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洪海里 '처서시편'

김창집 2019. 8. 23. 20:40


처서處暑 지나면

 

처서 지나면

물빛도 물빛이지만

다가서는 산빛이나 햇빛은 또 어떤가

강가 고추밭은 독이 오를 대로 오르고

무논의 벼도 바람으로 꼿꼿이 섰다

이제는 고갤 숙이기 위하여

맨 정신으로 울기 위하여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반짝반짝 재재재재

몸을 재끼면서

그리움도 한 움큼 안고

쓸쓸함도 한 움큼 안고

사랑이란 늘 허기가 져!’ 하며

물결마다 어깨동무를 한다

다리 밑 소용돌이에 물새 몇 마리

물속에 흔들리는 구름장 몇 점

가자! 가자! 부추기는 바람소리에

흘러가는 물결이여, 세월이여

처서 지나면

모든 생이 무겁고 가벼운

이 마음의 끝

한탄강에 와 한탄이나 하고 있는가.

 

     -시집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처서處暑

 

풀벌레마다,

 

쓸쓸

쓸쓸쓸

쓸쓸쓸쓸

 

쓸쓸

쓸쓸쓸

쓸쓸쓸쓸

 

쓸쓸타, 운다.

 

   -시집 독종(2012, 북인)

 

 


처서處暑

 

풀벌레 소리 투명하여

귀그물[耳網]에 걸리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귀 기울여 들어보니,

 

무소유無所有란 소유한 것이 없음이 아니라

라는 가장 큰 것을 소유함이니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인 것처럼

와 무는 하나니라하고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속도 절도 없는 내 귀에 들릴 리 있겠는가

속절없는 일이다!

 

투명한 것은 바로 칠흑이라서

그냥 귀에 가득 차는 것이니

들어도 들리지 않는 허공일 뿐

소리 없는 노래였다.

 

그것이 바로 무소유였다.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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