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단상

김창집 2019. 7. 9. 22:32

* 곳곳에서 만나는 리우의 상징 사진(위 : 슈가로프 산, 아래 : 예수상)


2019320일 수요일 맑음

 

  이과수 공항에서 10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두 시간을 날아, 리우 데 자네이루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줄여서 리우는 1822부터 1960년까지 138년 동안 브라질의 수도였다.


  지금은 브라질리아에 수도를 내주었지만리우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구 반대쪽에 있는 브라질의 수도이자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외웠을 만큼 상상 속에 남아 있는 도시다.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땅위에 발을 디디면서 긴장할 법도 한데, 이과수폭포에 감탄사를 다 내려놓고 온 때문인지 큰 감동은 없었다.


* 슈가로프 산에서 본 리우 시가지와 해변 풍경(아래의 사진들도 같음)


  마이크를 잡은 가이드 문대찬 씨가 남아메리카 남동부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리우는 15021월 포르투갈 항해사에 의해 발견될 당시, 만()의 입구를 강의 어귀로 착각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면서 포르투갈어로 리우는 ’, 자네이루는 ‘1’이라고 설명한다.

 

빈부의 차이가 심해

 

  남회귀선 부근에 위치한 도시여서 그리 덥지는 않았지만(연평균 기온 23C) 가는 곳마다 우거진 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600만이 사는 도시라 복잡하기도 하다. 남쪽은 과거 주택가였는데, 이주해온 부유층 주거지로 성장하여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변했고, 도시빈민들은 저쪽 산동네 슬럼지역에 거주한단다.



  유럽에 가서도 날치기나 소매치기에 조심하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어왔지만, 이곳 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가이드가 기회 있을 때마다 소지품과 여권의 간수를 강조한다. 작년 남아공에 갔을 때도 그랬지만 어딜 가서도 도시빈민층이 문제라는 것이다. 브라질도 남미대륙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정치가 안정이 안 돼 있어 부익부 빈익빈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1533년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위도 상으로 15씩 잘라 12명의 개인에 양도하는 한편, 1549년에는 총독을 임명해 다스리게 했다 한다. 가이드는 1808년에는 프랑스의 침공을 받은 포르투갈 왕실이 이곳 리우로 옮겨와 1814년 나폴레옹의 실각에도 왕이 귀국하지 않고 있었는데, 1820년 포르투갈에서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나 의회에서 귀환을 요구해서야 주앙왕이 페드루 왕자를 두고 귀국했으며, 의회에서 다시 왕자의 귀국을 종용하자 18229월에 왕자가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한 뒤 남아 집권했다고 한다.

 

리우 어디서나 보이는 예수상

 

  리우 관광의 상징인 코르코바도 언덕의 예수상은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710m 절벽에 세운 높이 30m, 양팔의 길이 28m의 거상(巨像)이다. 때문에 산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평평한 도시 어느 곳에서도 잘 보인다.


 

 우리 일행은 대형 버스를 이용하여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마라까낭 축구경기장으로 옮겨 앞에 세워진 펠레 상을 보고 나서, 경기장 외관을 둘러본다. 펠레 상 앞에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한 선수가 볼을 가지고 재주를 부리고 있다. 450개의 프로축구 팀과 1만 명이 넘는 프로 선수들이 뛰고 있다는 브라질의 축구, 그 열정과 축구 인구가 있기에 어딜 가도 기죽지 않고, 혹 억울하게 졌을 때는 축구전쟁까지 불사하는 것이리라

 


  마라까낭 경기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삼바축제의 현장인 삼보드로모가 있었지만 축제기간이 아니어서, 거리 곳곳에 있는 관중석(위 사진)을 바라보며 가이드의 설명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을 지나쳐 슈가로프 산에 올라 리우 시내와 해안을 관망했다. 아름다운 해안과 시가지가 잘 어울린 것이 왜 미항(美港)이라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2019321일 목요일 맑음

 

  아침에 눈을 뜨자 호텔 앞에 펼쳐진 코파카바나 해변을 외면할 수 없어, 룸메이트와 함께 나가서 걸어보기로 했다. 전날 가이드 문대찬 씨가 해변에 나가려거든 지갑과 여권을 맡기고 가라던 말이 떠올라 지갑을 두고 나갔다.



  코파카바나 해변은 시내에 위치한 모래밭으로 그 길이가 약 6km에 이르는데, 브라질의 대표적인 해변으로 연말에 대규모 폭죽축제와 음악 행사가 열리며, 2월에는 카니발이 그 끝을 장식한다. 길 건너로 고급 주택가에는 호텔이 즐비하고, 바다 쪽엔 곳곳에 야자나무가 늘어서 있다.

 


 조금 걷다 보니 한 곳에 모래를 쌓아올려 바다에서 일광욕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브라질 국기를 꽂은 다음 코르코바도 예수상을 세운 곳이 있어 사진을 몇 컷 찍고 지나가는데, 뒤에 따라오던 룸메이트가 그곳에 있던 사람과 말을 주고받는다. 아무래도 돈을 요구하는 것 같아 가서 지갑을 안 가져왔다는 시늉을 했으나 안 통한다.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그럭저럭 그곳을 벗어나 야자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조금 걷는데, 이번에는 어른들이 모여서서 박수치며 노래를 부른다. 언뜻 보니 생일 케이크를 들고 있어 같이 노래 부르며 축하해 주고 나서 돌아서서 바닷가로 걸어 돌아온다. 오다가 한국인 부부 관광객을 만나 인사를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어주며 서로를 격려했다. 지구 반대쪽에서 고국 사람을 만나니 괜스레 반갑다.

 

보고 싶었던 예수상과의 만남

    

 

  아침을 먹고 차를 작은 차로 갈아탄 다음 코르코바도 언덕으로 갔다. 710m 언덕을 어느 정도까지 오르려면 좁은 골목길을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이다. 마침 날씨가 맑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서 예수상을 보았다. 좁은 공간에 인증 샷을 찍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다. 그런 와중에도 드러누워 찍는 사람이 있어 나중에 보니, 팔을 들고 예수상의 손을 맞잡은 것처럼 찍는 것이란다.



  오는 길에 중앙성당에 들렀다. 성당은 피라미드 형태로 된 특이한 형태였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성당과는 영 다른 모습이었다. 높이가 106m라는데 속에 기둥이 없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며, 천장은 십자 형태의 유리로 트여 빛이 들어오고 사방에 기다란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쁘다.

 

* 셀라론 계단의 타일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셀라론 계단이다. 칠레에서 태어나 세상을 떠돌며 가난하게 살았던 화가 호르헤 셀라론은 이곳 리우에 정착한 뒤 1990년부터 세라믹 타일을 붙이며, 2013년 사망할 때까지 약 23년의 세월을 공들였다. 215개의 계단과 벽에 타일을 붙이다 완성을 못 보았는데, 지금 이곳에는 60개국에서 수집한 2,000개가 넘는 타일이 붙여져 있다.


  계단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이 자기만의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내려오다 문득 한 귀퉁이에서 태극기를 발견하고는 사진을 찍은 뒤 서둘러 공항으로 가, 저녁 655분에 페루의 수도 리마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 공항 내벽에 붙인 리우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