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내일을 여는 작가'의 시(1)

김창집 2020. 10. 14. 16:01

지구에 대한 인간세(人間世)’ 얘기가 피부에 와 닿을 무렵

코로나19는 전 세계로 퍼졌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오름으로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이쯤 되고 보면 3세기 전, 루소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가 이런 식으로도 통하는구나 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나도 없는 데서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처음엔 '이러다가 곧 잡히겠지' 하고

점점 줄어가는 우리나라 확진자 통계를 보고는

우리 국민이 어떤 국민인데 지가 안 잡히고 배겨하며

한 자리 숫자로 줄고 ‘0’으로 떨어지는 걸 꿈꾸다가

더 늘어나는 일도 있고 해서

 

뭐 우리나라라고 한심한 사람이 없을라고,

묻지 마폭행도 하는데 삐딱한 한두 명이 일부러

아니면 참다참다 못해 정신 줄을 놓아버린 사람들에 의해,

그도 저도 아니면 이참에 아니꼬운 놈들에게 훼방이나

놓아볼까, 하는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기로

 

예방백신이 나와 너나없이 맞거나,

치료제로 한방에 낫게 하기 전엔 단절은 어려울 거라

하고, 체념을 했다.

 

그러나 저러나 오름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열심히 올라 힐링도 하고 핑계김에 건강도 다지며

10월을 맞았는데, 벌써 억새가 피어있더라니.

 

그 억새가 바람결에 꼭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지

가는귀가 먹어 못 알아듣겠더라.

 

오늘 ‘내일을 여는 작가책을 받아보니,

기획특집 질병, 이후의 문학에 시가 몇 편 올랐기로

앞에서 4편을 옮겨보았다.

 

마스크와 보낸 한철 - 이상국

    -코로나19를 견뎌내며

 

살다 살다 그깟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 앞에 줄을 설 줄이야

그래도 고맙다 신통한 부적처럼

우환을 막아 줘서 고맙고

속이 다 내비치는 안면을 가려 줘서 고맙고

세수를 안 해도 사람들이 모르니까 더 고맙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육이오 동란까지 겪고 또 겪고

살다 살다 마스크 대란이 올 줄이야

저들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벌레군단

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는 인류 침공에

어벤저스 슈퍼 히어로들도 속수무책인데

귓바퀴가 없으면 걸 데도 없는 저

손바닥만 한 천 조각들이 지구를 구할 줄이야

 

모든 화는 입으로 들어온다기에

쓸데없는 말 안 하고

나를 아끼고 남을 존중하며

마스크와 한철 보내고 나니까

아무래도 내가 좀 커진 것 같다

나라도 이전의 나라는 아닌 것 같다

 

중매 - 김해자

 

집에서 꼼짝 말라는 기저 질환자가 된 내게

여수에서도 배 타고 두어 시간 가야 당도하는 머나먼 섬,

거문도 수협 중매인 35호 수산 최형란이 생선을 좀 보낸대서

대구 사는 후배들 주소 몇 찍어주었는디

 

고향 바다 건너 뭍으로 간 간고등어 토막고등어들이

우짜면 이리 푸짐하고 정갈하노, 억세게 칭찬받아가며

노모께 몇 손 가고 친구들에게도 두세 마리씩 이사 갔다고

백신 한 보따리 받았으니 잘 묵고 더 힘내겠다고

김밥 싸고 배달하는 김병호가 우리 동네 이웃들

나무들과 고라니와 별들에게까지 안부를 전해왔는디

 

사흘 후 최형란이 부녀회에서 생선 좀 보태기로 했다고

십시일반 모은다는 게 큰 박스 8개가 만들어졌다는디

나흘 후 배 가른 갈치 통갈치 키 크고 덩치 좋고 인물 훤한

삼치들이 꼼짝없이 갇힌 쪽방 사는 어른들과 의료진들 먹일

김밥 싸고 있는 대구 바보주막에 당도했다는디

 

엄청시리 왔어요이 은혜를 우짠다요

농갈라묵고 또 농갈라묵었다고 농갈라묵은

김채원이도 중매인 최형란이도 울컥했다고

얼떨결에 중매쟁이 된 내도 덩달아 울컥하는디

오병이어가 별 긴가, 갈라묵고 살믄 살아지는기라,

 

달콤한 우리 - 안주철

 

내 이름으로 부르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당신의 이름으로 부르면 당신만 오는 것 같다

 

우리라고 부르면

나도 아니고 당신도 아니어서 어리둥절하지만

눈물이 조금 맺혀 있을 것 같아서 슬프지만

외롭지 않은 먼 길

 

혼자 자신을 껴안으며 걸어가는 길

혼자 걸어가면서 모두와 함께 걷는 길

 

조금 멀리가

더 가까운으로 변하는 시간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계절을 기다리며

나 당신 우리

 

서로 새로워져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서로 너무 가까워져 눈을 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꽃이 피고 꽃이 질 때 봄입니다

꽃이 피고 꽃이 질 때 눈이 날립니다

 

멀리에서 서로를 바라본 적 없는

나 당신 그리고 우리

 

우리는 달콤해지고 있습니다

뚜렷하게 달콤해지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 - 최지인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위였다 그 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 등을 씻어 정리했다

 

  멀쩡해 보여도 이 집에는 곰팡이가 떠다녔다 넓은 집에 살면 베란다에 화분도 여러 개 놓고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고 그러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하고 몇 년은 성실히 일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바란 거 이런 게 아니었는데

 

  키스를 하다가도 우리는 이런 생각에 빠졌다 그만할까 새벽이면 윗집에서 세탁기 소리가 났다 온종일 일하니까 빨래할 시간도 없었을 거야 출근할 때 양말이 없으면 곤란하잖아 원통이 빠르게 회전하고 물 흐르고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암벽을 오르던 사람도 중간에 맥이 풀어지면 잠깐 쉬기도 한대 붙어만 있으면 괜찮아 우리에겐 구멍이 하나쯤 있고 그 구멍 속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다 보면 빛도 가느다란 선처럼 보일 테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어두워질 거라고

 

  우리는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뜻해지길 기다렸다

 

 

                           *한국작가회의 내일을 여는 작가2020 하반기 통권 77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