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영란 시조 '해녀의 눈' 외 5편

김창집 2020. 9. 11. 12:06

해녀의 눈5- 김영란

 

  해녀의 물안경을

  눈이라고 합니다

 

  통눈은 왕눈이, 두 눈짜리 족쇄눈, 쑥 한 줌 비벼 닦으면 바닷길이 환해지죠 물 한 모금 허락 않는 열 길 물속에서 칠성판 등에 지고 목숨값 얻으러 갈 때마다 눈멀어 귀멀어 세상에서 멀어져도

 

  눈 쓰고 퍼렇게 눈 뜨고

  눈을 건저 올리죠

 

 

쓸쓸한 안부

 

  밤하늘 거위눈별* 물기가 묻어 있다

 

  이 생각 저 생각 생각만 많아져 꽃 필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어야지 순간이 영원보다 아름다운 거라는 바람의 속삭임에 끄덕이며 끄덕이며

 

  지나는 별들에게서 그대 안부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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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위눈별 : 촉촉한 모습으로 관측되면 다음날 비가 온다는 별.

 

 

애월의 달

   -정군칠 시인께

 

  달빛 길 오래 걸어 고내 포구 가던 날

 

  키 낮추며 안겨드는 그해의 가을은 앙상한 뼈만 남기고 수평선을 넘더라 밤새 떨던 억새 무리 만장처럼 흔들리고 조그만 무인카페 인증 샷에 남긴 웃음 제 안의 화를 태워서* 홀로 길을 가더라

 

  바닷가 벼랑에 걸려 내려올 줄 모르고

 

 

별난 어미 - 김영란

 

   세상천지 뒤져 봐라 이런 어미 어디 있나

 

   지 잘 나서 그런 줄 알지 정신 차려 이것들아 주변머리 모자라도 맺고 끊게 가르쳤잖여 말 머리 잘라먹지 않고 네 뜻 고이 전하려면 어미 없인 안 된다 해볼 테면 어디 해 봐 세치 혀 나불거려도 동사 꼬리에 꼬리 물고 그 꼬리 다시 물고 의문 명령 감탄 청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어말어미 선 어말어미 종결어미 접속어미 이 어미 저 어미 정신도 사납다만

 

   어쨌든 어미 잘 모셔 효자 한 번 되어 봐

 

 

멸고국수*

 

너 아니면 안 되겠다

한 적이 있었던가

무난한 행복보다 아슬한 긴장 속에

반대편 풍경에 반해

떠나가질 못 했다

 

지는 게 이기는 거

서로를 놓기까지

남들은 특별한 사랑

그런 건 줄 알았다

통 멸치 진국에 얹힌

돼지고기 석 점 같은

 

멸치국수

고기국수

서로 다른 주문처럼

평행 그 지점

외롭고 먼 그대 어깨

살포시 기대어 보네

저기 저 연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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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치고기국수의 줄임말

 

밀라이*

 

  담배 좀 다오

  담배 좀 다오

  피 냄새!

  살 수가 없어

 

  한 모금 담배 연기에 쿨럭거리면서도 할머니는 계속 담배를 찾으신다 우리는 둥그렇게 둘러서서 담배를 붙였다 볼우물 깊게 패이도록 빨아들여 할머니에게 연기를 불어드렸다

 

  이제야 살 것 같구나

  비린내

  묻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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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집단학살을 자행했던 베트남의 시골 마을 이름.

 

 

             * 김영란 시집누군가 나를 열고 들여다 볼 것 같은(시인동네 시인선 132, 2020)에서

              * 사진 : 꽃범의꼬리(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