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시詩' 11월호의 시 - 2

김창집 2018. 11. 17. 12:27


위로慰勞 - 김홍식

 

한 줄기 바람이 지나면서

마른 상처내고 갈라진 질경이

풀뿌리 속내까지 들어와

괜찮은지 아프지 않은지

어루만지면서 물어 본다

그래서 슬픔은 얼굴 깊이 숨기고

아픔은 가슴속에 담아 감추어야 하는 것

스스로 토닥거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도리사桃李寺 - 이순향

 

허위허위

고개 넘고 일주문 지나면

 

이천 살쯤 됨직한

아도화상이

지금도

태조산 아래 선방에서

복사꽃등 밝히고

부처님 기다린다

 

삼층석탑 위에 걸린

구름도 덩달아

가는 길 멈추며 합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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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사 : 신라 최초의 가람. 불교 공인 전 고구려 아도화상이 창건. 복사꽃이 아름다워

              태조산 아래에 창건했다 함.

 


 

 

가을 석남사* - 채영조

 

11, 누군가 온 산에 불을 질러 놓았다.

천년을 지켜온 부도浮屠의 자비는

신라의 향수에 젖고

숱한 비바람에 파인 바위는

날마다 새로운 물줄기를 만나며

이제 사람들의 역사가 되었다.

이 가슴 저 가슴 담아온 소망은

여기 돌탑으로 군데군데 섰으나

그 애한哀恨 쉬이 풀지 못하니

멀리서 비구니의 합장만이

애절히 들려온다.

가을을 태우는 낙엽 냄새는

하늘에 수놓은 감나무를 향하고

내 가슴 사랑으로 불탄

가지산 단풍은

해 기울어 길게 그림자를 남긴 채

어디론가 숨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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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위치한 절.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계 - 김혜천

 

언 땅이 녹고

 

전잎 제치고 올라오는 황새냉이 어린 싹

 

뿌리식물은 주변을 넓게 돌려 판다

 

중심뿌리도 없이

 

물길을 감지하며 뻗어나간 뿌리줄기들

 

땅 속에 넓은 지도를 그려놓았다

 

분열증적 에너지로 모든 경계와 구분을 전복 시키며

 

혹은 방향으로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고 있었다

 

머물러 있지 않는 유목민처럼

 

고원을 넘고 넘고 넘고 있다

 

숨 쉬고 먹고 노래하고 쓰고 달리고

 

종착역도 시발점도 없는 선들을 그리고 있었다

 


 

 

둥구나무의 독백 - 남대희

 

장점은 무수한 혀가 있다는 것

혀만큼 세상을 맛볼 수 있다는 것

 

휘파람을 불고 노래하고

집을 짓고 연애도 했어

 

숭숭한 몸집은 세월만큼 부풀었지만

어둠이 골목을 숨길 때까지

떠나간 새들은 돌아오질 않았어

 

구름이 걸터앉고 간혹 무지개가 놀다 가는 날엔

희망 같은 시간이 서산에 환하게 걸리고

붉은 노을이 가지가지 빨갛게 열리기도 했어

 


 

 

메이슨 호수(Mason Lake)*의 산안개 - 김영호

 

하늘에서 내려온 안개가

나무들을 포옹하고

호수를 포옹하고

사람들을 포옹하니

모두가 한 몸이 되었네.

한 몸 되어 성음(聖音)의 합창을 불렀네.

 

안개 속에서

삼라만상이 한 몸이 되고

내가 우주와 한 몸이 되었네.

한 몸 되어 평화의 찬송을 불렀네.

 

안개는 만인이 한 형제임을 깨우치는

성령의 날개였네.

성령의 날개 안에서

우주 만물은 한 가족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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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슨 호수 산 : 시애틀 동쪽에 위치한 산.

 


 

 

구름발 - 채 들

 

나비를 따라다니고 구름에 휩쓸려 다니다 지쳐 주저앉았네

어지러워라

 

수수 날을 휩쓸려만 다녔으니 어디 뿌리내릴 새가 있었나

 

주저앉은 자리에서 들여다 본 겨울엔

또다시 무언가를 따라나서야 하는데, 무리 지어 가야하는데 하는 눈빛이

 

저도 모르게 훌쩍 거울 너머로 와 목을 감네

불안이 불안을 꼭 껴안네 목을 조르네

 

, 호주머니에 사는 새 날아오르며 우는 소리에 천지가 찢어지네

 


 

 

새들의 기도 - 김희진

 

겨울 숲에 울음을 몰고 새들이 돌아온다

 

나무는 새 한 마리를 갖게 된다

 

열매도 잎도 없는 몸속으로 새의 울음을 들인다

 

나무의 고요를 깨운 새의 울음은

 

허기지는 저녁, 기도소리로 번진다.

 

 

 *월간 우리시201811월호(통권 제365)에서

 *사진 : 가을의 열매들 1. 참회나무 2.산딸나무 3. 굴거리나무  4. 낙상홍 5. 죽철초

   6. 야광나무 7. 말오줌때 8. 작살나무 9. 마가목  10. 까마귀밥여름나무 11. 남오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