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나무수국 가득 핀 계절에

김창집 2019. 8. 17. 16:41


지난 토요일

까닭 없이 다릿병이 도져

월요일에 다시 찾은 한의원,

 

광복절 빼고 나흘 동안 침 맞은 끝에

걷는데 통증이 없어 보여

조심조심 한라수목원으로 올라갔는데.

 

지난 4월에 찾았을 땐

만병초만 뒤늦게 피어 반기더니,

그 자리에 이 나무수국만 피어

나를 맞았습니다.

 

더러는 날짜가 지나

먼지가 끼고 기미가 꼈어도

새로 피어나는 꽃은

초록빛까지 품은 채

하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수국 심은 후에 - 김종제

 

지나가는 누구라도 보라고

나뭇가지 한 뼘쯤 잘라서

대문 옆에 수국을 심어놓고

잠시 잊고 지냈는데

담바깥으로 손 뻗은 나무수국에

주먹만한 꽃들이 팡팡 터졌다

가만히 귀 기울어 보니

여름 한 철 물 많이 드셨는지

소낙비 소리가 요란하다

어느 절집 한 모퉁이에

눈길 잡아당기던 나무 한 줄기

내집에 뿌리 내려놓았더니

절 하나 생겼다

수 백의 부처가 들어찼다

말씀 같은 꽃은 점점 커지고

내 눈길은 날마다 길어지고

뱃속에는 길어올린 물로 가득찼다

일곱 번이나 마음 고쳐 먹은

꽃에게 가 쪼그리고 앉았다

물 많이 내려

수국 수국 하며 어지럽던 세상이

한 순간 뒷자리로 밀려나고

찬란한 해가 한참을 머물렀다

어둔 밤에도 근조처럼 불 활짝 켜진

꽃이 쾅쾅 문을 열어달란다

걸음 재촉하여 나가보니

하안거에 드셨는지

열반에 드셨는지

괜스레 오늘 하루가 예쁘다     


   

이별 후 - 오세영

 

마당귀에서

사립문 너머로 보면

너는 하늘대는 댕기로 사라지고,

섬돌 위에서

사립문 너머로 보면

너는 나풀대는 옷고름으로 사라지고,

마루에서

사립문 너머로 보면

너는 펄렁이는 치맛자락으로 사라지고,

 

온종일 실성한

먼산

바래기.

 

앞산엔 목수국 활짝 피는데,

뒷산엔 찔레꽃 곱게 피는데,

 

사립문 밖에서

밭둑 너머로 보면

너는 아지랑이로 사라지고,

동구 밖에서

언덕 너머로 보면

너는 물안개로 사라지고,

고갯마루에서

하늘 너머로 보면

너는 흰구름으로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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