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애월문학' 2020년 제11호의 해녀 시

김창집 2020. 11. 17. 23:06

파란바다에 오렌지색 테왁을 보며 - 홍경희

 

사흘이 멀다 하고 불어오는 바람

제주의 바람은 거세게 불어온다

가을 겨울에 물질하는 해녀

뼛속 깊이까지 시린 날 많아

배를 타고 비양도 앞 바다로 향해

어머니는 무사안녕을 빌면서 발을 뗀다

테왁을 물에 던지면 시작이다

숨을 참으며 작업을 하다보면

조금 전에 있었던 서운함이나 화가 났던

일들은 파도가 밀어낸다

힘든 노동이지만 그 안에서 사투를 벌이다 보면

내면이 단단해지면서 어머니자리를

굳건히 지킨다

제주의 어머니는 바다밭과 마른밭 가리지 않아

어디든 일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선다

 

해녀의 기도 김옥순

 

밀알이 썩어서 밑거름이 되듯

해녀의 일생으로 살아온 날들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수경 밖의 세상은 바다지만

마음 안에 세상은 사랑이란 걸

잊지 않고

동반자인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길

그 길에서 사랑의 열매를 거두게 하소서

 

거친 바다 밭에서

수확 없는 빈손 들고

수면 위의 숨비소리에도

실망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가끔은 경쟁자가 될 때도 있지먼

서로에게 다독이며

자매처럼

우애 깊은 사이가 지속되게 하소서

 

해녀의 길을

천직으로 믿으며

바다의 무대에서는 주연으로서

후회 없는 공간이 되게 하소서

 

타인의 입장에서 나를 보고

내 입장에서 타인을 보는 지혜가 자라나서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고달프고 힘들 때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여

한 명의 낙오자 없이

함께 끝까지 같은 길 걷게 하소서.

 

건강이 다 하는 날까지

바다에게 나에게 동료에게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어머니의 허리끈 김종호

 

바람의 길목에 떠 흐르는 섬

태풍에 쓰러진 늙은 팽나무

천년 이야기를 다시 세울 때

여인은 허리끈을 조였다

들판에 몽골의 말발굽소리 내달리고

일본도 칼날이 해를 가릴 때에

여인은 죽을힘으로 배고픈 허리끈을 질끈 동였다

43 미친바람 누대의 돌담을 무너뜨리고

폐허의 돌밭에 까마귀 우짖을 때에

여인은 피 묻은 허리끈을 조이고 조였다

제주 돌밭에 북서계절풍은 끝없이 불고

호미가 닳고, 칠성판을 지고 물에 들어

이 땅의 포악과 황폐를 달래며

ᄀᆞ웃ᄀᆞ웃 타지는 숨

호오이

하늘 끝자락에 숨비소리 처연할 때

당신은 연약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하늘의 손,

보시라!

지금은 천혜의 복된 땅,

변방의 유배의 땅이 아니다

한숨은 노래가 되고

인고는 훨훨 춤사위가 되나니

호오이

몇 길 물속 바닥을 차고나와

오늘은 동쪽하늘에 무지개가 떴구나

다시 천년의 새 말개 직조하려고

여인은 질끈 새 허리끈을 조이고 있다.

 

해녀 누이 김충림

 

열두 살 누이는

겨우 허리에 닿는

얕은 물에서 팡당거리며

우미며 보말을 물질하여

공책이며 연필을 샀지.

무르익은 스무 살

상군 해녀, 한 번 물질에

미역, 소라며 전복 성게

한 짐 부치게 지고 나와

집안 살림도 제 어깨에 짊어졌지.

물질이 칠성판을 지고 하는 일

ᄀᆞ옷ᄀᆞ옷 타지는 숨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차고 나와

--이 긴 숨비소리로

그제야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그래도 배운 게 도적질이라고

시집 간 지 반백년에

다섯 남매 다 성가시키고

테왁 망사리 숙명처럼 지고

오늘도 바다로 절뚝거리며 간다.

 

해녀의 눈 - 김영란

 

  해녀의 물안경을

  눈이라고 합니다

 

  통눈은 왕눈이, 두 눈짜리 족쇄눈, 쑥 한 줌 비벼 닦으면 바닷길이 환해지죠 물 한 모금 허락 않는 열 길 물속에서 칠성판 등에 지고 목숨값 얻으러 갈 때마다 눈멀어 귀멀어 세상에서 멀어져도

 

  눈 쓰고 퍼렇게 눈 뜨고

  눈을 건져 올리죠

 

문득 문순자

   -친정 바다 2

 

큰딸아이 설거지소리

오늘 문득 귀에 익다

 

물질 갔다 돌아와 수평선도 재워놓고

 

늦은 밤

친정바다가

숟가락을 딸깍이는

 

 

                                *애월문학 제11호 특집 한림해녀들의 삶과 꿈에서