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영란 시집 '누군가 나를 열고 들여다볼 것 같은' 발간

김창집 2020. 8. 20. 15:59

시인의 말

 

 

,

이제

 

나를 떠나려 한다

 

이별 인사는

생략하기로

하자

 

            20207

                  김영란

 

 

 

슬픈 자화상

   -나혜석을 다시 읽으며

 

꽃이 피었다 한들

그대 위해 핀 건 아니야

금지된 소망 앞에

슬픈 꽃말 피어난다고

세상에 맞춰 살라는

그런 말 하지 마

수없이 피고 지는

삶이 곧 사람인 걸

덧칠해도 더 불안한

세월은 마냥 붉고

한 시대 행간을 건너는

여자가 거기 있네

 

 

 

문득

 

 

   유턴 지점에서 봄비를 수신했지

 

   직진할까 되돌아갈까 신호 벌써 바뀌고 피다 만 개나리 진달래 눈만 깜빡거렸지 수취인 불명의 너에게 닿고 싶었던 꽃비 내리는 봄밤 떠오른 옛사랑

 

   우표도 소인도 없이 내게 오고 말았지

 

 

 

그 여름의 기록

 

 

   왕산거머리 같은 어둠이 밀려온다

 

   함양이란 말이 항암으로 읽히는 날 고독한 혈관 타고 파열음이 쏟아진다 국지성 비가 내리고 유턴 지점 안 보인다 지나쳐온 간이역만 불현듯 아른대고 바람도 목이 메어 오다가 돌아갔나

 

   비린내 온몸에 번져 퍼렇게 야윈 하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등대가 보이는 별도봉 둘레길

 

   비석도 산담도 없는 나지막한 무덤 하나, 바다가 그리웠을까 그 너머가 그리웠을까 마지막 의식 치르듯 관 벗어 섬에 들었을, 무연고 세상에 빛 하나 들지 않았을, 기막힌 생애 하나가 울먹이다 누웠을…… 영영 오지 않을 기별일 줄 모르고 선 자리가 누운 자리 될 줄 모르고

 

   나 여기, 있는 줄 아오 입만 벙긋거린다

 

 

 

해녀콩꽃

 

 

   낙태한 아이를 버린 분홍빛 고쟁이같이

 

   소로도 못 나면 여자로 나는 거라고 하늘에 해 박은 날이면 칠성판 등에 지고 제 생을 자맥질하듯 저승까지 넘나들던, 어미 팔자 대물림 딸에게 이어질까 몸 풀고 사흘 만에 속죄하듯 물질 가던,

 

   어머니 애간장 녹아 전설처럼 피어난 꽃

 

 

 

                * : 김영란 시집누군가 나를 열고 들여다볼 것 같은(시인동네 시인선 132, 2020)에서

                                        * 사진 : 해녀콩 꽃(포토샵 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