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탱고의 발상지 아르헨티나 ‘라 보카’

김창집 2019. 4. 22. 22:31


탱고의 발상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 보카

 

6일째 되는 날(318) 아침

이과수폭포로 떠나기에 앞서

5월 광장에서 남쪽으로 약 30분 거리의

라 보카지역을 찾았다.

 

차에서 내리니,

바로 앞집 2층 베란다에서

이곳 프로축구구단 보카 주니어스소속이었던 마라도나를 비롯해

탱고의 황제 칭호를 받은 까를로스 가르델,

1940년대 아르헨티아 국민 영웅인 에비타가 정중히 우릴 맞는다.

 

평범한 시골동네 느낌이 드는 골목길에 들어서니

이곳저곳 벽에 그림이 그려지고, 작품들이 붙어 있다.

 

이 아름다운 항구 마을 라 보카

1830년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들이 대단위로 이주, 정착한 곳이다.

가난한 그들은 부둣가 주변에 작은 집들을 짓고 살았는데,

선박에 일을 하며 쓰다 남은 페인트로 집을 칠한 것이

지금 알록달록한 원색의 동네가 되었다는 얘기다.


 

1536년 처음 상륙한 스페인 사람들,

1830년 제노바에서 대규모로 이민 온 이탈리아 사람들,

그리고 그리스, 동유럽,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등에서 온 이민자와

그 후손 크리오요, 아프리카 흑인노예가 합류하여 이룬 도시다.

 

아침이어서 여행객들은 많이 없고, 가게도 아직 열지 않았으나

강렬하게 원색으로 칠한 집들과 카페와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서 있고

틈 있는 곳마다 예술품과 탱고를 추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밤이면 관광객을 불러 모아 탱고를 연주하는 거리 예술가들과

탱고를 추는 사람들, 그리고 그림을 팔려는 사람들이 어울려

불야성을 이룬다 하나 갈 길이 먼 우리는 그림의 떡이었다.

 

여기 탱고에 대한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편에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곁들인다.

    

 

 

유리잔, 너를 안고 탱고를 춘다 - 최범영 

 

너의 초롱이는 눈 너머 눈물

나의 몸 속에 재두고파

입맞춤으로 너를 범함에도

아무렇지 않게 날 받아주는 너에게

구름 위를 날자 탱고를 청한다

계룡산 흐르는 맑은 물 소리에 맞춰

조금씩 너를 내 속에 끌어들이며

볼에 입맞출 때마다 오는 해오름 잔치

또 쏴 하고 밀려가는 파도소리

네 눈에 되비쳐오는 그윽한 빛살

부풀어 오르는 가슴에 불을 지르며

열정이 흐느낄 때마다

난 널 안고 돈다

되풀이되는 입맞춤

네게 비친 내 영혼의 무게를 재고는

짜장 떠오르는 번개 같은 오르가슴에

세파에 찌들린 번뇌를 흩날린다

헤어져도 군말이 없는 너에게

안녕을 고한다

헤어짐 속에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니

 

    

 

미조*, 그 밤의 幻夢 - 김경윤

 

남해 붉은 물마루가 눈썹에 걸렸다, 굽이굽이

이마에 와 닿는 바다, 내 여자의 고운 미소처럼 잔잔한

그 바다 끝 어디에 있다는 미조, 너에게 가는 길

구불구불 누워있는 어두운 길목마다 발목을 끄는

이국 여인의 이름을 닮은 모텔과 카페들보다 더 아름다운

미조, 너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면

부드러운 두 입술이 만나 입안이 황홀하게 열리고

짭조름한 첫 키스의 추억이 혀끝에 묻어 날 것만 같은

미조, 너에게 가는 그 밤, 멀고도 먼 그 길 위에서 나는,

내 마음은 차안에 흐르는 탱고에 젖어 기타줄처럼 탱탱해졌느니

미조, 한 번도 본 적 없는 너를 생각하는 동안

낯설은 밤길을 밝히는 붉은 전조등보다 마음이 먼저 뜨거워졌으나

세상의 모든 꿈이 그렇듯이 꿈은 부질없는 것이어서

꿈길 같던 시간을 지나 그 바다의 끝에 이르렀을 땐

미조,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미소로 날 맞아줄 女子는 어디에도 없고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막 내려 온 늙은 보살의 치마폭 같은 포구

미조에는 경산도 촌놈 사투리 같은 파도소리만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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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조: 남해군에 있는 포구 이름

    

 

 

라깡과 함께 탱고를 - 강순

 

  헤이, 무슈 라깡!*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더 인정받고 싶어 상대를 더 큰 욕망의 회로(回路) 속으로 밀어 넣는다고 하셨지요.

 

  그래요, 내게 끔찍한 걸 일깨워 주신 무슈 라깡!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외로워하는 것은 끝없이 욕망을 퍼 올리려 하기 때문이란 걸 난 미처 몰랐어요. 그 강물을 퍼 올리지만, 달은 언제나 강물 속에만 있기 때문이란 걸 나는 몰라요. 나는 정말 강물로 달을 퍼 올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사랑에 대해 모든 걸 다 아는 듯 말했던 당신,

  오늘밤엔 모든 것을 잊고 춤을 춰 봐요. 음악이 흐르는 잔잔한 강물, 그 잔물결을 밟고 춤을 춰 봐요. , . 잘름잘름 흔들리는 물결 위로 피어나는 무수한 풀꽃들, 저만큼 들다람쥐가 다름질을 쳐서 풀꽃 뒤에 숨네요.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무슈 라캉!

  오늘은 욕망이란 단어를 잊어 버리고, 발바닥으로 캉캉 마루 바닥을 굴러 봐요. 방금 춤을 추었던 풀꽃들이 거실 가득 흩어지네요. 흩어지는 풀꽃들은 제 향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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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슈 라깡 : 욕망이론으로 유명한 파리 태생의 정신분석이론가

    

 

 

탱고는 혼자 추지 못한다 - 이규옥

    -꽃피는 여자

 

 급기야 안전지대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 인적이 끊긴 밤, 눈 내리

는 환상도로에서 살얼음 딛듯 차를 몰고 가는 여자불현듯 도로변에서 누

군가 다가선다앞유리 쪽으로 넌지시 꽃을 내미는 남자붉은 동백꽃 한

송이놀라움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순간 설핏 눈이 마주친다 낯선 듯 낯익

은 얼굴남자에게서 나지막한 소리가 흘러나온다나는 살아당신은

여자는 차창을 내리지 못한다 창밖의 어둠이, 정적이 두려워눈 속에 핀

꽃 한 송이, 건네 받지 못한다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여자는 무심하다는 듯

눈길을 미끄러져 간다 꽃보다 더 붉게 얼굴 붉힌 채 지나쳐 간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새삼 주의 문구를 상기시키는

사이드미러를 통해 여자는 남자를 곁눈질한다눈 속에 핀 꽃 한 송이, 뒤따

라온다 그림자같이 따라붙어 백미러 속으로 들어선다 여자의 뒤통수에서 소

리가 들린다난 살아 있어요 이렇게 숨 쉬고 있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칫 놀란 여자는 미끄러진다 눈같이 하얗게 질린 채 눈길에서 맴돈다

  꽃을 든 남자는 제자리에 안착한다 여자의 배꼽 속에 동백꽃 한 송이 뿌리

내린다 코브라가 꼿꼿이 늑골을 곧추세우듯 수시로 꽃대를 올려 명치끝을 툭,

, 건드린다 끝내 머리끝에서 꽃봉오리를 피워 툭, , 뒤통수를 친다 당신은

살아 있나요? 숨 쉬고 있나요?……

 

  환상도로에 사시사철 눈이 내린다 대설주의보는 수시로 내려진다 눈처럼 흰

여자에게 꽃을 든 남자, 붉은 동백꽃 한 송이 내린다당신도 살아 있나요?

리는 함께 숨 쉬고 있나요? 당신과 나는 한 몸인가요?…………


 

 

- 송정숙(宋淑)

 

비 오는 날

새벽녘 비틀거리던 여인네 입술

밤 내 쏟아낸 말이

푸른 단풍나무 몇 잎 물들였다

 

가을하늘을 유난히 좋아한 아버지

기러기 날면 고개 떨어져라 젖히고

점점이 사라지는 모습에 눈길 거두지 못하며

마르지 않은 어린시절을 주워 담는데

내 바구니는 왜 늘 비어 있을까하더니

한 점 살 한 방울 피 모두 기다림으로 거두고

그렇게 갔다

 

연대 앞에서 적당한 상념에 잠겨 걷다보면

연희동 341-19번지

통금에 걸릴까

총알택시를 타고 날라 오면

계단에 앉아 있다 야단을 치던 엄마

술을 좋아한 아버지가 언덕에 심어 놓은 개나리

지금도 노랗게 피고 건너편 성당 그 모습 그대로

제일 식품 간판만 남기고 간 뚱뚱한 아줌마

변함없이 뜨는 해처럼

제일 식품으로

그 자식들이 장사를 한다

 

거울 앞에 서니

눈빛이 닮았고 코가 닮았고

초승달이 뜨면 어쩔 수 없이

한 잔 하는 것도 닮았다

탱고를 좋아 하는 것도

가끔 낯 설은 말투로 웅얼대는 것도

지애비를 닮았다며 긴 한 숨 짓던

목련꽃 지는 봄밤의 이별

    

 

 

그림이 추는 춤 - 목필균

    -김계자 화백 작 <탱고>를 보고

 

아르헨티나 거리에서 만난 탱고가

미술관에 걸려있다

 

춤이 벽이 걸려있는데 눈이 흔들린다

골목 벽화 속 남녀가 거리로 나섰다

빨간 드레스 여인도 정장 차림 신사도

마음을 끄는 몸짓에 장미꽃이 된다

진한 장미 향기가 손끝에 전해진다

 

춤이 어려운 사람이 춤을 만나고

그림이 쉬운 사람이 춤을 그리고

그림이 어려운 사람이 그림을 만나고

그렇게 탱고는 태평양을 건너왔다

 

아르헨티나 거리에서 만난 탱고가

그림에서 뛰어나와 춤을 춘다

미끄러지듯 눈빛이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