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월 16일 수요일 맑음
전날 하루 종일 순천에서 짙은 미세먼지에 시달리고 나서
밤에 일기예보를 보니, 무등산엔 영하 9도의 날씨에
엄청난 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보에
걱정을 하다 나가 소주 몇 잔 마시고 잠을 청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예보와 다르게 눈도 멈췄다.
간단히 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무등산으로 가는데
차창 밖으로 막 떠오르는 태양이
무등산 위로 솟아오른다.
우리가 태운 25인승 버스는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원효사 앞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산정을 바라보니, 천왕봉이 허옇게 상고대가 끼어있어
모두들 쾌재를 부르며, 국립공원 원효분소 등산길로 들어섰다.
산 북쪽이라 응달진 등산로에는 어제 내린 눈이
하얀 카펫처럼 얇게 쌓여 길을 밝혀 걷기에 편했고,
추울까봐 괜한 걱정을 했다 싶을 정도로 바람 한 점 없다.
꼬막재까지 2km는 비탈이 별로 심하지 않고
주변 풍경도 단조로워서
우리는 가볍게 나무 이름도 맞춰보고
날씨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다.
듬성듬성 소나무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굴참나무도 제법 많고 아직 열매를 매단 굴피나무도 보인다.
나머지야 때죽나무나 비목나무, 단풍나무 등속이겠지만
제주에서는 보기 힘든 수피가 얼룩인 노각나무 이름을
알아내는데는 한참 걸려야했다.
꼬막재 주변에는 심은 지 2, 30년 정도 되었음직한
편백나무 숲이 있어 ‘조금 아래쪽에 있었다면
여러 모로 활용할 텐데.’ 하며 지나친다.
꼬막재에서 억새평전까지 1.2km는 길이 좋아
일사천리였고, 조금 시기가 늦었지만 억새 사이로
400m를 걸어 신선대 갈림길까지 걸어가
신선대를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돌아선다.
앞에 보이는 높은 산은 북봉일 터지만,
우리는 그보다 규봉암에 들르기 위해 남쪽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이쪽은 어떻게야 너덜이 많은지
너덜 돌들을 가져다 짜 맞춘 울퉁불퉁한 길을
2.3km 걸은 뒤에야 규봉암에 다다랐다.
♧ 규봉암(圭峰庵)을 안은 광석대(廣石臺)
바위 모퉁이를 돌자 눈앞에 나타나는 웅자(雄姿)!
무등산 3대 석경(石景)의 한 곳인 광석대가 품은 규봉암이었다.
규봉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본사 송광사 말사라고 한다.
‘無等山圭峰庵’이란 편액을 매단 종각(鐘閣)을 지나
동그란 문으로 들어가 보니,
왼쪽에 기도를 위한 단을 설치했고,
바위 아래 왼쪽으로부터 삼성각과 관음전을 비롯한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마당을 만들기 위해 조금 여유를 두고
거대한 석벽을 쌓은 것만 해도
상당한 역사(役事)일 듯싶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고
원성왕 14(79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순응대사(順應大師)가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서석대․입석대와 함께 무등산을 대표하는
해발고도 약 950m에 자리한 수십 여의 주상절리대는
화산폭발시 분출된 화성쇄설물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 이루는 암석은 무등산 안산암질 응회암이란다.
♧ 규봉암에서 장불재로
떨어지기 아쉬운 발길을 돌려 다시 장불재로 향한다.
참 돌은 흔한 곳이어서 가로세로 놓인 돌을 밟고 나자
앞이 환하게 트인다. 지공너덜이라 했는데 거기서 바라보는
길쭉한 능선은 안양산으로부터 철쭉군락, 백마능선,
낙타봉이 이어진다고 안내판에 썼다.
장불재까지는 1.8km라는데, 매트가 깔린
좋은 길도 간혹 나오고 다시 너덜지대였다가
하면서도 전망을 볼 수 있어 지루하지가 않다.
얼마 없어 안테나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입석대가 나타난다.
장불재는 ‘동국문헌비고’에 ‘장불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장불동’이라 나온다. 용추계곡의 긴 골짜기를 ‘긴골’
즉 ‘장(長)골’로 부르고, 그 골 위에 있는 고개라 하여
‘장골재’라 부르던 것을 ‘장불사’가 생기면서 ‘장불치’라
써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은 서석대, 광석대, 안양산,
중머리재를 이어주는 중심지이고, 광주광역시의 전경과
무등산 정상부의 주 경관인 주상절리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커다란 안내판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5월 19일에 올라
“아! 참 좋다.”라고 쓴 글씨와 몰려든 사람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썼다.
‘좀 더 멀리 봐 주십시오. 역사란 것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보면 보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쫓는 사람과 대의를 쫓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의만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고 눈앞의 이익을 따르면
영리해 보이지만 멀리 보면 대의가 이익이고, 가까이 보면 눈앞의
이익이 이익입니다.’라고.
♧ 장불재에서 입석대(立石臺)로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로 입석대를 향해 걸어간다.
이곳은 억새 벌판이었다가 차차 숲으로 천이되고 있는 중이라
짧은 싸리나 국수나무 같은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는 중이다.
입석대 못 미쳐 왼쪽에 수십 그루의 구상나무가 늘어서 있다.
수령(樹齡)은 30년 전후 같아 보이는데,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간다는 이 나무는 소나무과 식물로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남부 고산들 같이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만 만날 수 있다.
이어 나타나는 입석봉은 사진으로 여러 번 보았지만
정말 멋있는 주상절리대다. 이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중생대 백약기 후기인 약 8,700만년에서 8,500만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하면서 지표에 쌓인 화산재가 굳어 이루어진
석영안산암응회암이 냉각되면서 수축하여 발달된
지질구조라 한다.
700m 이상의 고도부터 정상까지 이 산 전역에 걸쳐 분포하는
주상절리대는 총 3회의 화산분출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두 번째 화산분출에 의해 형성된 주상절리대가 가장 두껍게
무등산에 분포하고 있다고 안내판에 썼다.
너무 가까이 거대한 돌기둥이 박혀 있어 카메라에 다 들어오지
않아 부분적으로 찍어 보다가 파노라마를 이용해야 했다.
이 경이로운 지질경관인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2005년
12월 16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12월 10일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되어
보호받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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