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고성기 시집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2)

김창집 2020. 11. 17. 00:15

 

막걸리 한 잔

 

막걸리 한 잔에도 세상이 녹아 있다.

 

보성시장 국밥집

사발 가득 따르며

 

, 두 손

받들어 마시게 하는

K형의

인생 한 수

 

 

인동초

 

내 아내 같은 인동초

화려하지 않습니다

 

마를수록

짙어져

오로지 깊습니다

 

은은함

떨어져도 짙어

혼자 몰래 맡습니다

 

 

꽃무릇

 

보고파 기다려도

못 보는 게 너뿐이라

어긋나 더 아픈 게

사랑 말고 또 있으랴

발 동동

뒤꿈치 들고

낯 붉혀도 닿지 않는

 

그러게 내 뭐랬니

좀 더 느긋이 오랬지

그리움은 묵은지처럼

삭혀야 맛 든다고

말하면

뭔 소용이랴만

니 타는 꼴

더는 못 보겠다

 

 

산천단 곰솔 아래서

 

산천단 곰솔 아래서

나이 드는 법을 배운다

 

600년 넘게 늙어도

말없이 듣는 법을 배운다

 

공자님

말씀을 든는다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

*논어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구절.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닌가.’

 

 

경주 배동 삼릉 소나무

 

다들 곧다 하는 세상

휘어져

아름답구나

 

경주 남산 배동 삼릉

나이 든

소나무들

 

()

()

설 자리 바로 서면

다 제값 하는 것을

 

 

                             *고성기 시집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파우스트, 20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