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칠석날에 보내는 누리장나무 꽃

김창집 2018. 8. 17. 00:53

2


4절기에 들어가진 않지만

칠월칠석날.

 

올해는 윤달이 들어서인지

칠석날은 좀 늦은 것 같은 분위기

어렸을 때는 칠석날엔 꼭 비가 온다고 했었지.

 

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열대야가

오늘 비가 조금 내려도 해소되지 않더니

문을 꼭꼭 닫고 나니, 여전히 에어컨을 켜야 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열대야와 폭염.

이번 이 더위가 끝나면

마음 놓고 돌아다녀 보리라.

   

 

 

칠석(七夕)에 내리는 비 - 강세화

 

이승이 저승 같아서

그리움은 길길이 자라고

낮은 음성이 애틋하게 내립니다

철렁철렁 흐르는 물은 가슴에 넘칩니다.

 

조바심에, 조바심에

베틀소리도 밀쳐두고

오작교 서두르는 더운 숨이 오죽할까

만나자 이별인 밤이 아득하게 젖습니다.

 

서러운 내력인데

잊을 수는 없습니다

멀찍이 퍼지는 그늘을 환하게 여기면서

사분사분 느끼는 정이 눈물처럼 고였습니다.

 

  

 

견우의 포효 - 미산 윤의섭

 

숲속의 뻐꾸기 울음소리 그치고

흰 구름이 두둥실 그려지는 하늘에

여름내 목욕한 별이 뜨겠지

 

바람 타고 오려나

백마 타고 오려나

은하수 건네주는 오작교 놓고

견우와 직녀 격정의 만남

 

여름내 뜨거웠던 그리움의 연정

직녀의 가슴이

터지는 듯 부푼다

 

칠석의 별이 뜰 때

견우의 포효

만남의 기쁨이

사랑의 불꽃 되어

 

두리둥실 한 몸 되어

합창의 노래를 두둥실 부르련다

 

두 몸이 하나 되어

놓지 않을래!

두 몸이 하나 되어 놓지 않을래!

 

 

 

어정칠월 - 권오범

 

휘황찬란한 도회지에서

너나없이 유리걸식하는 세상

밤낮 분간이 어려워

매미들 사랑노래 따라 가출한 잠

 

두레풍장 소리 잊고 살다보니

칠석날 하늘마저 맨송맨송해

견우직녀 눈물의 상봉도 없는 것 같아

얼큰했던 늴리리쿵더쿵 시절이 그립다

 

배동바지부터

장마와 열대야가 번갈아 쥐어짜

물퉁이 되어 건너는 성하의 강에

징검돌처럼 놓인 입추 말복

 

어정버정할 수도 없는

현대판 머슴살이

처서가 더위 팔아버리고 나면

소문처럼 모기 입이 삐뚤어지려나

   

 

 

머슴 - 권달웅


  칠석날 낙동강에 은하수가 걸리면 안동포 백 필이 머슴의 가슴에 널리더라. 숨어 울던 새댁아, 시퍼런 강물에 안동포 흔들어 빨고 살아온 한이 까마귀떼 울음으로 사무치던가. 등급은 허리로 남도 수심가를 부르는 머슴아, 오늘은 물고기떼 새까맣게 몰려와 네 울음 칠성판에 흩어주고 있다.

   

 

 

첫사랑 - 차성우

 

칠월칠석날

견우가 직녀를 만났을 때도

바람 부는 밤하늘 별들처럼

가슴이 울렁거렸을까요.

 

달빛이 감나무에 흐를 때까지

콩닥거리는 가슴은 모른다 했지요.

 

아침 햇살이 풀잎에 맺힐 때까지

기다리라 했지요.

 

약속은 하지 말아요

사랑은 언약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오월 단오날

춘향이 이도령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토록 마음이 떨렸을까요.


우리들 목숨이 다한다 해도

이별이 우리를 가른다 해도

이토록 떨리는 사랑의 노래를 

들어만 주세요. 


약속은 하지 말아요

사랑은 언약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세상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리운 곳으로 나 돌아가고파 - (宵火)고은영

 

나 돌아가고파

숲의 정수리 햇살 머금고

물총새 날갯짓 하늘을 꿈꾸는

어둑한 대기와 푸른 안개 정원

물오른 생명의 순결한 서약

신비로 영원히 머무는 곳

 

,

이슬비 소리 벗 삼아

수런거리는 굵은 줄기 나무들

천년을 버티다가 단비를 마시는 목젖으로부터

그 목젖으로부터 새움이 돋는 곳에 이르면

녹색의 살 같은 분분히 날리는 바람 한 올

흐르는 강물에 부유하던 찬란한 꿈을 묻던 시간

툭툭 터지는 숲의 환희로 나 돌아가고파

 

청명한 별빛으로 등불 삼고

은하수 다리를 건너 365일 칠월 칠석의 해후처럼

멍든 가슴으로 밤새 눈물 흘리던

첫 사랑 가난에 배곯아 서럽고

초라한 그리움이 신작로를 휘적거리며

지구 바깥, 이방의 거리를 배회해도

설렘 한 삼태기 부화하는 날

 

수치도 모르고 알몸으로 여름내 바다에 물장구치던

오줌싸개 시절로 돌아가고파

그 시절로 돌아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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