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갈대의 흔들림에 관하여

김창집 2020. 11. 22. 23:14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존재의 이유 - 김윤자

 

빈 들을 떠나지 않는 너는

바람을 만나야

겨우 몸짓으로 울어보고, 웃어보고

지나가는 계절이

견인에 가까운 힘으로

꽃과 나비를 몰아가는데도

너는 홀로

보기에는, 아주 어리석을 만큼 질긴 뚝심으로

이 땅의 겨울을 붙들고 있어

그 자리, 그 들녘, 그 강가에

숙명처럼 하늘거리며

때론 주저앉아 서걱이며

다 뭉개지거나, 살점이 으스러지는 순간에도

너는 여전히

영역을 이탈하지 않는

돌과 얼음이 생의 전부일지라도

당당한 뿌리 하나로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자존

, 너는 눈부신 어머니, 침묵의 어머니

 

가을 강물 소리는 - 이향아

 

이제는 나도 철이 드나봅니다, 어머니

가을 강물 소리는 치맛귀를 붙잡고

이대로 그만 가라앉거라, 가라앉거라

타일러쌓고

소슬한 바람 내 속에서 일어나

모처럼 핏줄도 돌아보게 합니다

함께 살다 흩어지면 사촌이 되고

다시 가다 길을 잃어 남남이 되는

어머니,

가을 강물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지금은 내왕이 끊긴 일가친척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고 가면 바다가 벼랑처럼 있어

거기 함께 떨어져 만난다고 하지만

죽어서 가는 천당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가을 강물을 보면 문득 용서받고 싶습니다, 어머니

질펀히 너부러진 물줄기가 심장으로 고여서

땀으로 눈물로 이슬 맺는 은혜

가을 강가에 서서

나는 모처럼, 과묵한 해 그림자 갈대그늘을

따라가면서

잠겨들면서

내 목숨 좁은 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 - 나상국

 

오늘도 바람이 붑니다

심한 몸살에 치유되지 않는

가슴앓이었습니다

 

해 저문 강가에 앉아

물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만 가는

슬픔을 보았습니다

 

오랜 기억 속에서

그날의 기억들이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힘겹게 가슴속을 여울져 흐르며 소용돌이칩니다

 

첫 만남이 설레임이었다면

헤어짐은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이었습니다

 

떠나는 그녀는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홀로 남겨진 내사랑은

낮에는 해가 되어 갈대밭에 앉아 흔들리다가

밤에는 달과 별이 되어

 

징검다리 건너서 강물 소리 따라서 오르내리며

그 오랜 세월을 서성였습니다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

내 사랑도 머물다 간 자리

사랑은 사람은 떠나갔어도

떠나지 못하는 내 사랑의 아픔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오늘도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

내 사랑도 머물다 갑니다

 

갈대들은 몸을 부비며 - 김행숙

 

  사흘 밤낮을 강을 거슬러 흘러갔습니다. 쪽빛 나일강에 저녁이 오면 강가에 늘어선 종려나무 가지는 더욱 선명해지고 갈대밭은 수선거리며 작은 물새 떼가 마스게임을 하듯 강물 위를 뛰어 다닙니다.‘나일강 물을 마신 사람은 반드시 나일강에 다시 돌아온다는 말처럼 이집트에선 새도 사람도 나무도 모두 나일강가에 기대어 삽니다.

 

  조금씩 해가 기울다가 드디어 사막 끝에 닿자, 강에는 갈잎 상자 하나가 떠내려 옵니다. 아기 모세가 담겨있는 상자입니다. 갈잎 상자를 발견한 바로의 딸이 아기를 궁궐로 데려갑니다.

 

  지금도 나일강변 갈대들은 서로 몸을 부비며 우물가의 여인들처럼 출애굽 당시의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펠루카가 떠 있는 나일강은 영원히 이집트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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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루카 : 동력이 없는 돛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