁은'

김창집 2016. 5. 19. 09:18



♧ 이녁 이녁은 - 황금녀

 

름 하곡, 돌 하곡, 여도 한한

제주 땅에

도 굶는 백봄인

아방 엇인 애기 업어

드릇 캐어당

물읏에 톳 아당

제우 입 구입멍 살앗수다

문 보릿고고리 비여당 먹으멍 살앗수다

보리태작 기 전인

대우리도 ㅂ아사

느량 벤작부리는 장마 전이

도께질 멍, 시락도 불리멍

보리장만 영 나사민

보리남뎅이 불 앙 와닥닥 와닥닥

보리 볶앙 보리개역

주레 불단 아으덜도 튼내졈수다

비야 비야 훍은 비야 오지 말라

우리 집 마당에 중트멍 물 람저

물게끔이 부글부글

ㅇ글렉이 

보리낭께기 걲엉

삐리 삐리 삐삐리

하늘님 고맙수뎅

주레 불게 주레 불게

앞집이 복둥인 앞니 빠젼 못 불켄

윗집이 순둥인 웃니 빠젼 못 불켄 하하하하

보리개역 먹은 우리 아신 베봉텡이

꿩마농 먹은 우리 누인 꽝줄레기 하하하하

주레불단 생완덜

보리 볶을 때 다사단 아으덜

축엇이 아방 닮은 아으덜

이젠 온 백이 다 뒈어 감수다게

쉐질메엔 보리 바리 시끄곡

등지게 멜라지지 안 만이 보리뭇 지영

우끗우끗 들어오단 이녁

일흐 남은 진진 세월

사 무싱거에 푸껌수과

보리밧 로질러정 것신 왐직도 이녁

        (황금녀 시집 ‘베롱 싀상’, 도서출판 각, 2016.)

    

 


□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도 많은 땅/ 제주 땅에/ 닭도 굶는 보릿고개에/ 아빠 없는 애기 업고/ 산나물 캐어다가/ 무릇에 톳 뜯어다가/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살았습니다/ 덜 여문 보리이삭 베어다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보리타작하기 전엔/ 메귀리도 뽑아야 하고/ 늘 변덕부리는 장마 전에/ 도리깨질 하면서, 까끄라기도 날리며/ 보리장만 하고 나면/ 보릿대로 불 때어 와닥닥 와닥닥/ 보리 볶아서 보리미숫가루 만들 때/ 보리피리 불던 아이들도 생각납니다/ 비야 비야 굵은 비야 오지 마라/ 우리 집 마당에 거품 일며 물 고인다/ 물거품이 부글부글/ 물방울 동동/ 보릿대 꺾어서/ 삐리 삐리 삐삐리/ 하느님 고맙다고/ 보리피리 불자 보리피리 불자/ 앞집에 복동이는 앞니 빠져 못 불겠다고/ 위집에 순둥이는 윗니 빠져 못 불겠다고 하하하하/ 보리미숫가루 먹은 우리 아우는 배불뚝이/ 달래 먹은 우리 누인 홀쭉이 하하하하/ 보리피리 불던 녀석들/ 보리 볶을 때 지켜 서던 아이들/ 영락없이 아빠 닮은 아이들/ 이제 온 백이 다 되어갑니다요/ 소 길마엔 보리 한 바리 싣고/ 등지게가 부서지지 않을 만큼만 보리 묶음 지고서/ 사뿐사뿐 들어오던 당신/ 70 남짓 긴긴 세월/ 설마 하니 무엇에 부칩니까/ 보리밭 가로질러 얼른 올 것도 같은 당신(제주어 대역, 김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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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녁 : ‘자기, 자신’이란 뜻의 1인칭이지만, ‘당신’과 같은 2인칭으로도 씀.

*백봄 : 먹을 것이 다 떨어져 견디기 힘든 봄. 보릿고개.

*중트다 : 비가 올 때 거품이 일어 큰 방울이 생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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