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걸리 한 잔
막걸리 한 잔에도 세상이 녹아 있다.
보성시장 국밥집
사발 가득 따르며
꼭, 두 손
받들어 마시게 하는
K형의
인생 한 수
♧ 인동초
내 아내 같은 인동초
화려하지 않습니다
마를수록
짙어져
오로지 깊습니다
은은함
떨어져도 짙어
혼자 몰래 맡습니다
♧ 꽃무릇
보고파 기다려도
못 보는 게 너뿐이라
어긋나 더 아픈 게
사랑 말고 또 있으랴
발 동동
뒤꿈치 들고
낯 붉혀도 닿지 않는
그러게 내 뭐랬니
좀 더 느긋이 오랬지
그리움은 묵은지처럼
삭혀야 맛 든다고
말하면
뭔 소용이랴만
니 타는 꼴
더는 못 보겠다
♧ 산천단 곰솔 아래서
산천단 곰솔 아래서
나이 드는 법을 배운다
600년 넘게 늙어도
말없이 듣는 법을 배운다
공자님
말씀을 든는다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
--
*논어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구절.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닌가.’
♧ 경주 배동 삼릉 소나무
다들 곧다 하는 세상
휘어져
아름답구나
경주 남산 배동 삼릉
나이 든
소나무들
직(直)과
곡(曲)
설 자리 바로 서면
다 제값 하는 것을
*고성기 시집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파우스트, 2020)에서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대의 흔들림에 관하여 (0) | 2020.11.22 |
---|---|
'애월문학' 2020년 제11호의 해녀 시 (0) | 2020.11.17 |
고성기 시집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 발간 (0) | 2020.11.10 |
'우리詩' 2020년 11월 389호의 시(2) (0) | 2020.11.08 |
나영애 시집 '각설탕이 녹는 시간' 발간 (0) | 2020.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