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최기종 시인의 '섬'

김창집 2019. 12. 27. 22:15


*시동인지 '포엠만경'


  과학적, 기술적, 사회적 변화의 걷잡을 수 없는 가속화는 자신의 운명을 적절하게 결정할 개인의 능력을 파괴해 버린다. 이에 시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강상기 회장 펴내는 말에서)

 

  *동인 : 강상기 김광원 김양호 박윤기 박환용 승한 장재훈 정재영 최기종 호병탁

    

 

 

최기종

 

그 섬에 가고 싶다.

거친 바닥 넘고 넘어

불볼락, 깔데기 뛰어노는

그 섬에 가서

한 삼 년 푹 쉬고 싶다.

 

먹빛 해무에 감싸인

그 섬에 가서

바다 속 깊이 뿌리 내리고

하얗게 부서지면서

한 삼 년 푹 묵히고 싶다.

 

해뜰목, 달뜬목, 동개, 빈주암, 오리똥산데, 석순이빠진여, 섬등반도, 국흘도

바람에 흔들리고 환호하면서

후박나무 되어서

몽돌이 되고 짝지 되어서

한 삼 년 벌겋게 익어가고 싶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눈물, 콧물, 똥물까지 토해내고

결국 빈속으로, 빈주먹으로

그 섬에 가서 반디처럼

작은 등불 하나 밝히고 싶다.

 

               * 동인시집 8포엠만경(시동인 포엠만경, 20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